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식에게 관대해지기란...
친구 딸이 전교회장이 됐단다.
"내가 뭐랬어! 당연히 걘 될 줄 알았어!"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 아이는 정말 '될놈될'의 '될 놈'이기 때문이다.
근데 친구는 항상 너무너무... 죽는소리를 한다.
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비슷한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시기? 질투? 부러움? 단순히 이걸로만은 설명되지가 않는다.
이야기의 방점은 '친구 딸' 말고 '친구'에 찍혀있기 때문이다.(우리에겐 빌드업된 서사가 있다!)
6년을 봐온 친구의 딸은, 정말 드물 정도로 그냥 뭐든 알아서 잘하는 아이다. 물론!! 나는 제삼자의 눈이긴 하지. 나도 그 또래 아이를 함께 키워왔는데 왜 모르겠나. 아이들은 이미지 관리의 대왕이고, 아이들의 은밀한 진상은 집에서만 이루어진다는 걸 안다. 그 진상은 오직 엄마만이 제일 많이 안다는 것도.
제삼자의 속 편한 소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아이들 기본 가락이라는 게 있기 마련. 키워봤기 때문에 알 수 있는 베이스가 있고, 오히려 엄마는 보지 못하는, 남이어서 볼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있단 말이다...?
애가 공약 낼 생각을 안 한다고, 연설문을 열심히 써서 연습해야 할 시간인데 제대로 쓰지 조차 않는다고 그렇게까지 열받아하고 걱정하고 죽는소리 안 해도 될 아이라는 거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떻게든 지가 욕심이 있으면 뭐라도 해 갈 아이인 게 분명한데 친구는 매번 걱정이 지나치다. 코앞에 중요한 일이 있는데 애가 준비도 안 하고 저러고 있으면 아무리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아이라도 엄마는 당연히 혼자 속이 썩지 왜 안 썩겠나. 알지. 아는데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6년간 겪어왔던 수많은 일화들이 나를 약간 삐딱선 타는 사람으로 만든 것 같다. 걔의 죽는소리 후에 오는 결과들은 통계적으로 항상 지나치게 좋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2인 지금까지 학급회장도 한 번을 놓친 적이 없고, 교회에서 연말마다 하는 연극엔 꼬박꼬박 주인공으로 선다(어디 그런 걸 무채색 옷 러버가 되는 고학년들이 하기 쉽나? 절대 쉽지 않다고, 흔한 일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독후감 공모니 무슨 대회니 나가기만 하면 2등, 3등도 아닌 1등이나 대상을 턱턱 받아온다.
성품은 또 어떻고. 학교나 교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 안에서 그 아이가 보여주는 굉장히 모범적인 태도가 있는데, 그게 참 나이답지 않게 의젓하고 지혜로운 거다.
그런데 친구는 그 모든 경사스러운 일이 있기 전, 맨날 다 죽어간다.
얘는 대회 나간대 놓고 왜 이렇게 노력을 안 하나 몰라ㅠㅠ
얘는 누구 닮아서 이렇게 물러터지고 남의 일에 오지랖이 넓은지 몰라ㅠㅠ
그냥 차라리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어ㅠㅠ
얘는 회장선거 또 나간다는데 왜 이렇게 자꾸 나서는지 그만 나갔으면 좋겠어ㅠㅠ
죽는소리 뒤엔 당연히, 항상, 결국, 경사가 따라붙어왔다.
얘 회장이래.
얘 1등 했어.
얘 어쩌고 저쩌고 어쩌고 저쩌고....
글로 적어놓으니 친구가 되게 의도적으로 자식자랑하는 애 같은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 더 환장하는 부분인 거다!
얘는 자랑 같은 걸 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냥 정말 자기 딸이 답답해서 나한테 하소연하는 거고, 그러고 나서 딸이 이러이러한 결과를 얻었기에 그냥 이렇게 되었다고 결과를 공유해 줄 뿐이다. 그게 다다. 들으면 알지 않나. 이게 자랑을 하고 싶어서인지, 진짜 그냥 fact를 말하는 건지.
난 차라리!! 죽는소리를 좀 덜 하고, 대놓고 욕망하고(?), 신나게 자랑을 하는 편이 나는 나을 것 같다.
그럼 아예 나도 좀 더 신나고 기분 좋게 같이 축하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는 소리엔 같이 속 터져 줬다가, 좋은 결과에 같이 기뻐해 줬다가... 이건 마치, 옛날에 남친이랑 싸운 친구들 헤어지네 마네 하소연 들어주며 같이 화냈다가 1주일 후 결국 다시 만나기로 했단 말 듣는 기분?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지난 기말고사기간 까지도 나한테 또 자식 못난 점을 늘어놓았던 친구야... 딸내미 시험 잘 봤잖아. 나는 아는데 너는 왜 모르니. 친구의 진짜 고민을 한낱 죽는소리 정도로 받아들이다니 죄책감도 좀 든다.
고등학교 시절 시험기간이면 '나 이번에 공부 많이 못 했어..' 하며 우는 소리 하는 애들이 정작 시험만 보면 상위권 차지할 때의 어떤 얄미움이 이제 자식 일이 되어 내게 오네. 아이고 두야.
친구가 죽는소리를 좀 줄였으면 좋겠다. 네 딸, 평균 이상으로 너무너무 잘하고 있으니 너도 그걸 좀 인정하련
하지만.
지금 어딘가엔 '아니, 아드리셋네 아들 진짜 그만한 애가 없는데 아드리셋은 걱정이 불만이 너무 많아. 앓는 소리 오져. 지 아들만 한 애가 어딨다구. 쯧쯧.' 하며 혀를 차고 있는 내 친구나 지인이 분명 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지.
높은 확률로 다들 자기 자식은 어딘가 모자라고 구멍나 보이고 만족이 잘 안 되고 그런 거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