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의 징후다, 더는 아무 의미도
더는 아무 고뇌도 아니다 우리는 그리고 우리는
거의 잃어버렸다
낯선 땅에서 언어를"
-휠덜린
정신이 음악에 실려 부유하다가 현실에 안착...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F-A-E (Frei aber Einsam)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도 F-A-E
활발한 열정가, 우울한 몽상가
"슈만은 두 개의 필명을 사용했다.
오이제비우스는 우울한 몽상가,
플로레스탄은 활발한 열정가를 표상한다"
"이 모든 소리, 여행, / 지상의 잡다한 꿈을 가로질러 / 아주 낮고 은밀하지만 주의 깊은 영혼을 지닌 이에게 / 말 거는 하나의 소리"
"여기서 음악가가 그 자신에게 제기하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갈가리 찢긴 노래, 대답 없는 질문이다. 적어도 언어를 통한 대답은 없다...." 바로 이것이다. 옛 곡조에서 온 광기, 그 정확한 이름을 찾으려 하지 마라. 우울 아래 묻힌 사랑하는 이의 이름, 가차 없는 형벌인 양 언제나 나를 따라다니는 이 옛 곡조의 이름을"
"이미 어둠 속에 몸을 담근 새가 가져오는 죽음의 노래"
"고통은 특정한 누군가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세상에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때때로 자신의 삶보다 자신의 고뇌에 더 집착하는 것은, 오직 고뇌만이 삶을 충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고통은 '나'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우리'와 관련한다. 고통은 '자기 자신'을 망각하는 것이다. 고통 속에서는 특정한 내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
"이런저런 고통을 '내가 갖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 '나'라고 할 수 없는 나와, 내가 더 이상 속하지 않는 세상 사이에 '고통이 있다'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
"고통을 하나의 고뇌로 보자면, 그것은 자신을 존재하게 할 대상을 찾지 못한 고뇌다. 그것은 그 어떤 '나'도 고려하거나 생각할 수 없는 아픔, 이름 없고 얼굴 없는 아픔, 인격 없는 아픔이다."
"음악은 고통의 극단이다."
"고뇌 속에는 쾌락이 감추어져 있지만 고통은 그렇지 않다. 고통 속에는 허무가 있을 뿐이다. "
"고뇌 속에는 말할 수 있는 즐거움이 남아 있다. 적어도 고뇌에 대해 말할 수는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고통은 말하고 싶은 욕망, 충동까지를 앗아가 버린다. "
"슈만의 음악은 쾌락의 원리 너머에 있다. 또한 언어의 원리 너머에 있는데, 아마도 이 둘은 같은 의미일 것이다. 고통은 다른 범주, 이를테면 반복, 죽음의 충동, 비참의 범주에 속한다. "
"이 음악은 종종 힘겹고, 때로는 견딜 수 없는 것이 된다. "
"이 음악은 우리 안에서 우리가 알고 싶지 않은 것을 건드린다. 우리가 말할 수 없는 우리 자신의 광기, 우리 자신의 죽음을."
"마치 그런 고통 속으로 들어가게 될까 봐, 그로부터 나올 수 없을까 봐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존재의 고통, 그것은 그저 존재의 고통이다"
(슈만, 내면의 풍경 - 미셸 슈나이더)
정신은 부유하려 하고 높은 곳에서 오는 소리를 들으러 달려가려 하는데, 현실은 자꾸 땅에 내동댕이쳐지는 느낌... 자꾸만 땅으로 끌어내려지는 느낌...
꿈 깨라고 말하는 소리, 땅에 발을 딛고 살라는 꾸짖음. 관계들, 연걸고리들... 그래서 현실에서의 관계보다, 저 높은 곳에서 연결되는 관계를 꿈꾸었었는지도...
살아 있는 작가와 굳이 연결되고 싶어 하지 않았던 마음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몸으로 존재하기 이전에 '징후'였기 때문에...
저 멀리에서 오는 알 수 없는 이끌림은
상실된 기억들 틈에서
간신히 들려오는 부름을 알아차리는
순간적인 깨어남인지도...
꿈과 현실이 뒤바뀌어,
꿈꾸는 순간들이 사실은
깊은 현실 속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들 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