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둔 어느 날, 전기밥솥을 사러 백화점에 갔다. 점원은 친절했고, 그가 밥솥 뚜껑의 고무 패킹과 물받이를 손수 분리하며 세척 방법을 알려주던 그 순간, 잠자코 설명을 듣고 있던 나는 별안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밥해본 적도 없는데 밥솥 청소를 어떻게 해!”
왈칵 쏟아진 내 눈물에 엄마, 예비 남편, 매장 직원 모두가 당황하며 서로의 눈치를 살피던 그 장면은 고스란히 박제되어 쏠쏠한 놀림거리가 된 채 10년의 세월이 흐르고 마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불고기나 갈비찜을 할 땐 늘 양념장을 직접 만든다. 시판 양념을 사지 않는 건 나의 마지막 자부심... 같은 건 아니고, 양가 부모님께 갈비찜을 만들어 대접할 때마다 “갈비를 참 맛있게 하네."라는 달콤한 칭찬을 받았던 기억에, 그리고 양념을 매번 직접 만들어 고기를 재던 엄마를 어릴 적부터 봐온 덕에 유지하는 방식이다. 앞으로 갈비찜은 항상 네가 하라는 모종의 압박 같은 칭찬에 낚인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난 내 손으로 만든 이 그럴싸한 요리를 식구들에게 맛 보이는 명절이면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그렇다고 명절이 좋다는 건 아니다...)
공을 들이자면 일이 아주 많다. 잡내를 없애려면 양파와 배도 갈아야 하고, 잔뼈와 불순물이 없게 고기를 씻고 핏물을 빼고 또 그걸 왕창 데쳐야 한다. 양념이 잘 배도록 칼집도 내야 하고, 감자와 당근은 으스러지지 않게 테두리를 둥글게 깎으면서 썰어줘야 한다. 설날이면 매년 치르는 어떤 의식처럼 남편과 나는 ‘갈비찜 과업’을 함께 수행해왔다. 내가 분량대로 양념을 배합하는 동안 남편이 믹서기로 양파를 간다거나, 내가 채반을 들고 있으면 남편이 고기 데친 냄비를 통째로 들어서 붓거나 하는 식으로. 마치 남편이 없으면 못 만들 아주 어려운 음식인 것처럼 부담 반 정성 반으로 갈비찜을 만들었다.
감염병 때문에 식구들이 모이지 못한 몇 년 전 설날, 그래도 먹을 건 먹고 싶어서 남편과 아이들에게 꼬지 재료를 꽂으라고 잔뜩 내어주곤 나는 혼자 주방에 서서 갈비찜을 준비했다.
어라? 근데 준비가 좀 ‘척척’ 되네? 생각보다 어렵지 않네? 이게 왜 이러지?
양파 툭툭 썰어 갈고, 배는 애석하게도 없으니 배 음료 한 캔 붓고. 으깨진 감자가 떠다니는 건 싫으니 그냥 빼련다. 당근도 아무도 안 좋아하니 없어도 되겠지. 표고버섯을 못 샀으니 꼬지 재료에 있는 느타리버섯 한 줌 집어올까? 큰 양푼과 삼발이 달린 넓은 채반 덕인지, 돌봄과 부엌노동이 꾸준히 만든 잔근육 덕인지, 고기를 데치고 옮기는 것도 뚝딱 해냈다. 갈비찜은 어렵다기보다 번거로운 요리라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나마의 번거로움도 재량껏 조절할 줄 알게 되다니, 어쩐지 조금 능숙한 주부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어깨가 으쓱했다.
어릴 때 놀던 운동장을 다 커서 보면 좁게 느껴지는 게 어른과 아이의 공간 감각 차이 때문이라던데. 주부 10년 차인 나와 밥솥 앞에서 울던 20대의 나, 둘의 내적 감각에도 어떤 차이가 생긴 걸까? 결국 경험과 반복일 거다. 보고 듣고 해 보고 그간 쌓인 주부의 시간이 마냥 공허한 시간은 아니었구나. 가보지 않은 길이 밥솥 하나에 다 달린 것처럼 겁먹었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는데.
갈비찜 위로 둥둥 뜬 기름은 꼭 걷어내라고 엄마가 말할 때마다 귀찮다며 말을 안 듣던 내가, 이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정성스레 기름을 걷어낸다. 감자, 당근은 취향대로 안 넣어도 괜찮다고, 기름은 좀 없애는 게 낫겠다고, 거를 건 거르고 취할 건 취할 줄 아는 유연한 주부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