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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이세라 Oct 24. 2023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좋아하는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이문재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어릿광대처럼 자유롭지만

망명 정치범처럼 고독하게


토요일 밤처럼 자유롭지만

휴가 마지막 날처럼 고독하게


여럿이 있을 때 조금 고독하게

혼자 있을 때 정말 자유롭게


혼자 자유로워도 죄스럽지 않고

여럿 속에서 고독해도 조금 자유롭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여

그리하여 자유에 지지 않게


나에 대하여

너에 대하여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그리하여 우리들에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지난주에 행신 도서관에 강의를 들으러 갔다가 그곳에 잠시 머물러 이문재 시인님의 시집을 꺼내 읽어보았다.

'자유롭지만 고독하게'라는 시 한 편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페이지 밑에 작은 글씨로 브람스 F.A.E 소나타(자유롭지만 고독하게)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오래전에 브람스 전기를 읽으며 들었던 생각...

브람스 음악을 듣고 그 음악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어 있을 때, 나는 시공을 초월하여 브람스와 영혼의 교감을 나누는 사이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브람스가 클라라 슈만 또는 다른 누군가를 위하여 곡을 헌정했다고 했을 때, 만약 헌정받은 사람이 그 곡을 듣지 않고 다른 누군가가 듣고 깊은 감명을 받는다면, 브람스가 자신의 영혼을 담아 작곡한 음악은 둘 중 누구에게 더 깊이 전달되었을까? 

브람스 전기를 읽으며 위의 이니셜까지 그때 내 몸 어딘가에 새겨졌던 것 같다.

시의 제목을 본 순간 브람스를 느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드라마는 일부러 찾아 정주행 했던 몇 편 안 되는 드라마 중 하나인데, 거기에서 여주인공이 남주인공과 함께 F.A.E 소나타를 연주했고, 다음은 여주인공 대사이다.

"나는 앞으로도 준영씨가 준영씨 마음을 따라가는 그런 연주를 했으면 좋겠어요. 오늘 우리 연주한 곡요. F-A-E 소나타. 자유롭지만 고독하게란 뜻이잖아요 하지만 나는 준영씨가 자유롭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음과 같은 나래이션... 

“나중에 알았다. 그날 우리가 연주한 곡은 F-A-E ‘자유롭지만 고독한’ 소나타였지만, 브람스가 좋아했던 문구는 F-A-F ‘자유롭지만 행복하게’ 였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자유롭지만 행복하게"보다는 "자유롭지만 고독하게"에 더 공감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시에 담아 음악까지 덤으로 들려주면 좋을 것 같아 이 시를 골라보았다. 

사실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다기보다, 내가 듣고 싶은 시를 고른 것 같다. 


(제멋대로 시 해석 추가)


'여럿이 있을 때 조금 고독하게 / 혼자 있을 때 정말 자유롭게'

혼자 있을 때 닫혀 있으면 타인과 연결될 수 없으니, 타인과 연결되려면 열려야 하고 자유로워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 정말 자유롭게 되어야 할 것이고

여럿이 되어 점점 가까워져 하나가 되어버리고, 나와 타인이 같아져 버려 우리가 되어 함께인 상태로만 존재하게 되면 서로는 더 이상 개별적 존재로서 만날 수 없을 것이니 우리가 서로 계속 만날 수 있으려면 조금은 고독해져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여럿이 있을 때 조금 고독하게 되어야 할 것이다.


타인과의 연결은 나의 세계를 넓어지게 해 주지만 그 연결에만 집착하면 그 관계에 고착되어 다시 세계는 좁아진다.  

'내'가 '우리'가 되면 처음에는 확장되지만,  '우리' 너머의 다른 타인과 연결되기 어렵게 되고 관계는 '우리' 안으로 한정되고 다시 축소되고 좁아진다. 

그래서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되고 싶다.

혼자일 때는 연결되기 위하여 자유롭게, 여럿이 되면 다시 만나기 위하여 조금 고독하게.


이문재 시인님의 <사막>이라는 시에서 모래와 모래 사이의 '사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이다. 

'사이'가 없어지면 모래는 더 이상 모래일 수 없고 진흙으로 뭉쳐져서 모래알과 같은 개별성은 사라지고 나와 너의 구별이 없어져 여럿으로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개별적 존재가 사라져 버리면 서로 다른 존재와의 만남은 더 이상 불가능해질 것이다. 

자유롭지만 고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사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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