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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이세라 Dec 31. 2023

도서관 수업, 독서 모임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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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3년 전 '여행 글쓰기' 수업을 하셨던 그 강사님께서 한양문고에 강의를 하러 오셨다. 정보를 공유받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바로 신청을 했다. '강점 코칭'이라는 강의 주제는 별로 끌리지는 않았지만, 강사님을 만나러 가고 싶었다.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감회가 새로웠다. 처음 도서관 수업에 접속해서 그 후로 수없이 많은 강의를 듣고 많은 책들을 숨 가쁘게 읽어 내려가고 그때 알게 되었던 '원 노트'에 필사를 하고, 많은 활동들을 하게 되기까지... 처음의 기억에 그 강사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책을 쓴다면 어떤 주제로 쓰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나는 사람들이 힘들다고만 인식하는 육아가 정말 재밌고 창조적인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을 주제로 쓰고 싶다고 했다.

강사님은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책은 정부 차원에서도 권장하고 환영받을 책이 될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오랜 육아 기간을 통해 강렬하게 느껴왔던 생각들은 점차 희미해지고 희석되고, 한참 전에 육아는 졸업을 한 것 같아 잊혀 가고 그 주제에 대해 책을 쓰고 싶었던 생각도 사라져 가고 있었는데, 지난 주말 동안에 '엄마 정체성 15년, 그 후'라는 제목으로 열 편의 글을 나도 모르게 이틀 동안 내리 적어 내려갔다.

강사님께 말씀드렸던 주제가 생각 나서였던 건 아니었고, 마침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라는 책을 읽다가 정지우 작가가 자신의 엄마와, '82년생 김지영'을 이야기하는 부분을 읽었을 때, 내 생각이 불쑥 올라와서 갑자기 글을 적게 되었던 거였다. 


퇴고도 없이 그렇게 토해내듯 글을 적고 난 이후, 첫사랑 같은 강사님을 만나러 가면서, 무언가 완결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전까지는 글쓰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마치 책 쓰기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서,  3년 전 그 이야기를 처음 내 입으로 말씀드렸던 그 강사님을 그 주제로 '책 쓰기'를 나도 모르게 했던 바로 며칠 후에 재회하러 간다는 사실이 묘하게 맞물리는 것 같고 의미가 있어 보였다.


'의미 없다'라고 생각하며 내뱉었던 나의 말들, 나의 글들은... 씨앗처럼 어딘가에 뿌려졌다가 나도 모르게 발아하여 이런 식으로 또 꽃을 피우는 걸까?  


올해 들어서 책을 내라는 격려를 많이 들었다.

워낙 글쓰기, 책 쓰기 열풍이라 유행에 휩쓸리고 싶지 않은 저항심과 오기가 쓸데없이 또 발동한 건지... 그런 격려들에 무심하고 싶었다. 이미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책들이 있는데 내가 쓴 책 한 권이 무슨 의미이고 무슨 쓸모가 될 것인가 하는... '의미 없다 주의'

하지만 그것 또한 내가 계속 경계하려고 해 왔던 '결과주의'에 입각한 생각일 것이다.

기왕이면 세상에 쓸모가 되는 책을 내고 싶다는 욕심일지도 모른다.  이 또한 '쓸모 주의'이다. '쓸모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 대해 그토록 비판해 왔으면서...


그냥 나 자신이 글을 쓰고 그것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면서... '아름다움을 연애하여 출산에 이르는 길'로서 나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일일 테니... 

꽃 피우기에 연연하지 않지만 씨앗을 뿌리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그리고 다시 씨앗이 되어 세상 어딘가에서 또 다른 꽃을 피울 수도 있는... 그 순환에 몸을 실어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 그것이 어차피 죽고 사라져 버릴 것이기에 의미 없어 보이는 생명에 '의미'를 부여하는... '생명'이 살아가는 동안 수행해야 할 것으로 부여받은 유일한 과제일 수도 있을 테니...


"사람들이 하는 일들 다음으로는 지식으로 나아가서, 거기에서 지식의 아름다움을 보아야 하지요. 그러면 그는 이제 아름다움을 도처에서 보고, 더 이상 어떤 소년이나 사람이나 일이 지닌 하나의 아름다움을 연애하며 그것의 노예가 되어 비천하고 편협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움의 대양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관조하면서, 지혜에 대한 무한한 에로스 속에서 아름답고 장엄한 이야기와 사상들을 수없이 출산합니다. (향연 / 플라톤 / 현대지성)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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