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들
어느 동네나 수영 강습 수강신청은 쉽지 않다고 들었다. 콘서트 티켓팅만큼 어려운 수영 신청이여... 남편의 수영 강습 신청을 대신해주기 위해 피씨방에 가기로 했다. 피씨방은 20년 만이었다. 20년도 더 됐을 거다. 고등학생 이후로는 한 번도 안 가본 것 같다.
첫 번째로 들른 곳은 폐업이라 쓰여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부랴부랴 나와서 두 번째로 들른 곳은 회원제로 운영한다 했다. 다시 밖으로 나와 고갤 들고 간판을 찾아 서둘러 들어간 세 번째 피씨방.
"여기도 혹시 회원제일까요?"
카운터 의자에 거의 눕듯이 늘어져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던 알바생이 고개도 안 돌린 채 '아뇨' 한다.
나는 연이어 물었다.
"제가 처음 와 봐서 그런데 피씨 이용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알바생은 의자에 누워 나를 쳐다보며 한숨을 푹- 내쉰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하는 표정으로 나를 한심하단 듯이 쳐다보더니 손에 쥔 핸드폰을 짜증스럽게 '탁'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그러더니 저쪽에 있는 키오스크를 손가락으로 까딱까딱 가리키며 '저거 안 보여요?'라고 한다. '키오스크 있는데 귀찮게 왜 쳐 물어?'라는 짜증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로.
키오스크로 시간을 선택하고 요금을 결제했다. 영수증이 나왔다. 그다음은 뭐지? 다짜고짜 가서 컴퓨터를 켜도 되나? 혹시 옛날처럼 지정 자리 키링을 주는지 어쩌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모르면 정확히 묻고 만지는 게 낫지.
"영수증 나왔는데 어떻게 쓰면 될까요?"
했더니 알바생 왈.
"아이씨..... 거기 적혀 있는 숫자 안 보여요?"
친절 같은 건 바라지 않는다.
'저쪽 키오스크로 결제하면 영수증에 번호 나와요. 아무 데나 가서 컴퓨터 켜고 번호 넣으세요.'
두 문장이면 됐다.
의자에 누워서 그냥 계속 게임하면서 저 두 문장만 대충 말해줬어도 지도 나도 편했을 거다. 아무렴 '저거 안 보여요?'랑 '아이씨 거기 적혀 있는 숫자 안 보여요?'보다 낫지.
온몸에 문신한 덩치 큰 남자 혹은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담배 한 대 물고 와서 나처럼 물어봤어도 걔가 이렇게 대꾸했을까? 아마 아닐 거다. 이 험한 세상 무서운 세상에 내가 걔한테 따질 순 없었다. 똑같이 걔 면전에 대고 한숨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그냥 조용히 지나가자.
내가 꼰대인가? 내가 무례한 적 있었나? 내가 알바생에게 못 물을 걸 물었나? 근데 다시 생각해 봐도 아니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닌데? 걔가 나보다 새파랗게 어리다고 반말부터 찍찍했으면 내 잘못이 맞지. 수영 수강신청 어떻게 하는 거냐고 엄한 걸 물었으면 내 잘못이 맞지.
'니가 거기 카운터에 앉아서 알바비를 받는 이유가 뭔지 생각이란 걸 해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당연히 말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내 아들 세 명 저렇게 안 크길 간~~~절히 바라는 것뿐. 어릴 때부터 기본과 친절을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하는 것뿐. 백날 가르쳐도 내 맘대로 안 크는 게 자식이라는 걸 생각하면 앞이 자주 캄캄해지긴 한다.
자기의 품격은 자기가 만드는 거란 생각을 했다. '피씨방에서 알바하는 애들 다 그렇지 뭐.'가 아니다. 피씨방이든 노래방이든 조용한 카페든 우아한 식당이든 어떤 장소든 상관없이, 자기의 품격은 자기가 만드는 거다. 사람 대 사람으로의 예의, 기본, 친절. 그런 작은 걸 잘 챙겨서 생기는 이득은 결국 다 자기에게 돌아간다고 믿는다.
나는 어떤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부터 가깝다는 이유로 예의와 기본과 친절에 자주 실패한다. 내 상한 기분을 식구들에게 전달하고 힘들다고 짜증스러워지고. 저 알바생과 다를 게 뭔가. 문득 자아성찰까지 하게 된 피씨방 에피소드. 내가 걔랑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정신 차리고 내일은 조금 더 친절한 사람이 되도록 애써야지.
어떤 사람이 될지는 스스로 선택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