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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Nov 05. 2020

애 많은 엄마의 하루 한 장면 시리즈 <3>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한 기록



메모해둔 걸로 부지런히 써보는 하루 한 장면 3회 차.


목차

1. 햇반이 왜 거기서 나와

2. 컬러 배스 효과

3. 아랫집 된 자의 패기

4. 흔들다리 아래서

5. 비대면

6. 불안

7. 집

8. 쌀이 반이나 남았네






#1. 햇반이 왜 거기서 나와

건망증이 심해진 것을 전자레인지 앞에서 자주 느낀다. 오늘은 전자레인지 안에서 화석이 될뻔한 햇반이 나왔다. 대체 그날 난 저거 대신 뭘로 배를 채운 거냐. 하긴 이걸 기억할 정도면 햇반이 거기서 발견되는 일 따위도 없었겠지. 전자레인지에서 퀴퀴한 장조림을 발견한 지 삼일만의 일이다.

예전엔 애를 택시에 두고 내리네 어쩌네, 리모컨이 냉장고에서 나오네 어쩌네 하는 말에, '에이 말도 안 돼.' 했었는데 이제는 일리 있네 싶다. 어젠 놀이터에서 "집에 가자!!" 외치고 막내를 유모차에 태운 후 첫째 둘째를 불러서 말했다. "동생 어딨어? 데려와야지!!"

전자레인지에서 발견된 장조림과 햇반은 양반이었다. 젊은 엄마고 나발이고 출산 앞에 장사 없다.



#2. 컬러 배스 효과

하루가 멀다 하고 머리핀을 만들던 때, 애고 어른이고 지나가는 사람들 머리핀만 그렇게 눈에 들어왔다. 요즘은 네트백을 매고 있는 엄마들이 유독 눈에 잘 보이는데, 이사 온 이 동네 사람들이 그걸 많이 매는 건지 내가 뜨개질에 빠져서 그것만 눈에 들어오는 건지 분간이 안 간다. 사실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컬러 배스 효과'라는 게 있단다. 한 가지 색에 집중하면 그 색깔 물건만 자꾸 눈에 띄는 현상. '내 눈엔 너만 보여' 같은 뻔한 노랫말의 과학적 이유 정도 되겠다. 아들셋 엄마가 되고 난 뒤 어느 시점부턴 '무슨 아들셋 집이 이렇게 많아?', '아들셋 키우면서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책 쓰고 하는 재주꾼들이 이렇게 많다고?' 하는 생각을 해왔는데. 이 정도면 컬러 배스 효과의 노예 아닌가!



#3. 아랫집 된 자의 패기

엘리베이터에서 윗집 엄마를 만났다. 이사 오고 처음이다. 그녀는 나에게 1504호 사시냐며 조심스레 물었고 그렇다고 했더니 "첫째가 다섯 살이라..." 하며 말끝을 흐렸다. 뒤에 나올 말이 뭔지 안다. 나는 마음 넓은 아랫집 사람이 되겠다며 패기롭게 아들 flex를 했다.

"저희가~~ 아들이 셋이에요. 얘네 소리 때문에 아무것도 안 들려요. 걱정하지 마세요." 윗집 엄마는 아들 셋이라는 말에 잠시 헉하는 듯했지만 이내 밤에는 조심하겠다고 말했다. "아유~~ 신경 쓰지 마세요. 진짜 괜찮아요!" 답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5분 후.... 어어? 내가 뭐라고 한 거야? 현타가 왔다. 맨날 쭈글이처럼 죄송합니다 굽신굽신만 하다가 아랫집 사람이 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갑 기분에 취해서 생각 없이 말한 거 같았다.

'진짜로 신경 1도 안 쓰면 그땐 어쩌지...'

'열 시 넘어서 마늘 빻는 소리랑 우다다다 소리가 몇 번 크게 났는데 왜 말을 못 하고...!!!'

이것도 허세라면 오늘 정말 새로운 종류의 허세를 경험했다.



#4. 흔들다 아래서

아이를 셋(씩이나) 낳아서 좋은 점 1번은 셋이 잘 놀 때, 2번은 셋이 잘 놀 때, 3번은 셋이 잘 놀 때인데, 집도 그렇지만 놀이터에서도 그렇다. 특히 흔들다리 위에서는 더더욱.

셋이 함께 놀이터에 있는 구름다리를 건넌다. 막내가 무섭다 했지만 어느새 앞에 큰 형 뒤에 작은 형을 세우고 같이 건너고 있다. 구름다리를 건너는 셋을 보면서 커서도 별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무서울 때 잡아주고 어려울 때 용기 주고 그럼 얼마나 좋을까. 형제들은 군대든 독립이든 누구 하나 집에서 나갈 때까지 치고 박는다는 소문이 있던데, 천 번을 싸워도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 위로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 될 것 같다.(물론 그걸로 됐다 하기도 전에 천 번 싸우는 동안 나는 영혼이 탈탈 털려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상태가 되겠지 이런 씨.....)



