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졸’이라는 나라
"나는 행복할 때가 많단다. 나는 어떤 나라를 알고 있어. 나지막한 언덕이 무수하게 많고 호수가 있으며 호수 위에는 흰 돛을 단 보트가 외로이 떠 있는데 노를 젓는 사람도 그 안에 탄 사람도 없다. 크고 흰 새들이 언덕 위로 날아가지만 소리도 지르지 않고 노래도 부르지 않아. 태양과 달과 별들이 하늘을 날면서, 때로는 수면과 나무 꼭대기를 건드리기도 하고 흰 새들은 산딸기를 쪼듯 별들을 쪼아 먹고 있단다. 나는 물 위로 걸어 다니며 별들과 새들과 대기 중에 떠도는 것들을 주워서 꽃다발을 만들고 있는데 꽃다발이 너무 가벼워 자꾸만 손에서 빠져나간단다. 나는 웃으면서 물에다 손을 담그기도 하지. 거기에는 살고 있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없단다. 걸어 다니는 사람도 나뿐이고."
루이제 린저의 첫 소설인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학교에 새로 전학 온 코르넬리아가 '나'에게 해 준 이야기이고, '나'는 그 나라에 '졸'이라 이름을 붙였다.
'문학소녀'이고 싶었던 시절에 범우사 문고판이었던 이 책을 너무나 좋아했었고, 나도 '졸'이라는 세계를 꿈꿨었다.
분명 나도 이미 알고 있는 나라인 것 같아서, 이 책에 더 깊이 빠져들었던 것 같다.
음악을 들을 때면 더욱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오카리나로 연주하는 '대황하' 라던가 조지 윈스턴의 ‘December’ 같은 뉴에이지 음악을 들을 때면 음악의 파동이 마음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어느 부분을 건드려 깨우기 때문인지, 그 세계가 형언할 수 없는 환상적인 이미지로 마음속에 계속 떠올랐다.
이전 생에 대한 기억이 지금보다는 더 가까웠을 수도 있었을 그 시기에... 지금은 희미해졌지만 그때는 조금은 더 생생하게 남아있던 전생의 느낌이었을까..
음악을 들으면 유전자 어딘가에 새겨져 있는 장소의 기억을 불러오게 되는 걸까
내가 다녔던 여자고등학교에는 넓은 운동장 너머로 울타리 없이 논이 있었고 그 위로는 다 하늘이었다.
김포공항이 가까웠던 곳이라 서쪽 방향이었던 그 하늘에는 가끔씩 비행기가 멀리 떠올랐고, 저녁에는 노을을 매일 볼 수 있었다.
계절마다 바뀌는 논의 색깔은 환상적이었고, 미세먼지도 없던 시절이라 풍경은 늘 청명했다.
새벽에는 아무도 없는 학교에 제일 먼저 도착해 아침 안개 가득한 운동장을 혼자 매일 산책했다.
'졸'과 같은 세계를 현실에서 찾고 싶었기 때문일까... 시끌시끌한 학교는 적응이 안 되었고, 항상 빈 교실이나 조용한 곳을 찾아다녔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이 모두 하교한 이후 조용한 학교에 남아 있는 걸 좋아했고 휴일에 학교에 가는 것도 좋아했다.
오후의 빛이 길게 들어오는 조용한 복도도 분위기 있었고,
학교의 그 모든 장소들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했다.
감수성이 가장 최고로 풍부했었을 시절이라 그런가 그 이후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을 봐도 그때만큼 행복했던 기분은 다시 느낄 수 없었던 것 같다.
밤에 복도 쪽 불빛과 창밖의 달빛만 비쳐 들어오는 불 꺼진 음악실이나 시청각실에서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와 조지 윈스턴의 캐논 변주곡 등을 연주하기도 했고,
학교 주변을 산책하다가 음악실 창문 앞 화단에서 음대 지망생들이 연주하는 쇼팽의 연습곡들이나 베토벤의 소나타 '발트슈타인' 같은 곡들을 귀 기울여 한참 들으며 앉아있기도 했다.
토요일 오후, 친구와 같이 학교에 남았던 어느 날, 음악실에서 피아노로 반주를 하며 모차르트 ‘라우다테 도미눔’을 불렀던 선명회 합창단 출신이었던 그 친구의 고운 목소리와 그 선율도 잊을 수 없다. 곱슬로 살짝 내려오는 머리카락이 햇빛에 빛나던 옆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것도...
그 무렵 좋아했던 친구에게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 책을 선물한 적도 있었다. 범우사 문고판은 구하지 못하고 분위기 없이 평범해 보이는 책 표지에 번역이 달라서 그랬는지 문장도 내가 알던 그 문장은 아니었지만...
그 친구와 그 책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고, 그 이후로도 그 책을 아는 사람과 만나본 적도,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도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졸'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해 본 적도 없었다.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 책은 얼마 전에 다시 읽었다.
'졸'이라는 환상 속의 장소를 꿈꿨던 그 당시 나의 마음은 루이제 린저가 마지막 문장에서 표현한 '인간적인 격정'과 비슷한 종류의 느낌들로 가득했었던 것 같다.
그 당시의 벅찬 감정들은 많이 잊혀졌고, 지금은 커다란 마음의 동요 없이 담담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이번 기회에 처음으로 ‘졸’에 대해 마음 밖으로 꺼내어 이야기해 본다.
다음은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마침내 육중한 문을 열고 샘물 곁에 앉아 고요하고도 맑은 물을 들여다보며 전율했다. 조그마한 돌멩이를 들어서 유리 같은 수면에다 던졌다. 아직도 그 마술 같은 놀이가 힘이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유리처럼 맑은 파문들이 소리 없이 물 위에 번졌다가 되돌아오면서 교차하고 이상스럽지만 법칙에 따른 무늬를 이루었다. 나는 비로소 알았다. 앞으로 나의 생애를 이끌어 갈 것은 뒤엉키고 어두컴컴하며 괴로움에 찬 인간적인 격정이 아니라는 것을. 맑고도 냉엄한 정신의 법칙이 바로 나의 생애를 끌고 가리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됐던 것이다.'
후기 : 처음 글쓰기 과제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우려했던 것처럼, 최근에 읽었던 책 중 <사람, 장소, 환대>에 나오는 장소에서부터 시작해 '장소'라는 것에 대한 관념만 늘어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떤 장소라도 꺼내어 얘기해 보려니 표현력이 따라주지 않아서인가, 근사했던 장소조차 묘사하려고 하니 초라하고 형편없어 보여서인가 굳이 아무것도 꺼내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졸'이라는 나라가 생각났고
오래전 비밀처럼 혼자 마음속에 품었던 장소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설레기까지도 했다.
잊고 있었던 그 ‘느낌들’이 떠오르며 죽어있던 ‘감수성’ 세포들이 아주 약간은 깨어난 것 같기도 하다.
이건 여담인데,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라는 음악을 한 때 많이 좋아했었다. 세속칸타타로 내가 듣기로는 ‘인간적인 격정’이 가득해서 전곡을 듣고 있으면 온갖 행복과 고뇌로 가득해지는 음악이다.
그런데 칼 오르프와 루이제 린저가 결혼해 6년 정도 함께 살았다고 한다.
다른 방식으로 다른 시기에 나에게 각자 따로 다가와 깊은 영향을 주었던 두 사람의 가까웠던 관계를 알게 되었을 때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2022. 6. 12. 나를 위한 글쓰기 수업에서 '잊을 수 없는 장소' 1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