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이세라 May 26. 2024

눈물과 웃음

'나의 아저씨'에서 지안이 처음으로 소리 내어 펑펑 우는 장면과, 시종일관 웃지도 울지도 않으며 무표정하게 굳어 있다가 동훈과 함께 처음으로 웃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회에 동훈이 펑펑 우는 장면이 의미심장하게 보였던 건, 웃음에 대한 주제로 얼마 전에 적었던 생각과 연결되는 것 같아서이다. 

아기가 탄생의 순간에 울음을 터뜨리는 것처럼, 살아 있는 동안에도 작은 죽음과 재탄생을 반복하며 성장하는 인간의 삶에서 울음의 순간은 그 이후의 존재가 극적으로 변화하게 되는 터닝포인트라고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눈물'이 그처럼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다음 순서가 '웃음'인 것 같다. 눈물이 웃음으로 승화된 그런 '웃음'... 그래서 어느 시인님이 "눈물은 쉽지, 웃음이 윗길"이라고 말씀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글쓰기 모임에서 '웃음'을 주제로 적었던 글을 첨부한다.


<웃음에 대하여>


과거의 사람을 만난다는 건, 그때 죽었던 과거의 내가 되살아나는 것, 부활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생명력을 잃고 죽은 것처럼, 좀비처럼 살아가던 존재.... 생명력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사실 모두 좀비가 아닐까, 그러다가 과거의 사람을 만나며 죽었던 나의 일부가 되살아나는 경험,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부활하며, 생의 에너지를 되찾아가고 다시 살게 되는 것 아닐까.


웃음이란 억지 미소가 아니라 진정한 몸의 반응.

말은 꾸밀 수 있지만 웃음은 꾸밀 수 없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

웃음을 잃어버린다는 건, 몸의 반응이 약해지고, 생명력을 잃은 것

몸이 깨어나야 웃을 수 있고,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좀비처럼 죽은 것처럼 살아가는 생명에게 웃음도, 눈물도 어려운 일.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웃는다는 것은 그 순간 살아난 생명력의 발현인지도...

녹음기가 반복해 말할 수 있듯이 몸의 대부분이 죽어 있는 사람도 녹음기의 재생 버튼을 누르듯이 반복해서 암기된 말, 상투적인 말을 반복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살아 있는 말, 살아 있는 대화를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살아있는 대화와 죽은 대화는 확연히 다르다. 죽은 말은 아무것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귓전에만 스쳐 지나갈 것이고 상대방의 깊은 마음속까지 다다르지 못할 것이다.

웃음이나 눈물도, 억지웃음, 억지 눈물이 아닌, 몸의 자연스러운 반응으로서의 웃음과 눈물이라면, 그 순간 살아 있는 존재의 강한 표현, 발현, 나타남이 아닐까.


책을 읽을 때, 그 작가를 좋아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웃음’이었다.

문장이 나를 웃음 짓게 만들 때, 그때 그 문장이 가장 살아 있는 문장,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이기 때문 아니었을까.

그래서 조지오웰이 좋았고, 김연수 작가를 좋아했던 것 같다. 김애란 작가에게 호감이 가던 순간도 <잊기 좋은 이름>에서 많이 웃게 되었을 때였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음울한 인상에 반해, <지하로부터의 수기>와 <가난한 사람들>에서 크게 웃으면서 더 좋아하게 되었었다. 그 후로는 찌질한 느낌으로 비슷하게 반복되는 웃음코드에 식상해졌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니, 시종일관 진지한 책 보다, 웃음이 튀어나왔던 책의 그 부분이 가장 선명하게 기억 속에 지금도 살아 있는 것 같다.


철벽을 치고 살아가다가 아주 잠깐이라도 무방비상태가 되는 순간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버리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것 아닐까...


그렇게 조금씩 열린 마음으로 얼마 전 술자리에서는 울어버리기까지 했으니... 마음을 너무 열어버린 것 같아 당황스럽고 다시 철벽을 치고 마음을 추스르고 싶기도 하지만... 사실 차가운 인간 사회에서 조금이나마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순간은 눈물과 웃음뿐인지도 모르겠는데... 다시 차갑게 돌아서고 싶지만 과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산다고 할 수 있는 일일까? 의문이기도 하다. 웃으면서 함께 회복했던 마음은 인간에 대한 ‘다정한 마음’이었던 것 같지만... 차갑고 모진 세상에서 마음을 열었다가 다른 나쁜 것들이 함부로 들어와 버려 조금이라도 상처받지 않기 위해 우리는 같이 차갑게 다시 철벽을 치려고 마음을 닫고 추스르려고 노력하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조금이나마 열렸던 마음을 다시 황급히 닫아버리고 싶었으니까...


이전 13화 지안의 이름 (이를 지, 편안할 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