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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이세라 May 11. 2024

지안의 이름 (이를 지, 편안할 안)

'나의 아저씨' 마지막 회에 이르러서야 동훈이 펑펑 울었다. 


동훈 : 너 나 살리려고 이 동네 왔었나 보다

지안 : ...

동훈 :: 다 죽어가는 거 살려놓은 게 너야 

지안 :  난 아저씨 만나서 처음으로 살아봤는데.


동훈과 지안이 헤어지면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고,

그 후에 아저씨는 비로소 혼자가 되고, 혼자 밥을 먹다가

그제야 펑펑 울면서 진짜로 피와 눈물을 가진,  살아 있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다.


그전까지는 가족의 일부분으로만 존재하고 자신을 잊고 살아가다가... 철저히 혼자가 되어서야 비로소....

소리 내어 펑펑 우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고, 새로 태어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치게 되는 절차인 걸까?


탄생의 순간 아기가 큰 소리로 울면서 태어나듯이,

어른이 되어서도 존재의 미세한 변화가 있을 때, 소리 내어 엉엉 울기도 하는 것이 재탄생의 순간과 같은 걸까?


그렇게 눈물을 흘릴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해 왔었던 것 아닐까?


우리는 감추고 싶은 것을 들킬까 봐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지안에게 아저씨는 '괜찮다'라고 말해주기 위해 도망가는 지안을 찾아내어 결국 말해준다. 

괜찮다고...


나는 나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왔던 것 아닐까? '괜찮다'라고 누군가 말해주면 다른 내가 되기 위한 달리기를 멈출 수 있었을까?


절에 들어간 '겸덕'은 도망치고 싶었던 동훈 자신의 분신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가 없는 엄마의 둘째 아들, 한 집안의 가장, 대기업에서는 한 팀을 이끄는 부장, 한 동네에서 오래 살아와 모두가 어린 시절부터 잘 알고 모두가 좋아하고 의지하는 그 자신, 조그만 균열에도 민감한 직업 구조기술사... 그런 정체성으로 굳어진 그 자신 속에 도망가고 싶었던 분신은 그렇게 절에 들어가고 살아있는 자신의 생명력은 죽인 채로... 혈기 왕성한 젊은 날 정희와 함께 보름동안 겸덕을 찾아 헤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생의 기쁨' 없이 껍데기만 현실에 남아 견디고만 있는 것 같은 사람...


겸덕은 드라마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편안하게 정희를 만나고, 이십 년 만에 살았던 동네를 다시 찾아오는데, 그만큼 동훈의 마음도 편안함에 이르렀다는 걸 분신 같은 겸덕의 변화로 보여주는 걸까?


나의 아저씨의 엔딩은 다음과 같은 두 사람의 마음속 대화로 끝난다.


동훈 : (E)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냐?


무리들과 가다가 동훈 쪽을 돌아보는 지안. 그러다가 다시 밝게 가는 얼굴 위로


지안 : (E, 가뿐하고 차분한) 네.... (한 더) 네.


그렇게 밝게 가는 동훈과 지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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