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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가 낫냐 요리가 낫냐 물으신다면

정리에 취약한 사람입니다

by 아드리셋


글쓰기 모임 게시판을 보면 청소에 관한 글이 종종 올라온다. 오늘도 정리에 관한 글이 하나 올라왔고, 얼마 전엔 깔끔한 거실사진이 썸네일로 올라왔다. 그런 글을 볼 때마다 존경, 경외심 같은 게 든다. 그렇다. 나는 치우는 걸 잘 못하는 사람이다.





깔끔과는 거리가 멀다. 청소에 힘 안 쓰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법한 쓰레기장은 또 아니다. 아니지만... 치워져 있는 듯하면서 묘하게 더럽고, 청소를 하는 듯 하지만 묘하게 안 한다. 치우는 부분은 치운다. 식탁 밑 과자 부스러기 그런 건 열심히 청소기 돌린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나 이물질도 치운다. 돌돌이도 돌린다. 근데 그게 다다.


한번은 '써니쌤의 영어교실' 이름 붙여서 아이한테 직접 영어를 조금 가르쳐 주다가 '엄마도 너네 피아노 학원(가정형 학원)처럼 써니쌤의 영어교실 우리 집에서 정식으로 오픈해볼까?' 했더니 애가 말했다.

"근데 우리 집은 피아노 학원처럼 안 깨끗해서 안 될걸?"

뼈를 맞았다. 테솔이 아니라 테솔할아버지를 딴대도 저 문제 때문에 공부방 못 열거 같다.


조금 더 솔직해져 보자면... 너무너무 깨끗이 하고 싶은데 못하는 게 아니라, 너무너무 깨끗하게 하고 싶은 마음 자체가 없단 게 맞겠다. 우리 엄만 정말 깔끔하게 살았고 지금도 그런데. 그래서 엄마는 우리 집에 올 때면 모든 게 마음에 안 들고 성에 안 찬다. 문제는, 그 상태가 이미 엄마 오기 전날 싹~ 한 번 치운 거라는 거...


좀 지저분해도 그게 별로 문제 되지 않는 사람. 집안일은 결국 '못 참는' 사람이 먼저 하게 되는 것인데, 우리 부부는 둘 다 참 쓸데없이 잘 참는다. 그래서 우린 자주 말한다.

"둘 다 이렇길 망정이지 한 명이 서장훈 같았어 봐. 진작에 갈라섰을 걸?"


책상정리 같은 건 쉽지. 이불 빨래, 침구 관리, 창틀 먼지 제거, 창틀 실리콘 곰팡이 제거, 층간소음 매트 밑 먼지 청소, 계절별 옷장 정리, 각종 가전 필터나 거름망 청소, 타일 사이 광 내기... 주기적으로 바지런해야 하는 것들. 고수의 영역이다. 티도 확 안 나면서 품은 많이 드는 일들. 먼지 내고 더럽히는 게 일인 아이들 덕에 너무 쉽게 원상복귀 된다는 점도 큰 장벽이다. 어떤 행위에서 보람을 느끼고 성취감을 느껴야 그게 지속되는 건데, 적어도 나에겐 청소나 정리가 그런 일은 아니다.



그럼 요리는?



<바다거북 수프를 끓이자, 미야시타 나츠, 103쪽>

청소를 잘하는 사람은 요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청소에 서투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피프티 피플, 정세랑, 241쪽>

그래서 너는 어느 쪽이니? 정리를 잘하니, 요리를 잘하니? 둘 다 아주 잘하는 사람은 없단다.



이런 말들을 종종 들어왔다. 내가 읽었던 책에서도 두 번이나 봤다!(내심 반가워서 어디다 적어둔 걸 여기서 써먹네.) 그렇다고 내가 요리를 무슨 냉부해 나오는 셰프만큼 하느냐 그건 아니지만. 모든 사람이 이렇게 둘 중 하나만 잘한다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나는 가족들이 맛있다고 말할 만큼의 밥은 좀 하 편이다.(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가 영 그렇ㅎㅎ) 행위에서 느끼는 즐거움(까진 아니다. 밥 하기 싫다. 방학 돌밥에 우는 소리한다...)과 보람. 그런 게 청소보단 확실히 이쪽이 크다.


음식으로 짜잔~ 내보이는 거, 맛있다 맛있어 인정해 주는 말, 더 달라하며 먹는 모습, 내 한 끼를 스스로 해결한다는 기쁨. 이 편이 더 좋다. 엄청 깨끗한 집 만들고 싶어!는 없어도, 오늘 저녁메뉴 엄청 성공하고 싶어!는 있다.

잘 정돈된 공간보단 내 배와 너의 배를 내 손으로 만든 음식으로 채워다는 으쓱함이 내겐 더 맞는 것 같다. 정리보단 요리 잘하는 사람이 더 멋져 보이기도 하고.


오늘의 안 치워진 집이, 어제 먹은 식당 뺨치는 제육볶음이랑 육개장으로 어떻게 상쇄 좀 안 되겠어?(나 누구한테 말하니?) 부를 끌어들이는 습관은 둘째 치고, 아이들의 좋은 미래습관을 위해서라도 정리와 청소에 좀 더 열심을 내봐야 할 거 같긴 한데... 안 될 거란 걸 안다. 그냥 해보는 소리다. 한계를 인정하련다.



방학 어느날의 분식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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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하나에 사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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