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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이세라 Dec 24. 2023

엄마 정체성 15년... 그 후...

< 1 >

"...여성은 아이를 낳음으로써 확연한 단절을 겪는다는 것이다. 아이 탄생 이전의 자신과 이후의 자신 사이의 단절은 평생 회복되지 않기도 한다. 영원히 단절된 채로 그 이전의 자신과는 멀어지기도 한다.

어머니는 나와 동생을 돌보느라 15년 정도의 시간을 썼다. 물론 그 이후에도, 지금까지도 자식에 대한 관심과 애정, 때로는 돌봄도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15년이란 아이와 가정 외에는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좋을 시간이다. 오직 엄마나 아내로서만 존재하는 시간, 그 밖의 자신은 잃어버린 시간, 아이들이 스스로 삶을 꾸릴 수 있을 만큼 성장하기까지 감내한 상실의 시간이다. 그것은 거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당연한 일이기도 했고, 때로는 '어머니의 위대함'이라 말해지며 칭송되고 존경받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내가 본 어머니는 그 15년의 시간을 이겨내기 위해 평생에 걸친 싸움을 해야 했다. 어머니는 다시 자기의 무언가를, 잃어버린 자신의 어떤 부분을 찾기 위해 분투했다. 환갑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얼마 전부터 시작한 드럼 연주 또한 그런 연장선에 있는 일이라는 걸 알 것 같았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 어머니의 삶으로부터 / 정지우>


아이를 낳고 경력 단절이 되면, 엄마로서의 정체성으로만 살아가는 평균 기간이 약 15 년 정도 되는가 보다.

카톡 프로필 사진과 이름을 아이로부터 분리해 내 이름으로 바꾸었을 때의 기분은  마치 긴 잠에서 깨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잠'이라고 표현했던 15년의 기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혹시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런 표현을 사용하면서 조심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오히려 그 15년의 기간은 인생을 통틀어 진짜 같은 '삶' 속에 푹 들어갔다가 나온 시간이었다. 나는 절대로 그 기간을 낭비였거나 나를 잃어버렸던 기간이었다고 여기지 않는다.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라 진짜 나로서 성장하는 시간이었다.

한쪽밖에 모르던 나의 세계가 다른 한쪽으로도 넓어지는 기회였다. 

이전의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냥 나였더라면 이후의 나는 '엄마라는 정체성 자체가 나였던 그 자체로서의 나'였지 절대로 나 자신으로 살지 못했다는 뜻은 아니다.

프로필을 바꾸면서 '나'로 돌아왔다는 의미는, '엄마였던 나'에서 개인으로서의 '나'로 돌아왔다는 의미이지... 잃어버렸던 나를 되찾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니 나로 돌아온 것을 축하받아야 할 일도 아닌 것이다. 그냥 그렇게 의미 부여를 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음악보다 아이를 더 사랑했던 나였다가, 음악을 사랑했던 기억을 약간 되찾은 나로 돌아왔을 뿐이다.

엄마였던 내가 진정한 내가 아니었다는 뜻은 아니니까. 마찬가지로 공연을 하고 그것에 대해 글을 쓰는 내가 진정한 나라는 뜻도 절대 아니다. 

위의 글에서 말한 것처럼 엄마라는 정체성으로 살았던 기간이 영원한 단절의 시간도, 감내해야만 했던 '상실의 시간'이었던 것도 더더욱 아니었다.


<82년생 김지영> 책에 사실... 모든 엄마들이 다 공감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아이를 낳으면서 두고 올 수밖에 없었던 저쪽의 세계에 미련이 남는다면 이쪽 세계를 부정하고 끊임없이 저쪽 세계를 선망할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놓치고 이쪽 세계로 넘어온 것은 아닌지 생각하며... 아이를 얻고 새로운 세계를 얻은 것에 대해 인식하기보다는 무언가 더 크고 화려한 것을 놓치고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하는 미련에 대한 인식이 더 큰 상태...

그 또한 사회에서의 경력에만 가치 부여를 하는 관념에 사로잡힌 것 아닐지...

엄마로서의 일은 일로, 경력으로 여기지 않는 관념... 스스로의 일에 대해 가치 폄하하는 인식... 이런 인식의 원인은 가정에서의 일은 돈으로 환산받지 못해서인 걸까? 겉보기에 화려해 보이지 않아서일까? 


내가 직접 겪어본 결과... 어떤 예술가적 직업보다도 가장 창조적 작업이 가능한 일이 '육아'였다.

이렇게 능력과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무한대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육아'를... 단지 번듯한 직업의 명단에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 일에 참여하는 스스로마저 자신의 일을 폄하하는 인식이 대세가 된 것은 아닐까.


엄마를 '비주류' 또는 '약자'의 관점에 놓고 그 스스로가 바라보는 그 시선


나는 한 번도 아이를 키우며 그런 약자의 입장에 나를 두고 생각하지 않았다.

두 세계로 나눈다면 내가 떠나온 저편의 세계가 주류이고 이편의 세계로 넘어온 나를 비주류로 판단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모든 시선과 관점에는 이미 저쪽이 주류이고 이쪽은 비주류라는 관점을 전제하고 있는 듯해서 불편하다.

엄마라는 시기를 거쳐 작가가 된 이들의 글에서조차도 그런 관점은 발견되고 그 부분이 나를 불편하게 하고 공감하지 못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작가가 된 자신은 주류 세계에 편입하여 '진정한 나'로 돌아온 것이고 엄마였던 '나'는 나를 잃어버리고 살았던 힘든 기간이었던 것처럼 부정적으로 보는 듯한 그런 관점.

글을 쓰고 사유하는 작가들 자신조차도 그러한 사고방식에 갇혀 있다면 세상 전체는 더욱... 이미 세상은 그렇게 정해져 있는 듯 모두에게 인식될 것이다.

세상이란 이미 그렇게 정해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어차피 우리의 인식에 따라 다르게 분류될 수 있는 법일 텐데... 모두가 이러한 관념과 인식 속에 사로잡혀 있다면 한쪽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오직 '피해의식'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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