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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이세라 Mar 15. 2024

셰익스피어 소네트 73 (스토너)

*지난 글에서 슈만의 환타지슈티케 op73, 73이라는 숫자에 꽂혀서... 작년에 블로그에 적었던 글을 가져와봅니다. 


2023.2.7

오늘 펼쳤던 두 권의 책에서 동시에 <스토너>라는 책과 만났다.


"스토너는 항상 늦다. 게다가 무엇이든 어쩌다가 알게 된다. 대학교 2학년 때 자신이 대학에 온 이유를 깨닫게 되고,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받고서야 영문학을 공부하기로 한다." (전업주부입니다만 / 라문숙 / pp.191~193)


"2015년 초에 뒤늦게 번역되어 그간 좋은 소설에 충분히 단련된 독자들마저 탄식하게 만든 <스토너>는 초반 30쪽만 읽어도 눈물이 고이는 이상한 소설인데, 농민의 아들인 스토너가 농과대학에 들어갔다가 영문학개론 시간에 이 73번 소네트를 읽고 문학에 눈을 떠서 처음으로 부모의 뜻을 거스르기로 결심하는 장면을 읽을 때 나는 완전히 수긍할 수 있었다. 73번은 그렇게 삶을 다시 처음인 듯 살기 시작하게 만드는 시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역사 / 신형철 / p79)


좋은 소설에 충분히 단련된 독자들마저 탄식하게 만들었다고 하니 궁금해지는데 스토너에게 문학의 눈을 뜨게 했다는 셰익스피어의 73번 소네트가 어제 글로 적었던 나의 스산했던 마음을 그대로 읊은 시 같아서 오늘 도서관에 들렀을 때 <스토너>가 있길래 바로 빌려왔다.

심지어 지난번에 <인생의 역사>를 잠깐 읽었을 때 필사노트에 소네트 73의 마지막 구절만 급하게 적어놓았던 것까지 발견했다. 이쯤 되면 스토너와 셰익스피어 소네트 73과 내가 운명적으로 연결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 만도 하다. 


"그대가 이것을 알아차리면 그 사랑 더 강해져.

그대가 머지않아 잃을 수밖에 없는 그것을 더욱 사랑하게 되리라"

필사노트에 적은 소네트 73의 마지막 구절이다. 


출판사 서평을 보니 김연수 작가의 말이 눈에 들어온다. 

"나의 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스토너는 이미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알고 있었다"

김연수 작가도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73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김연수 작가님은 작년 <고양애서> 독서 모임에서 저자 강연으로 특별히 초청했던 작가님이라...  책으로 연결되는 인연들이 이렇게 또 얽히고설킨다.


책의 명성에 그렇게 혹하는 편은 아닌데... 스토너와의 만남은 왠지 설레고 기대된다. (제목만 봐서는 절대 자진해서 골라 읽을 것 같지는 않은 책인 듯)

분명 며칠 전에 두 책에서 오늘 눈에 띄었던 페이지들 다 대충 훑어 읽었던 부분이었고 스토너라는 이름은 무심하게 지나쳤던 것 같은데, 하나는 오늘 독서모임 책이라서, 하나는 오늘 반납하기 전 책을 펼치다가 우연히 다시 발견하고 유심히 읽어보게 된 부분이라 어제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환청처럼 듣고, 모든 것들이 머지않아 잃을 수밖에 없는 그것이기에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운명적인 만남 맞는 듯하다. 


<인생의 역사>에 소개되어 있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73을 아래에 옮겨 적어본다. 


"소네트 73

                                              윌리엄 셰익스피어


한 해 중 그런 계절을 그대는 내게서 보리라

전엔 예쁜 새들이 노래했지만 이젠 황폐한 성가대석.

추위를 견디며 흔들리는 그 가지들 위에

누런 잎들 하나 없거나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계절을.

내게서 그대는 보리라. 해가 진 후

서녘에서 스러지는 그런 날의 황혼을.

만물을 휴식 속에 밀봉해 버리는 죽음의 분신인

시커먼 밤이 조금씩 앗아가는 황혼을.

내게서 그대든 보리라. 불타오르게 해 준 것에

다 태워져. 꺼질 수밖에 없는

임종의 자리처럼. 제 젊음의 재 위에

누워 있는 그런 불의 희미한 가물거림을.

그대가 이것을 알아차리면 그 사랑 더 강해져.

그대가 머지않아 잃을 수밖에 없는 그것을 더욱 사랑하게 되리라.


윤준 엮고 옮김. <영국 대표 시선집> (실천문학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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