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MT에서만 사용하는 특이한 장비들을 소개한다.
지난 두 게시물에서는 비교적 딱딱하게 여행 계획론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오늘도 그 연장선으로 장비에 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장비는 정답이 있지 않고 호불호만 존재하므로 내 글을 하나의 예시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각자 생각하는 바가 있다면 계획하고 시도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얕보는 것은 금물이지만 JMT가 그리 혹독한 환경은 아니다.
내 장비 구매 철학은 두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대부분 나랑 비슷한 처지라면 이런 소비 패턴을 가질 것이라 생각한다. 혹시 돈과 시간, 공간이 많은 분이라면 내 이야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1. 두 번 사지 않아도 되는 장비를 산다.
: 나는 돈과 장비를 보관할 공간이 없는 대학생이다. 아무리 싼 장비라도 빨리 고장 나거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구매하지 않는다. 조금 비싸더라도 제대로 된 제품을 사는 게 장기적으로 싸다.
2. 최대한 가벼운 장비를 산다.
: 나는 남들처럼 체력에 여유가 있지 않다. 남들보다 무거우면 체력이 아니라 짐을 탓하게 된다. 비상 상황에 대비하지 못하더라도 빠르게 탈출할 수 있을 만큼 가벼운 것이 더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뒤에서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겠지만, 우리는 7일 분 식량을 기준으로 약 5kg 정도의 무게였다. BV500 곰통(캐니스터)을 꽉 채우는 양이다. 물은 일반적으로 1L-500ml를 가지고 다녔으므로 보급한 직후에는 대략 순수 장비 무게 + 6kg의 무게로 운행하게 된다. 이를 유의하여 배낭 무게를 잘 설계하자.
미국 트레일은 도중에 화장실이 없으므로 흙을 파서 똥을 묻어야 한다. 보통 이 작업에 필요한 장비를 모아 지퍼팩에 담는데 이걸 poop kit라고 부른다. 신호가 올 때마다 거쳐야 하는 대략적인 과정은 이렇다.
1. 인적이 드물고, 물에서 60미터 이상 떨어진 구멍을 팔 수 있을 만큼 부드러운 땅을 찾는다.
2. 지름 15cm, 깊이 15cm의 구멍을 판다.
3. 볼 일을 본다.
4. 휴지, 물 등으로 씻는다.
5. 구멍을 메운다.
6. 손을 씻는다.
휴지나 물티슈를 사용할 수는 있지만, 쓰레기는 반드시 가지고 나와야 한다. 쓰레기는 트레일이 끝날 때까지 지참하거나 캠프파이어에 태워서 처리할 수 있다. 우리는 휴지를 사용하지 않고 비데를 사용하였는데, 물병 끝에 비데를 끼우고 페트병을 누르면 물이 쏘아지는 식이다. 식수로 사용하는 병을 비데로 사용하면 위생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비데용 물병을 따로 두고 사용하였다. 도중부터 비데 효과가 아쉬워서 그냥 샤워기를 쓰듯이 손으로 깔끔하게 처리하고(인도인처럼) 손을 비누에 씻었다. 휴지, 비데+손, 비데+휴지 세 가지 경우의 수 중에서 원하는 방식을 사용하자.
비데는 Trail Bidet으로 검색하면 여러 가지를 찾을 수 있다. 이 중 CuloClean 제품이 오리지널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알리익스프레스에 카피품을 많이 팔고 있다. 우리도 카피품을 이용했으나 트레일 내내 큰 문제가 없었다.
손을 씻을 때는 일반적으로 손 세정제를 사용한다. 코로나 시기에 사용하던 손 세정제 중 작은 사이즈를 가져가면 된다. 혹은 친환경 비누를 이용해서 세정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비누는 아무리 친환경이라도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므로 사용을 삼가는 게 좋다.
트레일을 하기 전에는 화장실 문제로 상당히 걱정을 많이 했지만, 실제로 JMT를 하다 보면 나름 쾌적하게 배변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LNT에만 신경을 쓴다면 어떤 방법이든 틀린 것은 없다.
