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 작가님의 <스타벅스 일기> 오마주
* 권남희 작가님의 <스타벅스 일기>는, 작가님이 노트북 들고 스타벅스에 가서 번역하고 글 쓰며 보고 느낀 것들을 글로 옮긴 에세이집입니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어서 종종 <스타벅스 일기> 따라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
오늘의 음료: 아이스 카페라떼
친구가 보내 준 커피 기프티콘을 쓰러 스타벅스에 갔다. 노트북을 들고 간 건 오랜만이다. 오늘은 시원한 곳에서 글쓰기 챌린지 숙제도 하고, 책도 읽고 와야지. 2층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저 멀리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6명의 여자들이 큰 테이블에 빙 둘러앉아있었다.
세상에, 뜨개를 하고 있잖아?
멀리서 보고 있을 뿐인데도 마음이 편안~~~ 해진다. 앗, 나는 할 일이 있는데... 그 모습에 시선을 완전히 빼앗겼다. 멀찍이 떨어져 미간을 좁혀가며 그 모습을 세세히 감상하기에 내 눈은 너무 나빴다. 궁금했다. 화장실에 가려면 그 테이블을 지나야 해서 화장실 가는 척을 했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스윽 곁눈질.
아무래도 뜨개 고수들인 것 같다. 장비부터 달랐다. 요즘 한창 인기 많다는 연보라색 코바늘도 여러 개 있었다. 실을 아무 에코백에나 담아 오지 않았다. 실들은 뜨개가방에 담겨 있거나 예쁜 철제바구니에 담겨있었다. 바구니에 무슨 도구를 담아 들고 다니는 건 플라스틱 목욕탕 바구니밖에 못 봤는데... 아, 실뭉치가 담긴 바구니라니 너무 우아하잖아!
어떤 사람은 대바늘로 옷을 뜬다. 어떤 사람은 코바늘로 엄청 커다란 편물을 뜬다. 정말로 고수가 맞나 보다. 초보들은 뜨개 하면서 드라마도 못 보고 수다도 못 떨기 마련인데. 거북이처럼 목을 쭉 빼고 뜨개 영상만 보거나, 침침한 눈을 비벼가며 도안을 뚫어져라 보거나, 코 하나 빠뜨릴까 코만 노려본다거나 하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내 얘기다...) 이분들은 서로 대화도 하고 얼굴도 쳐다보고 다 한다. 뜨다가 목에 한 번 둘러보기도 하고, 몸에 한 번 대보기도 하고. 강하게 느껴지는 여유와 짬바... 여섯 명이 각기 다른 실을 가지고 다 다른 편물을 뜨고 있는 게 어쩜 이렇게 멋있는지.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와서도 글쓰기를 뒤로 미루고 뜨개 테이블을 오래도록 쳐다보고 있었다.
최근에 '카페 뜨개'가 민폐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어서 더 눈길이 갔던 것 같다. 깔깔깔 떠드는 것도 아니고 조용히 얘기 나누며 뜨개만 하다 가는 뜨개인 못 잡아먹는 날 선 댓글들을 보았다. 자리 없는 카페에서 오래 죽치고 앉아있는다면 뜨개가 아니어도 어차피 민폐일 텐데. 털이 날려서 민폐라고? 근데 뜰 때 좀 날리는 털이 있다면 그거 다 뜨는 사람 가슴팍이랑 무릎으로 다 떨어져요 흐윽. 한겨울에 털 있는 목도리, 뜨개 모자 다 착용하고 다니는 것처럼 막 엄격하게 그러지 않아도 될 텐데.
내가 본 저 테이블, 저 사람들은 마냥 예쁘고 아름다웠다. 보는 사람 마음은 편해지고, 따뜻해지고. 계속 바라보고 싶었다. 내가 뜨개에 관심이 있으니 아무래도 더 마음이 가긴 했겠지만.
취향이 확실한 사람들을 보는 일은 즐겁다.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들. 자기만의 취미를 가진 사람들. 취향이 특별히 없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취향이 있는 건 왠지 좀 덜 심심해 보인다. 연말에 다이어리를 살 때도 15,000원에 내 취향을 꾹꾹 눌러 담는 일이 즐겁다. 분명하게 선호하는 뭔가가 없는 남편에게 내 취향의 예쁜 남방을 골라주는 일도 즐겁다.
물건을 고르는 것도 그렇지만, 뭔가에 푹- 빠진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좋은 기운이 있다. '좋아하는 마음'의 기운일 테다. 꼭 현장에서 만나지 않아도, 글로 읽는 확실한 취향도 좋다. 우리 집에 있는 유유출판사의 '아무튼'시리즈 아홉 권을 내가 아끼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문구에 푹 빠진 사람의 이야기, 떡볶이 소재 하나로 책 한 권을 써내는 마음. 보기만 해도 듣기만 해도 설레는 일이다.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들의 뜨개 모임을 쳐다보면서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졌던 어느 오후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