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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아니 내 머리가 추노였다가 단정해졌는데

by 아드리셋


1년 만에 머리를 했다.

한 번 맘먹고 가는 게 일이기도 했고 돈도 아낄 겸 해서 미루고 미뤘는데, 어느 날 아침 거울 속에 웬 추노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악성 곱슬에 굵고 새카만 머리카락. 굽실굽실 부스스 난리가 제대로 난 머리를 매직기로 쫙쫙 펴줬다. 한 번에 다 하기엔 머릿결 상하는 것도 걱정되고 지갑도 부담이 되니 까맣게 올라온 부분 뿌리염색은 다음으로 미뤘다. 대신 깔끔하고 가벼워지고 싶어서 커트를 많이 했다. 1년 동안 기른 게 아까웠지만... 길러서 뭐 하냐 머리 감기만 힘들지, 라며 과감히 쳐냈다. 어깨까지도 안 오는, 깔끔한 기장이 되었다.

산뜻했다. 그래, 돈 들어도 할 건 해야지.


근데 이렇게 티 나게 머리하고 가도 어차피 우리 집 사람들은 아무도 못 알아보겠지? 실망하지 마라, 실망할 필요 없다 나 자신! 그렇게 셀프 최면을 건 후. 첫째부터 막내까지 한 명 두 명 집으로 돌아오는데....

정말로 아~~~무도 내 변한 머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거다.

애들이 그렇지 뭐. 그럼 호옥시 어른(=같이 사는 남자)은 어떨까? 기대하지 말자면서 자꾸 혹시나 하는 건 무슨 마음이냐...

퇴근한 남편은 나와 분명히 눈도 마주치고 인사도 하고 그랬지만... 허리가 아프다며 바~로 방으로 가서 벌러덩!


그렇게 단 한 명의 식구에게도 "머리 했네!" 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진짜 웃긴 건, 애초에 누가 알아주길 기대도 안 했다면서 막상 네 명 중 아무도 몰라주니 슬슬 열이 받고 왠지 눈물까지 날 거 같았다는 거다. 못났다... 그치만 내 잘못이 아니라 호르몬의 잘못 같아!

무심한 인간들. 아무리 눈썰미가 없어도 그렇지, 이건 아니지 않아? 참나.


문득, 전에 친구가 해준 얘기가 떠올랐다.

지역 홍보기사 비슷한 걸 써내면서 약간의 까까값을 벌던 몇 달 전. 푼돈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 몇 만 원의 가치를 딴 사람은 몰라도 가족들은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라고 하자 걔가 말했다.


"가족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군."


하. 이런....

그때 뼈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덜 처맞았는지 나는 또 바라고야 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아무래도 내 잘못이 맞는 것 같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자꾸 뭘 바라게 된다.

바라는 것은 곧 서운함, 섭섭함이 되어 돌아온다.

서운한 세월이 좀 더 쌓여야, '아 가족한테 이러는 거 아니구나' 느끼려나보다.


얼마 전 한 예능 프로에서 홍진경 씨가 춤연습을 하는데, 김숙 씨가 물었다.

"라엘이는(홍진경 씨 딸) 니 춤 보고 뭐래?"

홍진경 씨가 말했다.

"언니, 걔는 내가 뭐하는지 아~~~무 관심 없어!"


내 글친구 한 명은, 자기가 쓴 글을 모아 책자로 인쇄를 했는데 고딩 아들은 한 번 꺼내 읽지도 않는다고 했다. 나라면 너무 섭섭할 거 같다고 했더니 걔가 말한다.

"다 받아들이는 때가 온다. 섭섭할 것도 없어!"


라디오 프로에선 박하선 씨가 배우 김선영 씨에게 질문했다.

"아들은 엄마 영화 보고 뭐라고 하나요?"

김선영 씨가 답했다.

"걔는 내 영화 절대 안 봐요! 내가 뭐 찍고 있는지도 모를걸?"


저들이 서로 안 사랑해서가 아님을 안다.

짬바가 부족한 나는 아직 추노에서 변신한 머리 하나로, 내 작은 부업 노고 하나로 나 좀 알아달라고 날 좀 봐달라고 아우성친다.

시간이 지나면 체념? 단념? 같은 거 말고, 그냥 깊이 깨닫고 싶다. 꼭 그런 걸 다 알아주고 일일이 관심 가지는 것만이 사랑은 아님을.

남편의 사랑. 자식들의 사랑. 무딘 사람들의 각기 다른 모양의 사랑을 잘 들여다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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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랑은 역시 표현이지...

말 안 하면 귀신도 몰러!!



내 머리가 이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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