JMT는 퍼밋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Wilderness Area 즉, 야생 구역으로 지정하고 관리하는 곳을 트레킹 하기 때문에 내가 다녀간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된다. 이를 Leave No Trace (LNT)라고 이야기하고 JMT의 모든 트레커는 LNT를 엄격히 준수함으로써 자연을 보호하고 있다. 퍼밋에 제한 인원이 있는 이유 또한 수용 불가능한 인원으로 자연이 훼손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위에서 배변을 위해 구멍을 팔 때 물에서 60m를 벗어나야 하는 것도 LNT의 일종이다.
한국에서도 물론 LNT는 지켜야 할 덕목이지만, 여전히 미성숙한 등산 문화를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한편으로 한국 산에서는 하루 안에 쓰레기통, 화장실, 식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해외만큼 엄격한 LNT를 요구할 필요가 없기도 하다. 따라서 해외로 트레킹 하는 여행객들은 누구보다 철저하게 LNT를 알아보고 준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LNT는 기본적으로 링크(https://lnt.org/why/7-principles/)에 나와있는 7가지 규칙을 기반으로 실시한다. 또 JMT에서 발급하는 퍼밋의 뒷면에는 트레킹 규칙을 자세히 적어 놓았으므로 트레킹 중에 궁금한 것이 있다면 대부분 뒷면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헷갈리는 것은 가끔 만나는 레인저(공원 관리자?)에게 꼭 물어보고 확인하도록 하자. REI에서 만든 유튜브 영상에는 LNT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것도 있으므로 참고하면 좋다.
(https://www.youtube.com/watch?v=Rpq01rO9ZR0&t=66s)
JMT는 2주 이상의 중장거리 트레킹이므로 위생을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탈출에 며칠이 소요되는 트레일인 만큼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다. 다행히 트레일에는 최소한 3시간 간격으로 물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씻는 것에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LNT를 지키기 위해서는 아무 비누나 무분별하게 사용할 수는 없다. 트레일에서 사용하는 비누는 반드시 친환경 성분으로 만든 캐스틸솝(Castile soap)를 사용해야 한다. Castile soap 에도 향료를 첨가한 제품이 있지만, 야생 동물에 영향을 미치거나 곰을 불러올 위험성이 있으므로 무향 제품만을 사용해야 한다. 치약도 완전히 동일하다.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제품으로는 '닥터 브로너스' 제품이 거의 유일하다. 해외 채널을 참고했을 때도 닥터 브로너스 제품을 많이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 고형 제품을 구매하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한국에 무향 고체 제품을 팔고 있지 않아서 액상으로 가져갔다. 치약도 닥터 브로너스를 사용했는데 무향 치약을 아예 팔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아니스 향을 구매했다. 다행히 곰은 만나지 않았다.
사실 트레일에서 비누를 쓰고 샤워한 적은 많이 없다. 매일 밤마다 지치고 추워져서 도무지 씻을 엄두가 나지 않았던 적도 있고, 그냥 물놀이를 하다 보니 개운해져서 비누칠을 하지 않았던 적도 많다. 대부분 몸은 수영으로 씻고, 빨래할 때만 가끔씩 비누를 써서 냄새나지 않게끔만 관리해 주었다. 트레일이 하도 건조하다 보니 아무리 땀을 많이 흘려도 물에 씻고 말리면 전혀 찝찝함이 없다.
그럼에도 씻기로 결심한 날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먼저 물병 세 개를 모두 챙겨서 강 가로 내려간 후 물을 전부 담고 물에서 60m 이상 떨어질 때까지 걸어간 후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고 옷을 벗는다. 손수건을 준비해서 물을 묻힌 후에 비누를 살짝 뿌려 거품을 만들고 몸을 구석구석 닦는다. 그리고 물을 뿌려 헹궈주면 끝이다. 자세한 내용은 유튜브를 참고하자 이것도 REI 영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vLmpsEXwvE8&t=62s)
샴푸나 치약의 양을 계산할 때는 실제로 제품을 받은 후에 LNT를 준수하는 방식으로 샤워해 보고 전과 후 무게를 비교하여 사용량을 확인하다. 이를 예상 일수로 곱하면 필요한 양을 계산할 수 있다. 이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조금 덜 쓸 것을 감안하여 양을 결정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100ml를 가져갔지만 예상한 양보다 훨씬 적게 사용하여 반도 사용하지 않은 듯하다. 다만 L 씨는 도중에 소분 용기가 닫히지 않아 계속 비누가 새는 문제가 있었다. 조금 비싸더라도 무인양품 같이 믿을 수 있는 용기를 사용하자.
