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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이세라 Oct 30. 2023

공동체

'공동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고미숙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된 '공부 공동체'가 부러웠기 때문이었다. 

고미숙 선생님이 계신 '감이당'은 그곳에서 식사까지 준비하며 함께 먹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진짜 '공동체' 같아 더욱더 좋아 보였다.

교회에서 주는 밥이 부러워 교회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라...


고미숙 선생님의 어느 책 마지막에서 감이당에서 파생된 분당, 용인 지역의 '문탁 네트워크'가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문탁여사가 쓰신 글을 읽었을 때는, 우리 지역에서도 그런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게 생겨났었다.

문탁여사가 처음 모임을 시작했을 때 본인의 집에 열 명 정도 초대하여 밥부터 먹였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각자 얼마씩 모아 장소를 마련하고, 점점 규모가 커지게 되었던 것 같다. 


그 글을 읽었을 당시 나에게는 학부모 모임이 전부였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 밥부터 먹일 자신은 없었지만, 학부모 모임에서 뭔가 학구적인 제안을 했을 때 썰렁해졌던 반응을 몇 번 겪었기 때문에 '공부 공동체'에 대한 바람은 그곳에서는 기대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녀들에게는 필사적으로 책을 읽히려고 하지만 책 이야기만 하면 도리 도리 고개를 흔들던 엄마들이라...


공부 공동체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멀리 감이당이나 숭례문학당 같은 곳을 찾아가야 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을 것 같았고, 지역에서는 아무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 적극적으로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었겠지만 찾았다고 한들 갑자기 그곳에 올라타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을 거다. 

일단 아이가 아직은 어렸고, 모임이 있었더라도 아이와 한 몸으로 움직이던 당시 온전히 그런 모임에 접속하기는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래도 마침 역사 스터디를 하자는 제안이 있어 휴직 중인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 중학교 역사 선생님과 세 명이서 시작되어  3년 가까이 진행된 세계사 스터디 모임이 작은 공부 모임의 시작이었고 세계가 넓어지고 확장되는 소중한 경험의 시간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시작되었고, 학부모 모임의 쳇바퀴에서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새로이 접속하게 된 세계가 '도서관'이었다.

물론 '도서관'은 집을 구할 때 제일 우선순위였을 정도로, 걸어갈 수 있는 거리 내에 있어야 하는 친숙한 곳이었지만, 그곳에서의 수업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마도 집에서 가까운 삼송도서관에서의 수업만을 염두에 두었을 테니 프로그램이 다양하지는 않았을 테고, 정보를 주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 좋은 수업 정보가 있었더라도 놓치고 넘어갔었을 거다. 


그런데 코로나 기간 중에 마침 삼송도서관에서 '독일 신화' 강의가 있었고, 독일 작가 토마스만에 심취해 있던 때라 '독일'에도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끌리듯 강의를 신청하게 되었다.

그때 난생처음으로 '줌수업'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접속하게 된 도서관 수업은 '여행 글쓰기' 수업으로 이어지고, 온라인 수업이 조금씩 편안해지면서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고양시의 다른 도서관의 좋은 강의들까지 수강할 수 있게 되어 오랫동안 굶주렸던 사람처럼 배움에 대한 갈망을 채워갔다.

그러면서 독서 모임 관련 강좌가 하나씩 생기고, 후속 모임이 이어지면서 독서 동아리를 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참여하는 동아리 수가 많아지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모습이 꿈꾸던 '공부 모임'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게 되었던 거다.  

밥을 직접 준비해 함께 나누어 먹는 공동체는 아니지만, 아마도 내 성격으로 봐서 그런 모임을 하라고 해도 사실은 귀찮아서 싫어했을 것 같다. 


도서관에서 같이 강의를 들었던 사람들과 자주 마주치다 보니 학우들처럼 친밀감이 생겨, 이제 어느 강의를 들으러 가도 수업에는 아는 사람들이 한 두 명씩 발견된다. 수업 끝나고 같이 '밥 먹자'고 할 수 있는 정도로 친해진 느낌.

