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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이세라 Nov 25. 2023

15년 만의 연주회를 마치고

내 카카오톡 프로필은 오랫동안 '산이세라'라는 이름으로 되어있었다. 바꾸지 않고 있었더니 카카오톡으로 로그인하는 브런치 이름까지도 자동으로 그렇게 설정되어 버렸다. 

특별한 뜻은 없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친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 닉네임이 '산이'였고 자기는 '세라'였는데 자꾸만 내 카카오톡 프로필을 '산이세라'로 바꾸어 놓는 거다. 내가 다시 바꾸면 자기가 다시 바꾸어 놓아 귀찮아 내버려 두었던 프로필이 지금까지도 내 이름으로 되어 있었던 거다.

나중에는 바꾸려니 슬퍼졌던 것 같기도 하다. 아이의 흔적이 묻어 있는 종이 조가리 하나도 버리기 힘들어했던 성격이라 '귀찮다'는 핑계로 손대지 않았던 프로필 이름에서도 무언가를 상실하는 것 같은 슬픔과 마주하기 싫은 마음이 숨어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중에는 정말 귀찮기도 하고, 내 이름으로 바꾸기도 싫고 딱히 대체할만한 마음에 드는 이름도 없어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얼마 전에 카카오톡 이름을 내 이름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아이 사진 일색이던 프로필 사진도 내 연주회 사진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 행위에 특별한 상징성을 부여했다.

'그래... 지금까지 '엄마'라는 정체성으로만 나를 규정해 왔다면 이제는 '나'로 돌아오는 거다'라고


아이를 낳기 바로 전까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를 했었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가 핫했던 시절에 이런저런 시민 오케스트라가 생겨나기도 했던 시절에 나는 조금 더 활동하다가, 아이를 낳고는 연주에서도, 음악에서도 멀어졌다. 


곰곰 생각해 보니, 나는 아이 때문에만 멀어진 건 아니었다.

자기 계발서를 열심히 읽었고, 회사에 지나치게 충성한 인간이 되면서 이미 음악에서 멀어졌고 야근을 했고, 지방 근무를 다녔었고... 생각해 보니 아이를 낳기 전까지 매년 연주를 했는 줄 알았었는데, 아이를 낳기 바로 전 해에 연주를 했던 기억 때문에 그때까지 계속 연주를 했다고 착각을 했었나 보다. 

이미 음악에서 많이 멀어졌기 때문에 결혼도 일하다가 만나게 된... 음악에 관심 없는 사람과 하게 되었을 거고, 결혼하기 전 남편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갔던 음악회에서 마음으로부터 나도 '음악'과 결별하게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속했던 세계로 남편을 데리고 오려고 시도했다가 그게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을 거고, 아마도 내 쪽에서 아예 그 세계를 자진해서 완전히 포기해 버리고 '결혼'으로 분명히 구분되는 다른 쪽 세계로 넘어와 버린 것 같기도 하다.

글을 쓰다 보니 하나씩 흐릿하게 다시 생각이 나는데, 아이를 낳고 얼마 후에 혼자 갔던 음악회에서, 나는 어린아이를 두고 음악회에 온 것이 전혀 즐겁지 않았고, 그 후로 나는 아이에게로 다시 돌아가 더 이상 그곳을 찾지 않았던 것 같다.

이미 떠나와 버린 세계에 미련을 두고 싶지 않아서 더욱 철저히 외면했을 거다.

그래서 오랫동안 '음악'을 듣는 것도 싫어했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면 음악과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별의 상처'가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주 토요일에 15년 만에 연주를 했다.

음대가 없는 학교에서 현악부로 시작했던 동아리가 관현악단으로 발전해서 50주년 정기연주를 하기까지 이어져 오고, 2000년 무렵에 졸업생 오케스트라가 창단되어 20회 연주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데, 지금 졸업생들 가운데서 55살 이상 선배들이 모여 다시 '센텀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지난 토요일에 연주회를 하게 되었던 거다. '센텀'은 100살까지 연주하자고 하는 취지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오랜 역사의 중심에 항상 80년대 학번 선배들이 있었다. 나는 91학번인데, 졸업생 오케스트라 창단 연주 때에도 주축이 되었던 80년대 선배들 중심으로 이번에 다시  '센텀 오케스트라'를 창단하면서, 20여 년 전 졸업생 오케스트라 창단 연주회때와 똑같은 지휘자님이 이번에도 지휘를 맡아주셔서...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센텀 오케스트라의 창단 연주회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아직 나이로는 정식 멤버 자격이 되지 않지만 과거 '창단 연주 멤버들'에서 가져와 복사해 붙여 넣기 하듯... 나도 이번 '창단 연주 멤버' 속에 붙여 넣기 되었다.


잊고 있던 기억들이 하나씩 깨어난다.

졸업하고 7년 만에 졸업생 오케스트라가 생겨서 그때도 고향에 돌아가듯 기뻐하며 돌아갔었던 기억... 그러다가 고향을 떠나게 되었던 것에는 여러 가지 개인적인 사건들이 있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였다.

단지 아이를 낳고 육아에 몰두하느라 떠나왔고 잊었는 줄 알고 있었는데....  


