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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Nov 23. 2022

슬기로운 듣기 생활

너의 목소리, 그 이상이 들려

‘우리 아이가 듣는 건 어느 정도 하는 데 말을 안 해요’라고 하소연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EFL 환경에서 듣기만 한 아이는, 그것을 통해 바로 의사소통이 되거나 스피킹이 되지는 않는다. 이것은 듣기 자체만으로는 상호작용하는 활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국어의 경우, 들어서 알고 있는 것도 말로 나오기까지는 여러 상황 속에서 연습이 필요하다. 많이 듣기만 한다고 해서 바로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호작용이 가능한 말하기를 하게 되면 듣기가 더 늘게 된다. 유의미한 듣기가 되기 위해서는 듣고 있는 것이 이해가 되고, 궁극적으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듣기가 되어야 한다.


아이가 유치원이나 초등 저학년이면서 영어의 다른 소리에 거부 반응을 보일 때는 일단 싫어하는 것을 인정해 주자.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으니 답답하겠구나 하는 그 마음을 먼저 읽어주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콘텐츠, 캐릭터 혹은 관심사와 관련된 활동을 영어로 잠깐씩 틀어주면서, 엄마가 배우고 싶은 거니까 5분만 있다가 바꿔 준다거나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해보자. 내가 들어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상대가 듣는 걸 기다려 주는 것으로 전환을 하면, 강한 거부감도 배려하는 마음으로 누그러지는 것을 보았다. 물론, 단번에 바뀌지는 않더라도, 엄마와 아빠가 본인을 위해 꾸준히 들으려 할 때, 아이는 조금씩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을까.


영어 영상을 틀기만 해도 한글 영상으로 바꾸라고 하던 7세 9세 남자아이 둘이 있었다. 자기주장이 강한 형들도, 사랑하는 막내 동생을 위해 꾸준히 Super Simple Song과 같은 영어 음원을 ‘들어주었’다. 서너 달이 지나니, 하루 삼십 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 정도 꾸준히 영어 관련 영상을 듣는 게 가능해졌다. 아직 글자를 모르는 36개월 아기들도, 글자를 손으로 따라가며 읽는 흉내를 내면서 재미있어한다. 엄마 목소리를 따라 책을 보는 것이 편안하고 좋기 때문이다. 학습으로 양을 채워야 하는 읽기와 달리, 순수한 책 읽기의 몰입은 즐거움을 준다. 듣기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좋아서 글자를 쫓아가는 활동이 될 수 있으면 어떤 이름의 듣기이든 도움이 된다.


듣기가 싫어진 고학년들과는 대화가 필요하다. 관심사에 맞고, 동기가 부여될 만한 요소도 필요하다. 영어 공부를 해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더라도, 그동안 하지 않았거나, 하기 싫은 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중, 장기적 목표를 함께 세우고, 단기적 성취에 기쁨을 느끼어 스스로 다음 단계로 가고자 하는 의욕을 지켜줘야 한다. 어릴 적 자연스럽게 느끼던 배움의 즐거움을 잃어버렸다면, 소소하더라도 스스로 쌓아나가는 성취감을 다시 느끼도록 해주어야 한다.


고등학교 시절에 영어를 특별히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던 학생이 있었다. 이 학생은 사진에 관심이 많았다. 유튜브로 사진 찍는 방법이나 카메라 관련한 영상을 찾다 보니 대부분이 영어였다고 한다. 효과적인 영어 학습법을 찾기 위해 영어 학습법 자체에만 관심을 가졌다면, 영어를 공부로 하다가 지쳤을 수도 있다. 노래, 요리, 영화, 게임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입을 하면서 세계를 깊이 있게 확장시켜 가다 보니, 영어실력을 덤으로 얻은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본다. 이들은 당장의 내신 ‘시장’에서는 밀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저력은 진짜 실력으로 맞붙어야 하는 현실에서 제대로 드러난다.


