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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Mar 29. 2019

아무도 안 궁금한 머리핀 자급자족 이야기

아들셋 엄마의 고상한 취미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몇 가지 아이템을 유난히 좋아했다. 딱히 쓸 데도 없으면서 모으고 싶고 사고 싶은 그런 거. 대표적으로 '립밤'이나 각종 '필기구',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리본머리핀'이었다. (립밤은 가격이 중요하지 않았고, 각종 펜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하게 사서 모았다.)




참 꾸준히도 머리핀, 머리끈을 사서 썼었다. 아주 어렸을 때는 '곱창'이라 불리는 밴드도 좋아했고, 좀 크고 나서는 리본핀이나 하나로 질끈 묶을 수 있는 리본 달린 머리끈을 계절마다 하나씩 샀던 것 같다. 주로 옆머리에 꽂는 집게핀이랑 내 거대한 머리숱을 감당할 수 있는 탄탄한 고무줄을 골랐다. 자동핀은 꽤 많은 것들이 내 머리숱에 터져나가 뒷목을 탕 치고 팽 당했던 기억이 있다. (애 셋을 낳고 머리가 많이 빠진 건지 숱 치는 기술이 발달한 건지 이제는 10센티 자동핀이 잠기긴 하더라. 다행이냐 불행이냐)



머리핀을 살 때면 마음에 쏙 드는 재질, 모양, 사이즈, 가격... 이걸 찾는 게 하늘의 별 따기 같았다. 어쩌다가 '어머 이건 사야 해.' 하는 아이템을 발견하면 막 색깔별로 쟁이고 싶은데 그러자니 돈이 많이 드니까 다 지르지도 못하고 눈에만 밟히는 거다. 맘에 쏙 드는 게 없을 땐 그냥저냥 이거라도 사자며 대충 집어오곤 손이 잘 안 갔던 것들도 많았다.



이상하게 이 '리본핀'이라는 게, 했던 사람은 계속 신나게 골라가며 꽂는데 안 해왔던 사람들은 무채색 머리끈 하나 하는 데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더라. 내 친구도 자기 딸은 화려한 거 해줘도 본인은 절대 못 꽂겠다며 손사래를 친다, ' 아니 진짜 너 이거 하면 너무 예쁠 거 같아!' 해도 끝까지 민망해하며 거부한다. 나는 반대로 꾸준템을 포기하지 못하고 아줌마가 되어서도 머리핀을 찾고 있다.



눈에 들어오는 머리핀을 찾아 삼만리를 하던 아들 셋 엄마는 결국! 자기 손으로 입맛에 맞는 머리핀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어쩌다가 이렇게 내 마음에 쏙 드는 머리핀을 내 손으로 만들어서 그것도 그렇게나 원하던 '깔 별 쟁임'을 하게 된 건지, 지금도 외출할 때마다 핀을 고른다는 게 정말 행복하다.



누군가는 '저 아줌마 나이가 삼십 대 중반인데 뭔 머리핀 타령이야, 왜 러블리한 척이야, 왜 소녀 같은 척이야.' 욕을 욕을 하더라도 나는 꿋꿋이 마이웨이를 걷겠다는 머리핀 덕질, 리본 자급자족 일기! (리본은 소녀들만 하는 건 줄 아는 사람들, 아들만 있는데 왜 만드냐고 하는 사람들 각성하라 각성하라)




눈 오는 날 왼손으로 유모차를 밀고 오른손으로 굳이 뒤통수 셀카를 찍겠다며 묘기 부리는 내 모습... 생각하면 왠지 부끄럽지만 덕분에 저 싱싱한 인디고블루 색감과 계절감까지 확실히 느껴지는 사진을 얻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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