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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이세라 Feb 04. 2024

여성혐오에 관한 글을 읽고(단상)

정지우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여자의 몸을 돈을 주고 산다는 의식이 남자들에게 뿌리깊이 박혀 있다면, 남자들 자신조차 스스로가 혐오스럽고, 돈을 주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상대방에 대해서까지 혐오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술자리의 끝에 공범자들처럼 함께 그런 곳에 가고, 그런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 그로 인한 결속이 강해지는 사회라면...

우리 사회가 감추고 싶어 하는 이면, 뒷골목에 그런 모습이 가득한 세상이라면, 어느 누가 누구를 믿을 수 있었을까... 혐오감만 가득한 채 세상을 미워하게 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타인을 사랑할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순수성을 일찌감치 잃어버리고, 조금씩 더러운 세상과 타협하며 연약한 양심의 부분을 외면하고 굳은살이 배기게 하며... 그렇게 세상을 헤쳐가야 하는 것이라고 배우지 않을 수 있었을까? 더러운 구정물을 피할 수 있었을까?

깨끗한 사람은 없을 거라 어느 정도 체념하고, 순수성에 집착하는 것 또한 폭력일 수 있다며, 우리의 더러운 모습을 정당화하려고 하지는 않았을까?

순수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과연 상처받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 세상이 익숙하고 편안하고 친밀하고 다정했을까? 순수함을 찾다가 배신당하고, 배신당하고... 아무것도 믿지 않고 사랑하지 않기를 선택해버리지 않았을까?     


순수함을 반려동물에게서 찾지만, 자신도 결국은 그 순수함을 배신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내가 찾아냈던 마지막 희망은 ‘아이’였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배신의 두려움 없이 순수함을 마음껏 사랑할 수 있었을 테니까....

내가 혹시라도 자격이 되지 않을까 봐... 나에게도 오물이 묻지 않도록 결벽증까지 생기면서... 더러운 것을 혐오하면서...

순수함을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을 오래도록 지키고 싶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순수의 세계 속에 있었고, 그래서 그 기억이 나에게는 그토록 소중했던 거였고 안성맞춤의 자리였던 것 같다.

마음껏 사랑할 수 있었으니까... 엄마와 아이 사이에서... 사랑 외에 필요한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내 가슴 밑바닥에 쌓여 있었던 것은 혐오였고, 분노였는지도 모르겠다. 더러워서 나까지 더럽게 만들어버리고야 마는 세상에 대한 분노감 없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만 바라볼 수 있었을까? 버젓이 웃고 있는 악마의 웃음, 비열함을 보지 않을 수 있었을까? 고개를 돌리고 아름다운 것만을 바라보고자 하는 것도 회피이고 자기기만이 아니었을까.

소리를 지르고, 혐오감에 휩싸여 비명을 지르고... 그런 내 모습에 또 좌절하고 자학하고... 

세상에 분노하는 내 모습을 스스로 혐오해야 하는 굴레 속에 얽혀 들어가고야 마는...

'포스트맨을 벨을 두 번 울린다' 책에서의 고양이처럼 슬그머니 다가오는 그 사슬들을 피할 수 있었을까?     


루이스 새커의 ‘구덩이’라는 책에 나오는 '키스하는 케이트 바로우'처럼...

아예 그 세계 속에 뛰어들어가 악마를 응징해 버리는 게 나았을까?

나는 도망치고 회피하고 안전지대에 숨어버리기만 바빴던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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