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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그램 Jun 28. 2018

아산 사는 호랑이소 이야기

맛있는 사료에 맛있는 고기가 깃든다

"뭐 먹고 자라면 저렇게 되는 거야!" 어딘가 대단한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무엇을 먹는지는 사람에게나 동물에게나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우리의 입에 들어오는 소가 어떤 사료를 먹는지 궁금해했던 기억은 거의 없다. 10년 전, 한약 먹은 소가 반짝 유행했을 뿐.

소비자는 맛집 찾아내고 거르기만 해도 바빠서, 소가 먹는 사료까지 신경쓸 시간은 없다. 하지만 잠깐만 입장을 바꿔보자. 소도 맛있는 사료를 먹고싶어 하지 않을까? 마블링을 내기 위해서, 살을 찌우기 위해서 만든 사료가 아니라 소가 좋아하는 사료를 먹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더 행복하게 자란 소의 고기는 어떤 맛을 낼까? 이런 질문을 먼저 던지고 연구한 사람이 있다.

아산의 아침목장은 도시인들에게는 생소한, *화식 여물만으로 소를 기르고 판매한다. 농장을 관리하는 김영길 총괄사장과 온오프라인으로 가게를 경영하는 김성기 대표를 만나 화식을 도입한 계기와 맛의 차이,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호랑이소(칡소)의 특징을 물었다.

*화식(食): 열을 가해 익힌 음식(↔생식), 풀을 끓여 만든 소의 여물

김영길(68)
아침목장 총괄사장
농장을 직접 운영하며 화식제조 및 전반적인 소 관리를 총괄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가장 궁금한 것부터 여쭙겠습니다. 화식을 먹여 키운 소고기는 어떤 맛인가요?

구수한 맛이죠. 인공사료를 먹여서 키운 요즘은 먹기 힘든 옛날 맛이 나요. 부드럽고 감칠맛이 많이 나고. 계속 당기는 맛이에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데, 개인적으로 맛있게 먹었던 추억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화식을 처음 시작할 때, 집에서 부인과 함께 먹어봤어요. 그랬더니 옛날에 먹던 구수한 소고기 그 맛이 나더라구요. 나만 그런가 싶어 지인들을 불러 먹여보니까. "무슨 고기가 이렇게 맛있냐." 라는 반응이 와서 확신을 가지고 시작하게 되었죠. (그러면 마트 고기는 안 드시겠네요) 못 먹겠어요. 화식우 맛을 본 다음부턴 구수한 맛이 많이 나는 쪽으로 연구를 해요. 사료를 바꾸는 게 소고기 맛을 바꾼다는 확신을 가지고 하죠.


사료를 바꾸면
소고기 맛이 바뀐다는 확신이 있어요


그러면 그 화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가요.

요즘은 배합기가 따로 있고, 삶는 기능까지 있어요. 연결된 파이프에서 스팀이 나오는데 5시간이면 폭삭 익어요. 그럼 그걸 식혀서 원료들과 섞고 수분을 맞춘 다음, 생균제를 넣고 혼합해서 발효를 시켜요. 그럼 가스가 차서 완성이 되죠.


화식은 손이 많이 가서 힘든 걸로 아는데, 기계의 힘을 빌리는 거군요

화식 사료를 제조하는 다른 지역 농장에 간 적이 있는데, 솔직히 기계가 너무 작아서 못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연료비가 너무 많이 든다고 하는 곳도 있고요. 집집마다 1~2마리 키우던 시절에는 사람 손으로 했지만 200마리가 되면 사람이 할 수가 없어요.



화식을 하는 건 결국 맛 때문이라고 보면 될까요?

맛 때문이죠. 사료 효율이 더 좋기도 하고요. 같은 양을 먹여도 화식을 먹인 소가 살이 더 많이 쪄요. 축사에 냄새도 덜 나고요.



화식사료를 먹여 키우는 건 맛이 좋기 때문인데, 여기서 맛은 2가지 의미를 지닌다. 소고기의 맛과 소가 먹는 사료의 맛. 소가 맛있게 먹어야 사람이 먹는 고기도 맛있다는 김영길 사장의 철학이다.






김성기
아침목장 대표
건국대 축산식품생물공학과 졸업


안녕하세요. 아침목장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아침목장은 아산의 한우 정육식당과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회사입니다. 직영농장에서 화식으로 사육한 칡소와 황우 고기를 팔고 있어요. 농장규모는 약 2,000평이고요, 두수는 200마리입니다.


화식(火食) 사료만 먹인 소를 표방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궁금합니다.

여물 만드는 전통방식을 재해석했어요. 풀(라이그라스, 연맥, 알팔파)과 두부, 깻묵, 옥수수, 단백피 이렇게 5가지 식재료를 배합해서 끓이고 발효시킵니다. 원료 중 알팔파는 풀 중에서도 단백질이 풍부한 고급종이고요. 그외에도 수분함량 조절을 위해 두부는 냉장고에서 따로 관리하고 옥수수도 GMO가 아닌 것을 골라 쓰죠. 마블링을 뽑거나, 살을 찌우기 위해서라면 이렇게 안해요. "건강하게 키운다"는 기준을 최우선으로 직접 식재료를 선별하고 있습니다.


