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방학은 길다. 겨울방학은 여름방학보다 두 배 길어(학교마다 차이는 있다)약 두 달 정도를 집에서 지지고 볶게 된다. 시끄러움과 돌밥의 향연인 그 긴긴 방학의 오전 9시. 그때부터 10시 반까지는 그야말로 개꿀... 아니 달달한 꿀 같은시간이다. 초등학생 둘이(이 글을 쓰던 시점엔 막내가어린이집 원생이었는데 올여름방학부턴 얘도 초등방학에 합류한다. 털썩...)방학특강 줄넘기를 가기 때문이다. 그것도 매일이 아니고 주3회라 얼마나 소중한지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학기 중과 똑같이 먹을 것도 간단히 차려줬고 소란스럽게 아침이 지나갔으니 '일단 좀 쉬자' 하고 앉아있을 때도 있고, 너저분한 집을 먼저 치울 때도 있다. 집에 있으면 종종 늘어지는 기분이 들어 가끔은 카페로 가서 책을 읽거나 포스팅을 하거나 이것저것 할일을 하기도 한다. 뭘 한들 안 신나겠냐만, 이 짧은 시간 특별한 기쁨이 또 있다.
혼자 근사하게 차려먹는 아침상이다.
근사..? 밥상..? 이라고 하긴 사실 좀 웃기고, 한 그릇 음식, 브런치 스타일 뭐 주로 그렇다. 배고파서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그렇다고 빈속으로 카페 가서 커피부터 때려 붓기도 싫을 때, 내가 먹고 싶은 걸 후다닥 만든다.
아니 왜 맛있는 음식 애들 있을 때 만들지 혼자 있을 때 만드느냐 묻는다면... 나는 저 아들 세 명이랑 겸상하는 게 싫다(이렇게 솔직하면 곤란한데). 시끄럽다. 귀가 따갑다. 산만해서 정신이 사납다. 꼭 뭔가 싸움이 생긴다. 뒤치다꺼리할 게 자꾸 눈에 보이고... 뭔가... 뭔가... 아무튼 혼밥이 최고다!
오늘은 토마토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셋째 등원 시키자마자 집으로 달려와서(시간이 없다. 쫄린다.) 면 삶을 물부터 올렸다. 양파, 피망, 마늘... 어울릴만한 야채는 다 꺼내서 쫑쫑 썰었다.
아. 간편하다. 1인분의 면을 삶고, 1인분의 소스를 보글보글 재료 볶고 끓여서 후다닥 면과 섞어줄 때의 기분. 3인분 이상의 요리를 할 때랑은 확실히 다르다. 준비하고 손질할 재료도 적고, 흘릴 것도뒤적거릴 것도 적다.조리시간도 확 준다.
나는 손이 원체 작다. 둘째가 관용어에 대해 궁금해할 때 나는 '손이 크다, 손이 작다'를 먼저 알려주었다.
"봐봐. 엄마 음식 맨날 양이 좀 모자라잖아. 이런 걸 손이 작다고 해. 근데 할머니 봐봐. 그걸 우린 손이 크다고 하지...."
많은 분량의 요리를 잘 못한다. 그래서 어쩐지 매번 음식이 조금씩 모자라는 느낌이고, 손님대접 역시 잘 못한다. 과부하가 걸리고, 손이 느려지고,부엌은 카오스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우리 집은 '5인 식구'일뿐이고....
누구를 먹일 음식이 아니니 맛 없을까봐 전전긍긍 할 필요도 없다. 손 가는대로 휘리릭 내가 먹을 음식이니 편안하게. 힘빼고 하는 일엔 실패가 적다.
'나 하나 먹을 거 만드는 건 역시 편해.'
혼자 감탄하다가 1인분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손이 작아서음식을 잔뜩 못 하는 건 그래도 낫지. 마음그릇이 작아 5인분의 삶을 잘 못 살아내고 있는 건 좀 문제였다. 나를 제외한 4인과 소통하는 건 언제나 너무 어렵고, 어린 3인을 사람답게 길러내야 한다는 부담도 매일 마음을 짓누른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내 마음 하나 지키기도 사실 난 너무 힘든 인간인데...라는 생각이 스쳤다.
1인분의 삶 역시 그 나름의 무게와 외로움이 있을 테고, 지금 택하래도 혼자 사는 삶을 미련 없이 확 선택해 버릴 용기는 없다. 그렇지만 가끔 어떤 책임감에 압도당할 때, 몸과 마음이 너무 바쁘고 지칠 때면 생각해 본다.
1인분의 고요, 1인분의 간편함, 1인분의 가뿐함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스파게티를 꽤 괜찮게 만들어냈다. '책 보면서 먹어야지.' 했지만 실상은 유튜브의 유혹에 못 이겨 핸드폰 딱 앞에 두고. 맛있다. 미안하다 아들아...
이 꿀 같은 시간에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내 손으로(그것도 냉장고를 열심히 파서) 만들어 혼자 조용히 먹는 기쁨.맛있는 스파게티를 먹는 건지, 맛있는 시간을 먹는 건지 모르겠네.
이 시간만큼은 약간 마취된 것 마냥, 1인분의 삶들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마음그릇 생각은 잠깐 뒤로 두고 접시부터 비운다.
'시간이 쏜살 같이 지나간다'라는 지겨운 비유를 쓸 수밖에 없는 그런, 찰나의 시간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