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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씩스미미 Jan 15. 2024

비혼이라고? 미혼이 아니라?

있잖아 난 너를. 영원히 사랑해.

어느 날, 엄마가 조심스럽게 말을 거신다.


“짝은 딸~ 엄마가 뭐 하나만 말해도 돼? 화내지 말고.”

“응??? 무슨 일이세요?”

“엄마 친구 00 있잖아. 00 아들의 친구인데 87년생이래. 회사가 전자제품 무슨 연구원 다니는….”

“안 해.”


직접화법이 안 통할 때는 간접화법도 사용하신다.


“짝딸~ 엄마가 곧 칠순이야. 더 할머니 되기 전에 한복 입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될까?”

“엄마 한복 입고 싶어? 사줄까? 무슨 색? 어디서 살래? 얼마면 돼?”

“누가 그 한복 입고 싶대???????”

내 반응은 차분하던 엄마의 속을 뒤집어놨다.


 내 나이 스물넷쯤이었나. 동갑내기 직장 동료 둘이 더 있었다. “우리 셋 다 스물일곱에 결혼하자! 그때가 딱 적당한 것 같아. 아기도 비슷한 시기에 낳고!” 둘은 결혼도, 출산도, 약속했던 ‘적당한 때’에 성공했다. 어느덧 십 년이 지나 우리들은 서른넷이 되었다. 나 홀로 미혼인 채로. 


 ‘결혼은 반드시 꼭 해야 해!’ 라는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안 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복잡다단한 연애 생활을 거치고 나서 하나 깨달은 건 나는 누군가와 함께 맞춰가며 사는 것이 맞지 않는다는 거다. 안 맞으면 끊어내기 바쁘고, 고집은 또 얼마나 센지, 그렇다 보니 1년 이상 지속한 연애는 한 두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옆에 누군가 있든 없든 혼자만의 생활을 즐겼다. 혼자 노는 것에 달인이 되어 상대방의 존재는 중요치 않았다. 게다가 운동이며, 사진이며, 공연 관람이며, 취미는 좀 많은지, “너는 나 대체 왜 만나? 남자친구가 필요하기는 해?” 늘 들어왔던 전 남친들의 고정 멘트다.


 잠시 잠깐의 연애조차도 안 맞는 거 맞춰가느라 혼이 쏙 빠질 지경인데 한평생을 산다는 건 당최 상상할 수도, 진입할 수도 없는 영역이었다.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은 내 눈엔 마치 성인과도 같았다. 심지어 육아까지 하는 친구들은 어떤 경지를 뛰어넘은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휴 대단한 녀석들. 하지만 난 못해. 아니 안 해….’ 


 처음부터 비혼은 아니었지만, 미혼이 길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혼으로 가는가 싶었다. 그러다 선우정아의 <동거>라는 곡을 듣게 됐다.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잠든 너의 맨발을 가만히 보다 왠지 모르게 벅차올라 맺히는 마음. 방 안 가득 달큰한 호흡. 저 바깥바람은 틈만 나면 껴들어 춥게 해. 조금 더 안을래 가까이. 세상에서 제일 가까이


‘그래 뭐. 맨날 말하던 남편님 이야기인가 보지 뭐. 멋지네.’ 선우정아는 무려 10년을 연애했고 심지어 결혼생활도 10년 가까이 이어가고 있다. 남편이 뮤즈라고 인터뷰에서 여러 번 말한 터라 선우정아의 사랑 노래에 대해서는 대체로 익숙했다. 하지만 뮤직비디오만큼은 달랐다.


 해 질 무렵의 겨울 바닷가에 두 남녀가 있다. 여성의 뒤를 남성이 따라가고 있다. 여성이 뒤를 돌아 남자를 바라보자 남성은 여성을 향해 뛰어온다. 둘은 포옹을 하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두 남녀가 배우였으면 대수롭지 않은 흔한 장면으로 넘겼을 것이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사람은 선우정아와, 그녀의 실제 남편이었다. 언제나 카리스마 넘치고 엄청난 아우라를 뿜어내는 선우정아는 오간 데 없었다. 남편을 바라보는 선우정아는 마치 수줍은 소녀 같았다. 20년이 지난 관계라고는 믿기지 않는 눈빛. 그 눈엔 사랑이 가득했다. ‘아… 이것이 바로 찐 사랑인 건가…?’


 인생에 중요한 영역이 아니었던 남자친구가, 남편이라는 존재가, 사랑이라는 것이, 이렇게도 사람을 충만하게 하는 것이었다니. 심지어 독고다이로 살 것 같은 자유로운 영혼의 선우정아가 저런 눈빛을 뿜어내니 믿기지 않았다.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있잖아 난 너를 아직도 사랑해. 시간이 낡았고 모든 게 변했어도. 있잖아 우리는 그냥 이대로 살자. 대단치 않아도 둘이서 매일을 조그맣게.


 대단치 않은 매일을 나누며 함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인연이 나에게도 남아있을까? 내 안에도 선우정아와 같은 그런 눈빛이 과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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