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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씩스미미 Jan 11. 2024

내가 바란 그 미래는.

겨우 누군가의 위층이야.

 어느 날, 거래처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회사 후배가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저 대리님처럼 되고 싶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대리님은 주변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거 같아요. 항상 평온하시고...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아주 큰 착각이었다. 후배들이 닮고 싶어 하는, 이 평온해 보이는 모습이 늘 주변과 비교를 일삼으며 쟤보다 세고 싶어서 아등바등하고 있는, 속 시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포장지인 건 너희들은 모르겠지. 후배들이 “대리님 멋있어요!!!” 라는 말들을 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잘들 속고 있네.’


 남들과 늘 비교하는 것은 내 인생에 디폴트 값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퀘스트와도 같은 일들에 있어서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수능 점수가 반토막났지만 한 학년 밀리는 것이 싫어서 그대로 진학했고, 친구들은 휴학하고 회계사다 세무사다 공부를 했지만 4학년 3학기를 마치자마자 냅다 취업해서 가장 먼저 사회인이 되었다. 마치 게임 캐릭터처럼 누구보다도 빨리 퀘스트를 깨기 위해 전력질주했다. 취업준비생 친구들은 나에게 항상 외쳤다. “직장인 선배님, 술 좀 사줘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시간이 꽤 지나 친구들이 모두 취업하고 나니 나의 연봉과 네임벨류는 별 볼 일 없는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대기업과, 은행과, 회계사 연봉은 중소기업 종사자로서 감히 넘볼 수 없는 천상의 것이었다. 나는 그들보다 또 한발 앞서가야만 했다.


 마침내 찾은 돌파구는 3천만 원짜리 대학원 학위였다. 공부를 위해서 진학했다고 말은 했지만, 한발 앞선 다음 퀘스트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와 회사 다니면서 학교까지 다녀?”, “우리 중에 네가 유일한 석사님이다! 대단해.” 주변의 달콤한 말과 3천만 원을 맞바꿨다. 비싼 돈과 밤잠 못 자가면서 힘들게 추가한 이력서 한 줄에 5학기 동안의 고생은 눈 녹듯 사라졌다. 


 어느덧 5학기 동안의 대학원 생활이 지나고, 졸업을 앞둔 시점에 선우정아의 <쌤쌤>이 발매됐다. ‘와 언니 신곡 나왔어!!!’ 라며 신나는 마음으로 노래를 재생했다.


 내가 바란 그 미래는 겨우 누군가의 위층이야. 아래엔 다른 이의 Dream.

<쌤쌤> 뮤직비디오 티져. 아래와 위가 아주 명확한 정글짐.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듯했다. 천재 뮤지션이라고 불리는 사람도 이런 감정을 느끼다니…. 하지만 놀라움은 잠시였다. 나와는 다른 대우를 받는 사람인데 이렇게 동질감을 느껴도 되는 건지 스스로를 의심했다. 선우정아도 내입장에서는 위층에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노래를 듣는 상황에도 비교를 멈추지 않았다.


 <쌤쌤>을 수십 번 수백 번 듣고 나서야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었다. 남들보다 우위를 점했다는 것에 우월감을 느끼며 그게 나를 발전시키는 거라고 믿고 살아왔다. 내 안의 어떤 작은 아이의 불평불만이라는 것을 내심 알았지만 모르는 척했다. 이 뒤틀린 아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인정하기 싫었지만 내 앞으로의 행복을 위해서는 잘 달래야만 했다. 퀘스트 찾는 일을 멈추어야만 했다.


 하지만 30여 년 동안 누군가의 위층이 되기 위해 발버둥을 쳐온 나의 습관은 쉬이 버려지지 않았다. 내 이력에 한 줄이라도 더 긋기 위해 무형의 것들을 자꾸만 찾고 있다. 3천만원 짜리의 퀘스트 그 이상의 것이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자꾸만 찾으려고 한다.


 지금도 마음 속 뒤틀린 아이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에게 묻는다. ‘다음 퀘스트는 뭐에요?’ 그럴 때마다 <쌤쌤>을 듣는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인지, 정말 간절한지. 3천만 원을 들이고 난 뒤 마주한 이 노래는 내 인생에 지침이 되었다. 앞으로 노래를 들으며 이 아이를 평생 잘 달래며 살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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