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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씩스미미 Dec 12. 2023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간다.

선우정아 - 그러려니

 2018년 홍대 소극장에서  「선우정아 note」 라는 타이틀로 약 3주 동안 공연을 했다. 총 12회 차 중  절반 정도 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같은 셋 리스트임에도 불구하고 매 공연마다 마음속에 깊이 꽂히는 노래가 매번 달랐다. 그날은 「그러려니」 라는 노래가 주인공이었다. 노래의 첫 소절이 흘러나오는 순간 중학교 3학년 때의 같은 반 친구가 떠올랐다.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간다. 끊어진 연에 미련은 없더라도 그리운 마음은 막지 못해-’      

 담임선생님은 그 친구와 내가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어쩌다 너희 둘이 다니게 됐냐” 라는 말을 왕왕하셨다. 전교에서 키가 작은 순으로 1, 2번을 다투던 둘이 교실 복도를 지나다닐 때면 선생님들의 의도치 않은 안부 인사들을 많이 듣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살가롭지는 않았지만 스스럼없었다. 둘 다 비슷한 성적 수준에서 비슷한 고민을 나누며 공부방도 다니고 떡볶이도 먹으며 평범한 중학생 단짝친구처럼 지냈다.


 친구에게는 단짝 친구가 나 말고 한 명 더 있었다. 우리 반 회장이다. 친구와 회장은 집이 가까워 학교에서의 시간 뿐 만 아니라 하교 후에도, 주말에도, 공부방이며 학원이며 가까이 지냈었다.


 나도 회장과 같은 반이었기에 우리 셋은 왕왕 함께 다녔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였다. 친구가 나와 단둘이 있을 때는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회장만 함께하게 되면 나를 부하직원 부리듯 하는 것이었다. 우선, 호칭이 ‘야-’로 바뀐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를 자꾸만 지시한다. 어깨를 툭툭 치기도 한다.     


“야, 커피 좀 뽑아와 봐.”


내가 늘 뽑아갔던 그 레쓰비.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불편함을 내 비추진 않았다. ‘둘만 있을 땐 안 그러니까 괜찮겠지-’ 문제를 직면하기보다는 회피하기에 전문인 나는 셋이 모이는 시간을 최대한 피하며 불편한 마음을 감춘 채 그렇게 어물쩍 중학교 3학년 시절을 보냈다.


 각자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서로에게 다소 뜸한 시간을 보내다가 대학생이 되어 우리는 다시 만났다. 젊은이들로 가득한 신촌 등지에서 술도 마시며 대학 생활을 만끽했다. 진로를 고민하게 되는 3, 4학년쯤부터 친구들은 시험 준비를 했고 나는 비교적 일찍 취업해서 이른 사회생활을 시작했었다.


 둘은 원하던 시험을 붙었고, 어느 정도 사회인의 모습을 갖추고 나서 우리 셋은 만났다. 회사 생활의 고충과 이러저러한 연애사들을 나누며 평범한 직장인으로서의 대화들을 이어갔다. 밥을 맛있게 먹고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동벨이 울리는 순간 친구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야, 갔다 와.”     


순간 ‘뭐지...?’ 싶었다. ‘이거 처음 아닌데?’ 라는 기시감이 들었고 동시에 머리가 굳었지만 쉼 없이 울려대는 진동벨을 일단 멈춰야 했다. 친구의 말에 따라 커피를 가져왔다. 일단 마셨다. 한참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집에 갈 시간이 되었고, 이때 친구가 나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야, 뭐해. 갖다 놔야지.”     


얼룩진 커피잔과, 생크림이 덕지덕지 묻은 빈 접시가 ‘뭐해 얼른 치우지 않고?’ 라며 멀뚱멀뚱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나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평소처럼 순순히 대답하던 모습이 아니라 그 친구도 머쓱해졌던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뭐야 왜 그래- 너 자리가 가깝잖아.”

“이런거 왜 맨날 내가 갖다 놔야돼? 내가 너 쫄따구야?”     


라는 말은 역시나 하지 못했다. 말없이 컵과 접시를 반납창구에 가져다 놨다. 학창 시절에 나도 모르게 묻어두었던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다. 어릴 때는 기분이 나쁜지 어떤지도 잘 몰랐다. 또는 알았지만 모른 척 외면했던 것일 수도. 내가 얘한테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결국 빈 컵과 접시를 반납한 것은 나였다. 늘 그래왔듯 아무렇지 않은 척 친구와 수다를 떨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그 친구들과의 관계는 점차 정리됐다. 한두 번 문자가 오갔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나는 그 관계를 10여 년 만에 끝냈다. 헌데 이상하리만큼 괜찮았다. 친구와 함께했던 중학교 3학년 시절이 마냥 나쁘지만 않았고 좋았던 추억도 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가 끝남에 있어 큰 생채기가 나지는 않았다. 그동안 작은 상처들이 수없이 생기고 낫는 과정에서 이미 굳은살이 박인 것일까. 오히려 친구를 잃은 사실보다 슬펐던 건, 이따금씩은 행복했던 중학교 3학년 시절을 마냥 행복하게 추억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끊어진 연에 미련은 없더라도 그리운 마음은 막지 못해' 라는 선우정아 ‘그러려니’의 가사를 들을 때마다 그 친구가 늘 생각난다. 우리의 인연에 미련은 없다. 친구의 소식은 SNS를 통해 종종 보곤 하는데 엄지손가락 터치 한 번이면 될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 걸 보면 굳은살에 새살이 돋지는 않은 것 같다.


 30대 중반이 된 지금도 여전히 싫은 걸 싫다고 말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쉽지 않은 말을 뱉어야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어린 시절에는 와 닿지 않던 노래 가사가 점점 달리 들리는 건,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간다는 방증인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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