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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이세라 May 07. 2024

지안의 특기 - 달리기 (나의 아저씨)

지안 : 왜 뽑았어요?

동훈 : 달리기. 내력이 세 보여서. 100미터 몇 초인데?

지안 : 몰라요. 기억 안 나요.

동훈 : 근데 그게 무슨 특기래?

지안 : 달릴 때는 내가 없어져요. 근데.... 그게 진짜 나 같아요.


"정말 똑똑한 친구가 있었어.

이 동네에서 정말 큰 인물 나오겠다 했는데, 대학 졸업하고 얼마 안 있다가 절에 들어가 버렸어. 


그놈이 떠나면서 한 말이 있어.

아무것도 갖지 않은 인간이 돼 보겠다고.


다들 평생을 뭘 가져보겠다고 고생고생하면서 나는 어떤 인간이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아등바등 사는데, 뭘 갖는지도 모르겠고, 뭘 원하는 걸 갖는다고 해도 나를 안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못 견디고 무너지고,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 나를 지탱하는 기둥인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내 진정한 내력이 아닌 것 같고 그냥 다 아닌 것 같다고...


무의식 중에 그놈 말에 동의하고 있었나 보지

그래서 이런저런 스펙 줄줄이 나열돼 있는 이력서보다 달리기 하나 쓰여 있는 이력서가 훨씬 세 보였나 보지"


여러 개의 내가 겹쳐져서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 유령처럼 살아가다가, 내 안의 진정한 내가 깨어나는 것 같은 그 느낌...  달리기를 통해 지안이 느끼게 되는 것은 자신 속에 살아 있는 '생명력' 아니었을까. 

지금은 유령처럼 감정 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진정한 생명력으로 저 깊은 곳에 억압되어 죽어 있지만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던 생명력... 그걸 지안은 달리기를 할 때 느끼고 있었던 것 아닐까.

우리의 살아있는 몸 자체가 살아나기를 요구하고 있는 그 생의 에너지. 고통을 견딜 수 있도록 잠시 마취제를 놓아 죽이고 있었지만, 아직 살아 있다고 외치고 있는 소리... 연약한 생명력이 고개를 들어 신호를 보내고 있는 그 느낌...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세포 하나하나를 살려내려고 하는 신호


우리는 언제 생생하게 살아 있었고, 언제 죽었을까

어른이 된 우리는 대부분 죽어있는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삶과 죽음을 분간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안에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로 구분될 것 같다.

생명을 생성되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이 '사랑'일 테니까...

사랑의 소멸은 죽음에 가장 가까운 상태, 그리고 삶에 가까운 것이 바로 '사랑'일 거다. 


내가 나를 죽였던 그 시점들이 생각난다.

나를 죽이고 또 다른 나로 살아나기도 했었다.

이전의 나를 죽여야 새로운 나로 재탄생이 가능하기도 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랑'이었던 것 같다. '새로운 사랑'

이전의 나를 죽이고 새로운 나로 다시 살 수 있게 했던 힘은...


그 사랑은 꼭 대상이 '사람'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는 것 같다. 그 사랑이 예술을 향한 것이든, 문학을 향한 것이든.... 나를 새로 태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 되었든...


그렇게 나는 나를 죽게 했고, 또다시 나를 살게 하며... 수없이 부활하며 새로운 존재가 되어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


그 수많은 죽음들 중 가장 드라마틱했던 죽음은 나에게는 '출산'이었던 것 같다.

에너지 보존 법칙에 따르면, 하나의 생명을 태어나게 하기 위해 하나의 생명의 소멸은 불가피한 것 아닐까.

그렇게 엄마란 자기 존재를 죽게 하고, 자식이라는 새 생명을 살게 만드는 것 아닐까?

이전의 나는 임신과 출산 과정을 통해 점차 소멸하고, 하나의 생명을 생성하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이전의 내 정체성은 사라지고, '엄마'라는 정체성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

그렇게 해서 이전의 존재는 극적으로 죽음을 맞게 되었던 것... 그렇게 이전의 존재는 죽은 채로 나를 잊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잊었던 그 존재가 다시 살아나려고 꿈틀 하는 것... 

오래전에 한강에서 오랫동안 자전거를 탔던 날, 내 안에서 무언가 올라오려고 꿈틀거렸던 그것은... 

가족과 일체가 되어 '나 자신'은 잊은 채로 살아오다가, 잊었던 '나'라는 존재가 고개를 쳐들고 신호를 보내려는 순간... 내 안에서 올라오던 정체 모를 그 감정... 그건 그런 신호가 아니었을까. 그동안의 쳇바퀴에 무언가 균열을 일으키는 것 같은 작은 틈과 같았던 순간.


달리기와 같은... 몸 자체를 뒤흔드는 그런 체험을 통해서... 그 죽어있던 깊은 존재를 담은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호흡이 전달되고, 산소가 들어가고, 죽어있던 그 세포가 다시 생명을 얻으며 미약하게 부활하면서 보내는 그 신호를 알아차리게 되는 것 아닐까...


작은 틈과 같은 균열, 미약한 신호는 나비효과처럼... 삶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요인... 

안전 진단을 하는 구조기술사 동훈이 미세하게 건물에 생기는 균열, 그 틈을 발견해 내는 '아저씨'의 그 직업에도 작가는 무언가 의미를 담았던 걸까?

작은 틈, 작은 균열은 이전의 낡은 건물을 결국 무너지게 만드는 최초의 신호와 같아 처음에는 미약하지만 인생을 무너뜨리는 것 같은 충격으로, 커다락 건물을 결국 허물어뜨리는 힘으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겠지만... 어떨 때는 낡은 그것을 무너뜨려버려야 새로운 집을 지을 수도 있을 거다. 

무너져버릴 때, 충격이 크겠지만... 그렇게 철저하게 죽어야 다시 새로운 존재로 부활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틈, 균열이 가져올 충격, 폭풍 같은 나락이 어쩌면 더 높이 날기 위한 추락일 수도 있을 테니까...


구조기술사 동훈은 그렇게 삶을 안전하게...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고, 위험을 피하고 예방하고 진단하며, 건물을 진단하듯 그렇게 삶도 조심조심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다가 만나게 된 '지안'이라는 틈... 그것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아무리 진단하고 안전하고자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균열과 만나고, 아마도 철저하게 무너져버리는 과정을 거친 후... 전혀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방향으로... 그렇게 드라마는 전개되어 가지 않을까...


수많은 죽음을 거치고 나이테를 만들어 가며, 새로운 생명을 얻어 다시 부활하고, 그러다 다시 죽고...

그렇게 해서 씨앗에서 연약한 새싹이 나와 쉽게 죽어버리는 우리들은 여러 번의 죽음을 거쳐  커다란 나무로 성장해 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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