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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이세라 Apr 04. 2024

청개구리가 되자

청개구리가 되자


어떤 독서 토론에서는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을 일부러 심어 놓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악마의 변호인은 집단적 사고의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 구성원 중에서 일부러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는 사람이라고 한다.


얼마 전 기후 위기 관련 책으로 토론하다가 책의 주장과 반대 입장에서 의문을 제기했더니, 그때 진행하시던 분이 예리하게도... 아마 책의 주장이 반대였으면 찬성 쪽 의견을 말했을 거죠?라고 하며 '악마의 변호인' 언급을 하셨는데, 진행자의 지적이 어찌나 나를 잘 간파하고 있다고 느껴지던지... 정 반대 주장이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정말 그랬을 것 같았던 거다.


그동안 내 역할이 '악마의 변호인'과 같았었구나... 싶었는데... 나는 너무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인 것 같아 최대한 자중하려고 참고 참았는데도 결국 참지 못하고 그렇게 해왔었던 거였다.


한편... 나는 왜 이렇게 저항감이 있을까? 부정적일까? 고민이 많았었는데...

이제야 생각해 보니, 그 모든 이유는... 노예가 되기보다 자유인이 되고 싶다는 의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여차하면 자진해서 누구보다도 순종적인 노예가 되어버리는 나 자신의 습성을 알기 때문에 그 저항감이 더 크게 드러났는지도 모르겠다.


귀가 얇고 너무 쉽게 영향받아서... 남들이 좋다는 것... 그게 내 생각인 경우가 누구보다도 많았던 것 같다. 그런 나를 제어하기 위한 방어 기제가 과도하게 작동해서 '저항감'을 더 크게 키웠는지도 모르겠다.


그 모든 저항감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순종적인 사람이 되고 마니까.

특히 무의식에서까지도 전적으로 순종했던 건 엄마의 말이었고, 의식적으로 저항해도 결국 본능적으로 순종해 버리게 되는 엄마는 대타자였고, 억압이고, 구속이었다.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눈치를 보고, 엄마가 괜찮다고 생각해야 결국 나도 모든 게 괜찮다고 느껴버리는 습성은 나이를 먹은 지금도 여전한 듯하다.


그래서 ~ 해야 한다 라는... 정언 명령과도 같은 말에 의문 제기하고 저항하고 싶은 마음은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순종에 대한...  그 반항심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가 나에게 하늘 좀 보라고 한다고 해서 하늘을 본다면 그건 나 자신의 본성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와서 하늘을 보는 것일까?

누군가의 명령, 요구, 충고에 따라 하늘을 본다면 그 행위가 진정으로 자연스럽게 하늘을 보는 행위와 같을 수 있을까?

'하늘을 본다'는 겉모습의 행위만 일치할 뿐, 본질은 확연히 다른 두 행위일 것이다.


나 스스로의 이끌림에 따라 보게 되는 하늘과, 누군가의 음성에 의해 보게 되는 하늘은, 같은 하늘이지만 확연히 다른 하늘일 거다.

내가 하늘을 보기 전에 하늘을 보라고 먼저 말해버리는 음성은, 나의 순수한 마음을 훼손할 수 있다. 내가 원해서 하늘을 본 것인지,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하늘을 보게 된 것인지... 헷갈리게 되는 혼동이 생길 수 있다. 내가 정말 하늘을 보기를 원했던 것인지조차도 알 수 없어져버리고 말 것이다.

어떤 명령, 어떤 요구가 스스로 하기 이전에 주어져 버리면, 방해물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청개구리 심보가 되어.... 반대의 것을 원한다면... 바로 그것이 어떤 강요에 의해서도 아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어떤 주장에 대해서도, 저항부터 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번쯤, 저항해보고 나서... 그래도 그 주장이 수긍이 된다면... 수동적으로 그 주장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결국 똑같이 수용한다 하더라도... 주체적인 수용이 될 수 있을 테니...


어떤 의견에 무조건 찬성하는 집단적 사고보다... 악마의 변호인의 역할로 한 번쯤 의문 제기를 해보고 나서 그래도 찬성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된  찬성이 더 진지한 사고의 결과일 것이고, 노예가 아닌 주체로서의 선택일 것이다....


아이에게도, 마음보다 명령이 먼저 앞서 생각나게 될지 모르는 모든 말들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심도 새삼 하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말이 공부하라는 말이었을 거다.

호기심 많던 아이들은... 스스로의 탐구심에 이끌려서 하는 진짜 공부를 잃어버리고 말았을 테니까...


*************************


아이에게 하늘 좀 보라고

충고하면 안 돼


아이는

자신의 본성에 이끌려

스스로 하늘을 봐야 하니까


그렇게 본 하늘과

하늘 좀 보라고 말하는

음성에 이끌려 수동적으로 보게 된 하늘은

과연

같은 하늘일까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면 안 돼


아이는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호기심과 탐구심에 이끌려

스스로 공부를 해야 하니까


그렇게 하는 공부와

공부하라고 말하는

잔소리에 이끌려 수동적으로 하게 되는 공부는

과연

같은 공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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