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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그램 Jul 30. 2018

사장님도 돈 주고 사먹는 고기덕후의 정육점

에이징룸 설용환 대표 인터뷰

직업선택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연봉과 안정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요즘 젊은 것들'이 가장 선망하는 대상은 *덕업일치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다. 불과 2, 3년 전 쓸데없는 취미생활로 여겨졌던 덕질이 규모가 큰 시장으로 발전하면서, 덕후만의 전문성을 무기로 사업에 성공하는 사례가 생겨난 것이다. 덕후는 돈이 안 될 것 같아도 퀄리티를 끝까지 끌어올리고, 아무도 모를 것 같은 디테일에 집착한다. 여기에 고객은 열광한다. "이 사람이 만든 건 진짜다"라는 최고의 찬사와 함께.

부티크 정육점 <에이징룸>을 운영하는 설용환 대표 역시 자타공인 고기덕후로, 1년에 고기만 100kg을 먹는다. 고기를 원없이 먹는 건 누구나 꿈꾸지만 설용환 대표는 맛있는 고기 먹자고 정육점까지 차렸다.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회사 제품을 돈 주고 사먹는다는 사장의 덕력(내공)은 얼만큼일까.

*덕업일치: 직업이 곧 덕질(마니아 이상으로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행위)인 상태를 일컫는 말



고기를 먹기 위해 1년에 20번이나 해외출장을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회사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개인출장으로 간 셈인데, 이렇게까지 고기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사실, 고기 뿐만 아니라 다른 음식들도 다 좋아해요. 매년 대기업 부장급 연봉 정도를 식비로 사용하고 있는지라 먹다보니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된거고요. 특별한 계기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 고기를 팔고, 부티크 정육점이라는 컨셉을 정하게 된 것도 맛집이나 유명한 가게에서 맛있는 고기를 먹은 경험에서 시작한 건 아닌가요? 

어디 가게가 맛있다기 보다는 방향성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어요. 소비자에게 와닿는지가 가장 중요하니까요. 먹으면서도 사실 90%는 맛없었던 거 같아요.


에이징룸에서는 주로 한우 숙성육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고기를 많이 먹었을텐데 숙성육을 굳이 고른 이유가 궁금합니다.

맛이 더 진하니까요. 마블링이 들어간 한우는 기름맛으로 먹는데, 기름이 너무 많으면 거부감이 들 수도 있잖아요. 숙성육에서 나는 진한 맛은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한번 봤던 걸 다시 보고, 남들은 전혀 관심없는 디테일까지 챙기는 일은 덕후가 되는 첫 단계다. 그리고 그만큼 자세히 들여다보고 많이 경험하다 보면 좋아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사람과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유형으로 나뉘게 된다. 설용환 대표는 색깔이 분명한 타입이다. 전문지식과 취향을 버무려 자신만의 향을 내는 사람. 조금 더 깊숙히 들어가보기로 했다.



숙성육에 대해 어떤 식으로 공부하고 연구하셨나요. 해외에서 노하우를 따로 배우기도 하셨는지, 과정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숙성육에 정답은 없습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러가지 숙성육을 먹어봤지만, 숙성시키는 공간의 환경과 고기의 성질에 따라 매번 다른 방법으로 진행해야 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해외 숙성육 업체들과 교류를 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숙성의 원리를 알면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직전까지 숙성의 마법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테스트 하며 깨우치는 방법 밖에 없는 듯 합니다. 물론 저희도 수없이 고기를 버려가며 테스트를 하며 데이터를 만들어왔고요.


원하는 맛을 내기까지 무슨 고기로 어떤 테스트를 진행하셨나요? 물론 숙성에는 나름의 공식이 있지만, 좋은 고기를 받아오는 것부터 숙성온도와 습도 등을 맞춰간 과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숙성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원하는 스펙을 찾기 위해 지역별, 품종별 한우, 육우, 흑우, 칡소 등 약 40여가지 소를 가지고 테스트했습니다. 물론 일본, 호주의 와규나 미국산 프라임급 소를 가지고도 여러가지 실험을 했고요. 숙성이란 온도와 습도, 기간만 맞는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관리 및 정성어린 관심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고기를 구워주는 그릴 서비스와 마리네이드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통 정육점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서비스는 아닌데 굳이 손이 많이 가는 일을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저희 매장은 주상복합 아파트 지하에 있어요. 손님들이 고기를 사서 집으로 가면 어떤 문제가 있을지 생각해봐야죠. 환기가 잘 안되니까 요리하는 과정이 번잡스럽고 힘든 거에요. 그릴링 서비스의 경우에는 직접 구워드리니까 아파트 주민분들이 곧바로 드실 수 있잖아요. 이런 서비스 때문에 다시 찾아오는 손님들이 꽤 많으세요.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으신가요?

다시 찾아주는 손님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처음 방문해서 2만원어치를 샀다가 다음에 2,000만원어치를 사가시는 경우도 있었고요. 지난번에는 우연히 들른 대학생이 MT를 간다면서 200만원어치를 사가기도 했죠.



이렇게 아파트 단지 내에서 단골이 생기면 관계 기반으로 판매가 이루어질 것도 같습니다

그렇지는 않아요. 저도 제가 돈 주고 사먹고, 지인도 예외는 없어요. 지인영업이나 홍보 자체에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맛이 가장 중요하죠. 그 다음이 편리한 서비스고요.


고기를 먹는 입장에서 파는 입장이 됐는데, 가장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고객분들이 많아 그 분들께 올바른 정보를 어떻게 더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기를 판매함과 동시에 소비자에게 어떻게 먹으면 좋을지 직접적인 컨설팅을 해주고 있지요. 일반적인 정육점은 고기를 판매하면 끝이지만, 에이징룸은 정육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싶습니다. 


경영을 하다보면 힘든 순간이 있을텐데 그걸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은 뭐가 있을까요?

소비자를 직접 상대 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고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한 번 다녀간 고객이 다시 올 때, 그보다 더 큰 원동력은 없는 것 같습니다.


브랜드로서 에이징룸의 목표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재구매율을 85%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입니다. 사업을 확장하는 것도 좋지만 결국 맛있는 고기를 파는 게 가장 중요하죠.



설용환 대표는 거의 모든 질문에 소비자를 중심에 놓고 답했다. 맛있는 고기를 만드는 건 기본이고, 구매 이후에 어떤 환경에서 식사를 하는지, 경영 차원에서 가장 신경쓰는 지표까지 모두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일관성이 보였다.

고기덕후로서 정육점을 차린 건 단순히 고기를 많이 먹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동안 고기를 먹으면서 불편했던 경험, 잘못된 정보를 제공받은 경험이 쌓여 직접 나서게 된 것이다. 이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확신이 들었을테니까. 같은 고기도 만드는 사람이 직접 먹는 제품은 질이 다를 수밖에 없다. 에이징룸이 앞으로도 쭉 덕후의 고기이기를 바란다.




글_진성훈

지원_(주)육그램 6gr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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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그램과 함께 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소비자에게 직접 가는) 유통구조가 좋다고 생각해요. 스타트업인 만큼 같이 교류하면서 맞춰갈 수 있는 부분도 좋았고요. 


평소에 어떤 방법으로 드시는지, 고기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등심은 2.5cm 정도로 잘라 팬 프라이 후 오븐(5분정도)을 이용하여 쿡을 합니다. 마리네이드는 쿠킹 전 3시간 정도 하는 편이고, 버터는 이용하지 않습니다. 시어링은 오븐에 넣은 시간의 2배를 잡고, 술은 와인이나 사케를 즐겨 마시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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