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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씩스미미 Jan 04. 2024

케익없는 생일

생일같은거 필요없어(?)

 10월 24일 00시, 땡!


 쏟아지는 생일 축하 메시지로 핸드폰이 울려댄다. 24일이 속해있는 주간은 매일매일 생일 초 불러 다니기에 바쁘다. 넘쳐나는 생일파티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닥 좋아하지도 않는 케이크들이 처치 곤란인 채 쌓인다.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버린다. 죄책감이 살짝 들었지만 내심 뿌듯하다. 케이크 수는 나의 인기를 나타내는 거니까.


 서른네 번째의 생일을 맞은 2023년, 우리 집 냉장고는 텅텅 비어있다. ‘응? 케이크가 하나도 없다고…?’ 빈 냉장고를 바라보는데 잠깐 현타가 온다. 내 생애 케이크를 받지 못한 첫해이다. 자정만 되면 축하 메시지로 윙윙 울려대던 핸드폰도 잠잠하다. 아차차, 직장 동료들과 조각 케이크 하나 나눠 먹었네. 30대의 생일은 원래 이런건가?


나홀로 파티...


 사회초년생이었던 20대 중반, 퇴근 시간만 되면 동료들이 물었다.

 “오늘은 어디 가?”

 “홍대에서 대학 친구들 만나요!”


그다음 날,

 “오늘은 또 어디 가?”

 “오늘은 강남에 술 먹으러 가요!”


또 그다음 날,

 “오늘은 어디…”

 “오늘은 스터디요!!!”


 만날 사람은 늘 차고 넘쳤다. 중고교 동창, 대학 동창, 동아리 친구들, 대외활동에서 만난 언니 오빠, 심지어 봉사활동 같이하던 친구들까지도… 스터디 모임은 덤이다. “ㅇㅇ씨는 친구가 진짜 많은 것 같아.” 동료들의 말에 내심 으쓱했다. “하하 뭐 별로 많지도 않아요. 근데 제가 좀 많긴 한 것 같아요.^^” 친구의 수와 약속의 개수는 나의 인기를 증명해 주었다.


 이 와중에 단 한 명만은 다른 반응이었다. 늘 나에게 직언을 날리던 7살 위 선배는 술 먹으러 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그 친구들 얼마 안 간다. 나이 들면 다 끝이야-.” 나는 부정했다.

 “아닌데요, 아닌데요? 저 계속 만날 건데요?”

 “지켜봐, 누구 말이 맞는지.”

난 지켜보았다. 선배 말이 맞았다. 내가 서른넷 생일에 초 하나 불지 못할 것이란 걸 그녀는 이미 알았던 걸까.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된 기분을 만끽했었다. 돈도 버니 술값도 걱정 없겠다, 오만사람에게 다 연락해가며 약속과 모임을 주도하고 새로운 모임들에 나가며 인간관계를 무한대 확장해나갔다. “나 맥킨지 다니는 사람 알아~ 얼마 전엔 나이키 본사 직원도 알게 됐어! 신기하지?” 새로 사귄 사람들의 삐까뻔쩍한 소속은 나에게 자랑이었다. 황새를 따라가지 못한 뱁새가 그들과 같은 무리에라도 있고 싶은 마음이었달까. 약속은 점점 더 많아졌다.


 30대가 되자 주변 지인들은 하나둘씩 결혼하고, 가정을 가지고, 아이를 낳았다. 우리들의 각자 생활은 점점 달라져 갔다. 환경이 변하는 만큼 약속의 수도 비례하게 줄었다. 아니, 기하급수적으로. 생일이라는 이유로 우리들이 매년 만나기엔 그 구실이 약했다. 그들의 집에는 우는 아이가 있었고, 눈치를 주는 남편이 있었다. 새로운 관계를 갖는 것에 대해서도 점차 회의감이 들었다. 


 한 해 두 해가 지나고 이젠 조용한 생일이 익숙해졌다. 아주 가까운 지인들과 밥을 먹고,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달리기하고 책 읽는 그런 생일이 어느새 익숙해졌다. 이 또한 꽤 괜찮다. 하지만 텅 빈 냉장고와 줄어드는 축하 메시지가 아직은 씁쓸한 것 같기도 하다.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걸까. 이럴 바엔 아무도 내 생일을 모르고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도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선우정아의 <My Birthday Song> 이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생일 같은 거 아무도 모르고 넘어갔으면. 사랑은 받는 것도 참 쉽지 않아.” 20대에는 그저 글로만 읽히던 이 가사가 서른넷이 된 지금에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선우정아가 이 노래를 언제 썼나 찾아보니 공교롭게도 지금의 내 나이다. 사람사는거 다 비슷한가 싶기도 하고. 그래도 내년엔 초 한 번은 불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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