#5. 비대면

코로나가 준 것 중 하나는 비대면 일상이다. 부담스러웠던 반모임 같은 거 안 하는 것도 나름 괜찮다. 멀리 이사 와서도 기존의 글쓰기 모임을 소외감 없이 지속할 수 있는 뜻밖의 기회도 얻었다. 그런데 비대면엔 한계가 있다. 만나서 해야 하는 것, 모여서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온라인 수업도 가능은 하고(기괴한 자세로) 온라인 예배도 가능은 하지만(커피 마시면서 다리를 딱 꼬고. 눕지 않으면 다행) 마음가짐은 현장에 있을 때만 못하다. 학생 때 인강도 겨우 들었던 정신력이 고작 이거밖에 안 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쌍방 소통이 필요한 모임에서는 얼굴을 마주 보지 않은 채로 오가는 메시지들 사이에서(특히 텍스트) 가끔 오해가 생긴다. 표정, 제스처, 눈빛. 메시지는 여러가지로 전달되는 건데. 화상으로 소통 가능하다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공기, 그 방 한 칸의 기운,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즉각적인 반응과  분위기는 알아챌 수 없다. 못할 것은 없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6. 불안

나는 불안해하지 않을 줄 알았다. 마주하니 그렇지 않다. 비슷한 교육관을 가진 다른 저학년 엄마들이 아이의 일기를 고쳐주는 것을 보고, 그들의 독서지도를 보고, 그들이 아이에게 풀리는 최소한의 문제집을 보고 나는 문득 불안해진다. 이러고 있는 게 맞나,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귀찮다는 이유로 안 봐주는 거 이건 방치 아닌가. 나는 아이를 믿고 아이는 정상이고 문제를 크게 볼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만, 담임 선생님의 '부산스러울 때가 있어요. 산만한 면이 있어요.' 한 마디에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걸까, 아이에게 내가 모르는 면이 있는 걸까.' 혼자 고민에 빠진다.

게으름이 불안을 이겨서 그리 오래 걱정하지 않아 다행이다 생각하지만 또 모르지.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 내 불안의 깊이와 기간이 어떨지.



#7. 집

집순이라 바깥 공간을 그렇게 갈구하지는 않는다. 근데 유난히 애들 등원시킨 후에는 집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가 않다. 카페로 가고 싶다. 아침의 스트레스 때문만은 아니다. 커피 때문이라면 집에서 캡슐을 내려마셔도 충분하다. 그 오전 시간, 집에만 오면 자꾸 뭘 하게 된다. 안 해야지, 눈 감아야지 해도 자꾸 나를 움직이게 하는 공간. 눈에 들어오는 잡다한 것들을 뒤로 하기엔 눈길 닿는 곳곳마다 일 거리다.(뭐 어지간해야지) 장난감 치우다가 갑자기 이불 안 접은 게 생각나면 안방으로 들어가고, 갑자기 또 무슨 냄새가 나면 부엌으로 가서 이거 치워야지 하는 분주하고 산만한 의식의 흐름.

모른 척하는 데엔 분리된 공간만큼 좋은 게 없다. 내가 일할 거 없고, 적당한 소음과 가족 아닌 누군가가 있는 공간. 한 시간 있다가 들어가도 물론 집 꼴은 변한 게 없지만 치울 힘이 조금 충전된다. 집이 제일 편한데 집이 눈에 안 보였으면 좋겠는 이중성 충만한 아침시간.



#8. 쌀이 반이나 남았네

긍정적, 부정적 사고에 대한 설명으로 보통 물컵 이야기를 예로 든다. 물이 반이나 남았네 하면 긍정적,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 하면 부정적.

우리집 버전은 좀 다르다. 주말에 생수를 사러 마트에 갔는데 남편이 집에 쌀이 조금밖에 안 남았다며 쌀을 사자고 했다. 분명 넉넉했던 거 같은데 뭐지? 다시 확인하자 하고 그냥 집에 왔는데 오늘 보니 역시나.

"어머, 쌀이 반이나 남아있네!"

남편은 이걸 보고 분명 "이런, 쌀이 반 밖에 안 남았네." 했을 터. 미리미리 대비하는 자는 '쌀이 반 밖에 없네' 하고, 준비성은 저기 개나 준 자는 '쌀이 반이나 남았네' 한다. 반이 뭐냐. 쌀 다 떨어져서 햇반까지 한 번 돌려먹고 나서 쌀 주문할 사람 바로 나야 나...                                                 





가서 막내 데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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