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익없는 생일

생일같은거 필요없어(?)

by 씩스미미

10월 24일 00시, 땡!


쏟아지는 생일 축하 메시지로 핸드폰이 울려댄다. 24일이 속해있는 주간은 매일매일 생일 초 불러 다니기에 바쁘다. 넘쳐나는 생일파티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닥 좋아하지도 않는 케이크들이 처치 곤란인 채 쌓인다.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버린다. 죄책감이 살짝 들었지만 내심 뿌듯하다. 케이크 수는 나의 인기를 나타내는 거니까.


서른네 번째의 생일을 맞은 2023년, 우리 집 냉장고는 텅텅 비어있다. ‘응? 케이크가 하나도 없다고…?’ 빈 냉장고를 바라보는데 잠깐 현타가 온다. 내 생애 케이크를 받지 못한 첫해이다. 자정만 되면 축하 메시지로 윙윙 울려대던 핸드폰도 잠잠하다. 아차차, 직장 동료들과 조각 케이크 하나 나눠 먹었네. 30대의 생일은 원래 이런건가?


7c079278b9d3b452158eb905fd45b453_res.png 나홀로 파티...


사회초년생이었던 20대 중반, 퇴근 시간만 되면 동료들이 물었다.

“오늘은 어디 가?”

“홍대에서 대학 친구들 만나요!”


그다음 날,

“오늘은 또 어디 가?”

“오늘은 강남에 술 먹으러 가요!”


또 그다음 날,

“오늘은 어디…”

“오늘은 스터디요!!!”


만날 사람은 늘 차고 넘쳤다. 중고교 동창, 대학 동창, 동아리 친구들, 대외활동에서 만난 언니 오빠, 심지어 봉사활동 같이하던 친구들까지도… 스터디 모임은 덤이다. “ㅇㅇ씨는 친구가 진짜 많은 것 같아.” 동료들의 말에 내심 으쓱했다. “하하 뭐 별로 많지도 않아요. 근데 제가 좀 많긴 한 것 같아요.^^” 친구의 수와 약속의 개수는 나의 인기를 증명해 주었다.


이 와중에 단 한 명만은 다른 반응이었다. 늘 나에게 직언을 날리던 7살 위 선배는 술 먹으러 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그 친구들 얼마 안 간다. 나이 들면 다 끝이야-.” 나는 부정했다.

“아닌데요, 아닌데요? 저 계속 만날 건데요?”

“지켜봐, 누구 말이 맞는지.”

난 지켜보았다. 선배 말이 맞았다. 내가 서른넷 생일에 초 하나 불지 못할 것이란 걸 그녀는 이미 알았던 걸까.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된 기분을 만끽했었다. 돈도 버니 술값도 걱정 없겠다, 오만사람에게 다 연락해가며 약속과 모임을 주도하고 새로운 모임들에 나가며 인간관계를 무한대 확장해나갔다. “나 맥킨지 다니는 사람 알아~ 얼마 전엔 나이키 본사 직원도 알게 됐어! 신기하지?” 새로 사귄 사람들의 삐까뻔쩍한 소속은 나에게 자랑이었다. 황새를 따라가지 못한 뱁새가 그들과 같은 무리에라도 있고 싶은 마음이었달까. 약속은 점점 더 많아졌다.


30대가 되자 주변 지인들은 하나둘씩 결혼하고, 가정을 가지고, 아이를 낳았다. 우리들의 각자 생활은 점점 달라져 갔다. 환경이 변하는 만큼 약속의 수도 비례하게 줄었다. 아니, 기하급수적으로. 생일이라는 이유로 우리들이 매년 만나기엔 그 구실이 약했다. 그들의 집에는 우는 아이가 있었고, 눈치를 주는 남편이 있었다. 새로운 관계를 갖는 것에 대해서도 점차 회의감이 들었다.


한 해 두 해가 지나고 이젠 조용한 생일이 익숙해졌다. 아주 가까운 지인들과 밥을 먹고,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달리기하고 책 읽는 그런 생일이 어느새 익숙해졌다. 이 또한 꽤 괜찮다. 하지만 텅 빈 냉장고와 줄어드는 축하 메시지가 아직은 씁쓸한 것 같기도 하다.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걸까. 이럴 바엔 아무도 내 생일을 모르고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도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선우정아의 <My Birthday Song> 이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생일 같은 거 아무도 모르고 넘어갔으면. 사랑은 받는 것도 참 쉽지 않아.” 20대에는 그저 글로만 읽히던 이 가사가 서른넷이 된 지금에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선우정아가 이 노래를 언제 썼나 찾아보니 공교롭게도 지금의 내 나이다. 사람사는거 다 비슷한가 싶기도 하고. 그래도 내년엔 초 한 번은 불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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