전통방식과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다른 건가요?

전통여물은 볏짚을 푹 삶은 찜인데, 우린 쪄서 발효까지 시켜요. 화식 사료같은 건 두부 깻묵 과자밥. 다 혼합/배합한 다음에 스팀하고 *생균제를 넣어서 발효시켜요. 발효까지 완료하면 약 7일 정도 걸리고요.


*생균제(probiotics): 소화를 돕고 질병을 예방하는 미생물 균종


규모가 커질수록 사료를 제작하지 않고 구매하는 게 일반적일텐데, 정성을 들인다고 해도 일주일은 너무 긴 시간 아닐까요?

맛있으니까요. 맛있으려면 소가 건강해야 해요. 마블링이 맛있는 것도 좋지만, 우리는 건강에 포인트를 뒀어요. 그러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다 따라오는 거거든요. 그러기 위해선 먹는 게 제일 중요하고요. 화식을 먹인 다음부터는 감기에 걸려도 금방 이겨내니까 굳이 항생제를 놓을 필요가 없어졌죠.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주변의 도움도 받고 직접 연구하고 실험한 결과를 취합한 최종형태가 지금의 화식입니다.



내가 먹을 음식도 원재료의 성분과 영양소까지 신경쓰기가 쉽지 않은데, 꼼꼼하게 식재료를 고르고 발효제까지 신경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남들이 찾지 않는 길을 굳이 가는 아침목장의 심지가 보인다. 거기에다 화식 못지 않게 생소한 호랑이소(칡소)까지 기르고 있다. 


검은줄무늬가 멋스러워 호랑이소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전통소지만, 일제강점기에 수탈된 뒤 현재는 전국 소의 1% 만을 차지하고 있다. 어릴적 부르던 <얼룩송아지> 노래의 주인공이자 이중섭이 그린 소 역시 호랑이소다.


검은 줄무니가 선명한 호랑이소(칡소)_이중섭 作


보통 황우를 생각하는데, 칡소를 고른 이유가 있으신가요?

딱 이거다 고른 건 아니고, 사업하다 보면 인연이 닿을 때가 있잖아요. 직접 농장을 경영하다가 우연히 칡소를 만나고 가능성이 있겠다고 판단했어요. 토종소 보존을 위해 아산시에서도 지원을 하던 상황이었고요.


아침목장에서 직접 기르는 칡소


아무래도 직접 먹어본 손님의 반응이 가장 정확할 것 같은데, 주로 어떤 평가를 듣나요?

와일드한 맛이 있어요. 특유의 거친 느낌이 들고, 국을 끓이면 옛날 맛이 진하게 난다는 얘기를 많이 해주세요. 옛날에는 거세를 안 했기 때문에 육향도 진하게 났는데 호랑이소에 그 맛이 살아있는 거죠. 와인으로 비유하자면 바디감이 좋고 헤비한 느낌이에요.


다른 곳에는 없는 화식과 칡소를 취급하면 남다른 평가를 받았을 것 같습니다.

화식우나 칡소는 지금도 생소하지만 페이스북에 처음 소개를 했을 때, 미식가 중 한분이 반신반의 하며 고기를 주문 하셨어요. 전혀 안면이 없는 분이었는데 호기심에 먹은 거죠. 그리고 그 분이 스크롤을 내려할 정도로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주셨는데 "어지간한 고기 많이 먹어봤는데. 세상에 이런 고기를 처음 먹어봤다. 아직도 그 충격이 잊혀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순간이 제일 좋았어요. 정말 뿌듯했죠. 그때 인연으로 지금도 연락을 이어가고 있어요.


앞으로의 계획

여기서 내실을 다졌으면 좋겠어요. 미트밸리 회사도 제가 거의 도맡아서 운영하고 있으니까. 최근에 오픈한 온라인 쇼핑몰과 식당경영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남들이 팔지 않는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장점을 내세우고 설득하기에 앞서 이런 상품도 있다고 알리는 일이 순서다. 아침목장만의 특성인 화식과 호랑이소는 분명 매력있지만 여전히 생소하다. 애석하게도 '일단 먹어보면 뭐가 다른지 안다'는 식의 마케팅은 통하지 않는다. 김성기 대표가 자리를 잡기 위해 홍보에 주력하는 이유다.

아침목장의 블로그에는 소가 여름나는 법, 미트밸리 첫 경품행사 썰 등이 게시되어 있다. 쉽고 재밌는 글이다. 인터뷰에서도 여물의 전통이라거나 토종소를 먹어야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건강한 소가 더 맛있더라는 이야기에 더 호감이 생겼다. 건강에 좋으니까 운동한다는 결심만큼 유통기한이 짧은 것도 없다. 반면 맛있으니까.  재밌으니까는 오래 간다. 아침목장은 오래 가는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다.




글_진성훈

지원_(주)육그램 6gr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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