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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고 잠들 수 있는 정도면 된다

사고를 전해 듣던 날의 마음

by 아드리셋


3월. 내가 10년을 살았던 동네에서 싱크홀 사고가 났다.

이사 온 지 5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리운 곳. 친정 엄마아빠는 여전히 그 동네에 한 주 한두 번은 다니실 일이 있을 만큼 우리 가족에게 친숙한 동네인데 그곳에서 사고가 났다 하니 사고에 경중을 따지는 것은 옳지 않지만 마음이 어느 때보다 무거울 수밖에 없다.






사실 전날 까지는 잘 몰랐다. 인명피해가 없다고 들었다. 싱크홀이 생기기는 했지만 그렇게 깊지는 않은가 보다 했다. 차 한 대가 완전히 빠지지는 않았고 차에 탔던 사람은 경상을 입고 병원에 갔다고 들었다. 다 괜찮은 줄 알았다.


자고 일어난 다음날 아침. 여기저기 뜨는 블랙박스 영상을 보고 달리던 오토바이가 그대로 추락한 것을 알았다. 뉴스에선 꺼진 땅의 깊이가 30미터라고 했다. 3미터가 아니라 30미터.

건져낸 건 오토바이랑 운전자의 핸드폰뿐이라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수도관이 터져서 물과 흙 몇 톤이 뒤섞여있는 상태고, 오토바이 운전자 구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 길은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는 큰 길가라 아이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다. 그 동네에 사는 친구들 몇몇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애들 전부 휴교야. 너무 무서워.'


기사 사진 한 장을 볼 땐 잘 몰랐는데 땅이 순식간에 내려앉는 순간의 현장 영상을 보니 죽고 사는 일이 뭔가 싶었다. 땅이 꺼지는 순간 한 번 튕기면서 구사일생으로 도로 위로 겨우 올라간 앞 차량. 손쓸 새도 없이 땅 아래로 빠져버린 오토바이. 자기 눈앞에서 땅이 꺼지자마자 오른쪽 차로로 급히 핸들을 틀어 피하는 블랙박스 차량. 빨리 그 현장을 피하려 속도를 내 달려오는 맞은편 차량과 오토바이. 그 몇 대가 지나가자마자 바로 일어나는 맞은편 차선 쪽 2차 붕괴.


'오늘도 잘 보내세요, 조심히 가세요.' 하고 인사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잘 보낼 수 있고 조심할 수 있을까? 과속과 음주를 하지 않아도, 중앙선을 넘지 않아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대비할 수 없이 예고도 없이 일어나 버리는 사고들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하철 9호선 연장으로 공사가 한참 진행 중인 곳이라 했다. 인간의 편의는 이제 좀 접어둬야 할 때일까? 나도 편리를 포기하지 못하고 좀 더 편하게, 편하게... 지하철 있는 도시에서 살고 싶어, 더 잘 돼있는 데서 살고 싶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인데 그게 다 땅을 훼손하고 흙을 망가뜨리는 일이란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하긴 어디 흙뿐이겠냐만. 나는 당장 무더운 여름 에어컨을 풀가동할 거고, 이 동네엔 지하철이 없다고 불평하면서 차를 매일 끌어안고 매연을 뿜으며 그렇게 편하게 다니겠지. 어떤 방식으로든 돌아오겠지.


이게 재난 영화가 아니라니. 내가 다니던, 자주 걷던 저 길의 저 큰 구멍이 영화가 아니라 그곳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니. 며칠이 지나도 여전히 믿을 수 없었다. 뭘 잃어버리거나 뭐가 갑자기 없어졌을 때,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하는 표현을 당연하게 쓰곤 했는데, 이제 땅으로 꺼졌나 하는 표현은 쓰지 못할 것 같다. 아무렇지 않게 그 말을 쓰긴 힘들 것 같다.


죽는 게 뭐고 사는 게 뭘까.

좋은 일 같은 건 없어도 된다.

그저 탈 없는 하루.

그게 나한텐 기적이다.

울지 않고 잠에 들 수 있는 것.

들 수 있는 자체.

하기 싫은 저녁밥 하면서 콧노래를 흥얼 거릴 수 있는 거.

그냥 그 정도 살면 된다.

다른 특별한 일들을 바라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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