JMT 후기를 조금만 찾아보면 알겠지만 거기서 맛보는 모기는 정말 지옥이다. 자는 곳을 찾을 때마다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이 모기였다. 운 좋게 모기가 없는 곳에 텐트를 친 날이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모기가 끔찍한 이유는 위에서 말한 모든 것들(똥 싸기, 씻기)과 밥 먹기를 수많은 모기에 둘러싸여서 해야 되기 때문이다. 트레킹 기간 중 최소한 7일 이상은 헤드 네트를 쓰고 숟가락을 넣을 때만 망을 들어서 먹었다. 그렇게까지 해도 발목이나 목덜미를 물 정도로 모기가 많다.
그래서 헤드 네트는 일단 필수이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어떤 것을 사도 괜찮으니 미리 구매하는 것이 좋다. 현지에서 구매하면 가격이 배는 비싸기 때문이다. 가지고 다닐 때 주머니가 있으면 편하기 때문에 이왕이면 주머니가 있는 걸 사는 게 좋다. 패킹할 때 헤드네트는 손으로 바로 꺼낼 수 있는 위치에 두는 것이 좋다. '모기가 조금 많네?' 싶을 때 바로 쓰지 않으면 이미 몇 방은 물려있다.
모기 퇴치제는 선택에 가깝다. 만약 운행 중에 긴팔과 긴바지를 착용할 예정이라면 필요 없다. 나를 제외한 두 명은 운행 중에 긴바지를 입어 거의 모기 퇴치제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나는 반바지를 입고 운행해서 몇 번 사용한 적이 있다. 모기 퇴치제는 스프레이라서 수하물에 싣기 어렵다. 우리는 현지 아웃도어 매장에서 구매하였는데 성분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게 있었다.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은 Deet라는 성분이 사용된 것으로 보통 제품에 몇 퍼센트가 사용되었는지 표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직원에게 물어보았을 때 JMT면 가장 낮은 제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하였고 실제로 그랬다.
당시에는 Deet가 인체에 안전한지 확신이 없어서 사용을 꺼렸는데, 찾아보니 인체에 유해하지 않음이 입증되었다고 한다. 오히려 Deet는 휘발성 성분으로 합성섬유 옷감에 사용하는 경우 옷감 손상의 위험성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Deet는 얼굴에 사용하는 경우 귀, 이외의 부위에도 피부에 직접 도포하는 것이 올바른 사용법이다. 그러나 Deet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트레킹 도중에 레인저에게 Deet 취급 방법을 물어본 적이 있는데, 성분이 정수 필터로 걸러지지 않아 물로 씻어서 흘려보낼 경우 다른 사람이 이를 마시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유칼립투스 등을 이용한 친환경 모기 퇴치제를 판매하고 있으니 이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만약 불가피하게 Deet를 사용하였다면 반드시 물에서 떨어진 곳에서 세척한 후에 물에 들어가야 한다.
JMT의 건조함은 상상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했다. 서있는 채로 육포가 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온갖 모래에 뒤덮여 씻지도 못한 채로 햇빛을 받다 보니 공기와 닿는 피부는 죄다 갈라지고 피가 나기 시작했다. 얼굴에 바를 로션을 최대한 아껴서 몸에 바르고 썬크림까지 바르고, 게다가 물까지 가끔 칠해줘도 소용이 없었다. JMT에서 보습은 정말정말정말정말 중요하다.
하필 세 명 전부 덜떨어진 인간들이라 립밤이나 핸드크림은 잘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더군다나 무게가 중요한 JMT에 핸드크림을 가져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트레일이 거의 끝날 때쯤 Red's Meadow라는 보급지의 상점에서 Extra Moisture 로션을 2$ 정도에 살 수 있었는데, 그게 없었으면 정말 육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밤, 오랜만에 로션을 만난 다리 전체가 따끔따끔해서 잠들기가 어려웠다.
JMT에는 매일 공기 중에 나와있는 피부를 전부 바르고 남을 정도의 로션이 반드시 필요하다. 기름이 많은 체질도 예외는 없다. 핸드크림만큼 뻑뻑해서 절대 수분이 날아가지 않을 것 같은 로션을 가지고 가는 게 좋다. 내가 가져간 장비는 대부분 만족했는데 한 가지를 되돌릴 수 있다면 로션만은 넉넉하게 챙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