듣기의 귀가 닫히지는 않는다. 듣고자 하면 들린다. 백번을 들어도 뚫리지 않던 귀가, 마법 같은 ‘교수법’으로 한순간에 열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신에게 맞는 방법과 듣고자 하는 마음으로 듣다 보면, 어느 순간에 상대의 말이 ‘들리는’ 마법 같은 순간은 찾아온다. 그 순간이 올 때까지, 꾸준히 하는 것은 ‘영어’ 만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영어는 그래서 쉽지 않은 것이다. 해봤는데 안된다고 말하기 이전에, 될 때까지 해보는 인내와 성취감을 아이들에게 경험하게 해 주자. 영어학습을 넘어,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중요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조카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한글과 영어 모두 학습적으로 배우는 것에는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그러나 영국인 이모부를 무척 좋아하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성향이 합해지면서, 그동안 흘려들어왔던 영어를 총동원하며 소통을 하려 했다. 사촌 동생이 보는 영어 영상도 따라 보았다. 급기야 책도 펴 들고 더듬더듬 읽어 보려 했다. ‘영국인 이모부’가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누구에게나 가능한 상황이 아니라 적용되지 않는 사례이다. 그러나, 아이가 좋아하는 ‘그 무엇’에 집중하고, 그것을 자극할 수 있다면 아이들은 스스로 움직인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흘려듣기만으로 혹은 집중 듣기만으로 엄마표 영어의 성공이 결정되지 않는다. 집중 듣기라고 하는 정의 속에 '집중해서 듣고 있는 실제 행동’과 ‘책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따라가는 읽는 행위’를 분리하거나 포함시키려니 오히려 복잡해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이 영어 문법을 배우면서 문법의 실체보다 그것을 지칭하는 용어에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본다. 아이와 영어 한 번 같이 해보고 싶은 분들께 이러한 용어들이 오히려 혼란만 가져온 것은 아닐까. 영어환경에 노출하려는 노력 속에 흘려듣기가 있고, 읽기 활동을 돕기 위해 보다 ‘intensive’ 하게 정신 줄 잡고 들으면서 문자를 따라갈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이 본질이다.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엄마표 영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바로 이 흘려듣기, 집중 듣기 등의 용어 때문이었다. 영어를 가르치면서도, 맘 카페에 올라오는 용어, 책 종류, AR지수, 단계별 활동 사진을 보면서, 시작도 하기 전에 뒷걸음질 쳐 본 경험이 있다. 막상 뛰어들어 보면 별 것 아닌데 말이다. 심상치 않은 두께, 처음 듣는 용어들 그리고 수많은 책 리스트들. 지금 홈스쿨로 충분히 영어를 해줄 수 있는 분들 중에서 이와 같은 이유로 그 시작을 미루지 않기 바란다. 용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아이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꾸준히 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잊지 말자.


아들이 36개월 전후해서, 제가 신랑에게 하는 말을 메아리처럼 따라 말하면서 재미있어했다. 무슨 뜻인지 몰라도, 들리는 데로 제법 그럴싸하게 흉내를 내었다. 일본에서 온 사촌 형이 엄마와 일본어로 대화하는 것을 보고서는, 일본말을 흉내 내며 이모와 소통을 하려고 했다. 말을 습득하는 시기, 아이들에겐 정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듯했다. 그래서 0-3세가 외국어 습득에 유리하다거나 모든 아이들은 이해 가능한 인풋이 있을 때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는 이론들이 수없이 나온 것이겠지. 


습득으로의 영어가 가능하려면, 영어가 소통의 수단이라는 것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영어를 배우면서 당연히 깔려있는 전제라고 생각하기 쉽다. 학과목으로 영어를 시작해 문법으로만 익혀온  영어 DNA 가 있어서 그런지...소통을 원하면서도 아이들의 영어공부는 여전히 예전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이들 교재를 한 번 살펴봐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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