직접 밥을 짓지는 않더라도 같이 밥을 먹는 사이라면 '감이당' 공동체와 다를 게 없을 것 같다. 사실 고미숙 선생님이 화정도서관에서 하셨던 강의에서도 그러한 공부 모임을 '도서관'에서 충분히 기반 시설과 자원을 활용하여 더 쉽게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셨다. 


동아리 회원들과도 친해져서 타 도시에까지 강의를 들으러 몰려다니는 일들을 그동안 원 없이 하고 지내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너무 모임이 많아 힘들다는 비명을 지를 지경인데, 공부 모임에 대해 꿈꿨던 이전의 나를 생각하면 배부른 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그동안 '공동체'라는 것에 대해서 긍정적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옌젠씨, 하차하다>라는 책을 보면서 '공동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 적이 있었다. 


"이론적인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유행하는 사고의 방향에 휩쓸리지 않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옌젠씨는 자기만의 진일보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에 있다고 생각했다." (p115)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감각을 봉하고 사니까."아무 문제없는데 뭘." 그들은 그에게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 전에는 한 번도 생각 못했던 일들을 인식하게 됐다.


표지판은 진짜 정보들을 내포하지 않았다. 그저 의향의 표시일 뿐이었다.

그러나 사실 여기서 언급되는 것은 누구의 의지란 말인가?

여기서 화자는 분명 공동체, 시스템이었다."(p118)


"보통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만이 이 경고들을 인식할 수 있다면 이 경고들은 오롯이 자신의 길을 가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다시 말해, 그 당사자는 옌젠씨 본인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하는 짓은 위험했다. 그가 많은 일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도 위험했다. 확실히 그는 위대한 일의 실마리를 캐는 중이었고 그에게 더 이상 깊이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가 내려졌다.

다시 공동체의 일원이 되라는 주변 사람들의 연관 없는 듯하면서도 잦은 충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러지 말고 TV 를 새로 한 대 들여놓으라고 압력을 줄 정도였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은 그가 감시받고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였다."(p119)


"군중 속에서는 짧은 시간 내에 그날의 대세가 결정되고 일종의 공동 의사가 성립되며 흥미로운 소수의 견해는 매몰되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슬픈 것은 소수자들이 순식간에 군중에 동화되어 의견 일치를 보이면서 그것이 마치 자신의 의견인 양 착각한다는 점이었다.  의견이란 서로 간에 최소한의 간격이 필요한 것 아닐까 하고 옌젠씨는 생각했다." (p121)  /  (옌젠씨, 하차하다/야콥 하인/문학동네)


이런 부분들을 보면서 내가 긍정적으로만 생각해 왔던 '공동체'가 부정적인가? 하는 의문이 들어 '공동체'라는 단어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 같다.


이웃 공동체와 같은 것이 사라져 버려 개인들로 외로워진 현대 사회의 모습을 보면 '공동체'는 더욱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 같지만, 개인을 너무 간섭하고 전체가 같아져야 하는 '공동체'라면 부정적으로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공동체'에 대한 개념 자체부터 각자에게 다르게 인식되는 단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공동체에는 여러 형태가 있었던 거다. 

이웃 공동체, 마을 공동체 등은, 현대사회가 점점 잃어버려, 살려내야만 하는 좋은 면들을 담고 있겠지만, 공동체에는 가족 공동체에서부터 국가 공동체까지 확장될 수 있는 개념이라, 국가 공동체에서 전체주의처럼 되어버린다면 부정적인 면에 가까운 개념이 될 것이다.


결국은 여기에서도 '중용'이 필요한 것 같다.

혼자로 고립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는 공동체가 필요하지만 전체가 되어 똑같아져서 개별성과 고유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전체주의적 공동체라던가, 타인을 배제하는 공동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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