'음악과의 결별'은 생각해 보니 아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연습하러 가면서 나는 잊고 있었던 과거와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과거의 모습 중에서 훼손되지 않은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기억들 중의 일부만 골라서 만나고 왔던 것 같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까지 깨우는 것이 좋은지 모르겠는데 조금씩 생각난다. 조금씩 생각나는 걸 보니 그 모든 망각들이 의도된 기억상실이었던 같다.


어쨌든... 연주회는 생각보다 긴장하지 않고, 많이 틀리지 않고, 무사히 마쳤고 이번주는 연주 끝난 홀가분함을 만끽하며 지냈다.

그리고 연주회 사진들을 보다가 문득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내 연주사진으로 바꾸었는데, 바꾸는 김에 이름까지도 내 이름으로 돌아왔다.

다시 아이 사진으로 되돌리려고 하는 충동과 싸우다가, 내 사진과 내 이름으로 돌아온 그 행위에 '의미부여'를 하기로 했다.


작년에 '나를 위한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글쓰기조차 억눌러왔던 마음과 싸우다가, 같은 프로그램을 두 번째로 수강할 때에서야 비로소 아주 조금 마음을 열고, 과거의 기억 중에서 '오케스트라'를 했던 기억을 불러와 적어보았었다.

프로그램의 취지에도 반항하며, 그렇게 적는 내 행위를 무의미하게 바라봤던 것 같다. 과거를 불러와서 현재에 적어내는 나의 행위조차 혐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적었던 글이 씨앗처럼 심어졌다가 나도 모르게 발아하여 지난주에 연주를 다시 하고 꽃을 피우기까지 이어진 것이 아닐까? 그 모든 일들이 일 년이 조금 지나는 동안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조금 신기하다.


연주회가 끝난 다음날 아침에 '나를 위한 글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하셨던 이문재 시인님의 '그래요, 우리는 꽃만 봅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읽게 되었는데, 꽃을 피웠던 연주회가 바로 어제였던 아침에 열어본 글이 마치 '센텀'을 돌아보는 듯싶었다. 

"꽃 피워냈던 나무가 저기,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곧 날이 밝고, 다시 눈이 내리고, 누군가, 그 무언가가 문을 두드리겠지요." - 칼럼의 마지막 구절이 특히 연주회가 끝난 다음날 아침, 꽃이 져버린 허탈감에 빠져들기보다 꽃이 져도 다시 피게 만드는... 희망과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을 볼 수 있게 하는 것 같았다. 


"하늘 옷을 잃어버린 선녀가 지상에서 열심히 아이를 키우다가 문득 나에게도 하늘나라 시절이 있었던 걸까? 궁금해하며 선녀옷을 뒤져보는 것처럼... 작년에 '오케스트라' 시절을 떠올려보며 글을 썼던 적이 있었어요. 선녀 옷을 찾게 된다고 해도, 떠나온 바로 그때의 그 하늘로 돌아갈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늘도 선녀도 그동안 많이 변했을 테니... 그런데 그때는 변하지 않는 그 '무엇'에 대해서는 몰랐었나 봐요. 뜻밖에도 선녀옷을 발견했지만 선녀에게도 하늘로 돌아가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잠시 선녀옷을 입어보았지만 입는 방법을 잊어 당황하고, 하늘의 예법을 까맣게 잊어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하며 하늘을 기웃거려 보았을 거예요. 그런데 선녀는 하늘나라가 있었다는 사실만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름다운 사람들'이 거기에 있는 것을 모르고... 오랜 '기억상실'에서 깨어난 것처럼... 잊고 있었더라고요... 지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선녀도 고군분투하느라 '하늘'을 그리워할 수도 없었을 거예요... 잠시 선녀옷을 입고 하늘을 방문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지만 이제는 하늘을 잃어버린 선녀가 아니라 다시 기회가 된다면 찾아갈 수 있는 든든한 하늘을 가진 선녀 같아요. 선녀 옷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하늘나라 예법도 더 배워 55살이 되면 완전히 자격을 갖추어 다시 하늘을 다녀올 날을 꿈꾸며, 최근에 하늘에서 있었던 추억과 다가올 미래를 그리워하며... 지상에서의 삶도 훨씬 더 풍부해질 것 같아요. 다시 꽃을 피울 날이 있기를 바라며 모두 건강하시기 바래요. 꽃이 피고 지기까지 수고한 모든 나무와 땅과 해와 달, 낮과 밤, 벌 나비, 송충이, 매미, 까치, 천지자연에게 감사하며...."


칼럼을 연주회 단톡방에 공유하고, 마지막 구절을 칼럼에서 표절하여 위와 같은 글을 남겼다. 단톡에 장황하게 이런 글이라니... 두고두고 이불 킥할 일이었지만 이 글에도 기록의 의미로 복사해 와서 남겨본다.


'나를 위한 글쓰기'를 하며 '선녀옷'을 뒤져보는 것 같았던 선녀는

하늘 옷을 발견해 하늘에 잠시 다녀왔고, 

씨앗처럼 심어졌던 글은 '연주회'라는 꽃을 피웠다.


습관처럼 그 모든 게 무슨 의미인가... 허탈감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시지프는 묵묵히 돌을 굴리고, 돌에는 그전에 없던 광채가 생겨나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행복한 시지프가 가능해질 것이다.


"돌의 입자 하나하나, 어둠 가득한 이 산의 광물적 광채 하나하나가 그것 자체만으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산정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한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프를 마음에 그려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시지프 신화 / 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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