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가 쌓았을 시간
저녁 하면서 다진 마늘을 한 스푼 푹 뜨는 나를 보고 아들이 말했다.
"엄마도 이연복 아저씨처럼 통마늘 칼로 탕 내리쳐서 다져 보지 그래."
"허허... 너 그게 쉬운 줄 아냐!"
"엄청 쉬워 보이던데? 중식도만 있으면 나도 그냥 하겠던데? 그냥 탕 한 번 치기만 하면 되던데 뭐."
"왜 쉬워 보이는 줄 알아?"
"왜?"
"이연복이잖아...."
생각해 보니까 뭘 잘하는 사람이 하는 건 다 그렇네.
김연아 선수의 점프도 가볍고 쉬워 보이지, 막 벅차고 끙끙하며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가수 수현(악동뮤지션)도 노래를 그냥 너무 쉽게 부른다. 들을 땐 저 노래가 그렇게까지 고음인 줄 몰랐다가 비로소 알게 되는 순간은 이제 직접 불러볼 때...
아이돌 춤을 볼 때도 그렇다. 분명 되게 잘 추는데 왜 저렇게 춤을 쉽게 추는 거 같지? 싶은 멤버들이 있는데 그건 그들이 춤을 대충 춰서 그런 게 아니고 진짜 ‘춤꾼’이어서 그런 거다.
이슬아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감탄한다. 재치 있고 따뜻하고 항상 좋다 좋다 생각하면서도, 왠지 되게 쉽게 쓰인 글 같은 느낌을 주는데(당연히 쉽게 쓰인 글 아니고 실제로 허리를 반납하고 쓰는 글이란 걸, 마감에 쫓기며 머리를 쥐어뜯으며 쓰는 글이란 걸 알고 있지만) 절대 아무나 그렇게 쓸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얼마나 많은 점프와, 노래와, 춤과 글을 쌓았을지 상상할 수 없다.
엄마가 동네 문화센터에서 캘리그래피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제 한 다섯 번밖에 안 갔는데 엄마가 푸념을 한다.
"글씨가 너무 안 써져. 저것도 예쁘게 쓰는 사람이나 쓰는 거지. 나는 안 되더라. 별 거 없는 거 같은데 되게 안 돼. 선생님 하는 거 보면 그냥 슥 슥 대충 쓰던데 말야. 그것만 보면 나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집에 와서 해보면 안 된다니까?"
엄마! 고수라 그래.... 캘리그래피 예쁘게 쓰기 안 쉽지. 나도 전문가들 쓰는 거 보고 따라 쓸 수 있을 거 같아서 해봤는데 진짜 한 글자도 예쁘게 안 되더라. 좀 더 배우고 연습 오래 해 보셔.
‘내가 고수다’라고 힘주어 말하지 않는 것.
그냥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는데?’ 싶은 마음을 주는 것.
그렇지만 절대 '저 정도'를 그냥은 할 수 없음을 직접 해보면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
그렇게 쉬워 보이기까지 그 사람들은 그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좌절과 에너지를 갖다 바쳤을까.
우리 필라테스 선생님은 늘 말한다.
"쉬워 보이는 동작을 제대로 하는 게 가장 어려운 겁니다. 몸이 기억하도록 아주 익어야 탁, 탁, 쉬워 보이지만 제대로 된 동작이 나오는 거예요."
저 정도 마늘 다지는 거 나도 하겠다던 아들도 ‘고수의 비밀’을 깨닫는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