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담아>를 보고 나서 쓰다.
<사랑을 담아>를 보고 나서 씁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여러 언론에서 꼽은 2022년 올해의 책이었고, 타임지에서 같은 해 최고의 논픽션으로 선정한 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23년 문학동네에서 펴냈습니다.
이 책의 작가 에이미 블룸은 첫 결혼생활에서 오랜 불행을 겪습니다. 그러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나서야 진정한 사랑을 만납니다. 그와 함께하면서 뒤늦게 자신을 찾고 생의 행복을 느낍니다. 나이 오십에 시작한 두 번째 결혼생활이었습니다.
기대어 추리물을 보다 잠들고 같이 쇼핑하고 걷고 사람들을 만나서 주말을 보내고, 이따금 놀러 오는 자식들과 손녀들이 새 남편을 친구처럼 좋아하는 모든 따스한 일상이 그간 생에 대해 바라던 전부였다는 생각이 들 때 — 남편 브라이언에게 알츠하이머가 찾아옵니다.
브라이언이 직장에서 쫓겨나고 기억과 지능을 조금씩 잃자 둘의 행복한 시간도 사라집니다. 수용할 수 없는 절망감은 우울과 분노를 일으킵니다.
“브라이언이 마지막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하러 나섰다가 삼 분 만에 돌아온다. 가는 길을 까먹었어. 그렇게 말하기 위해, 내게 가는 길을 물은 다음 다시 나가기 위해 용기를 냈을 거라는 사실에 난 무너져 내린다. 이 남자가? 하필 왜 이 남자가 생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인가?”
알츠하이머는 생물학적 생명을 갉아먹기도 하지만 인격까지 조금씩 바꿔버립니다. 원래 지켜오던 일상과 인간관계를 지키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긴 죽음이 이어지는 셈이지요. 죽는 순간에는 자신의 생애에서 사랑했던 모든 이들에 대한 기억이 지워진 —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인격이 누워있을지도 모릅니다.
브라이언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기억되어 왔던 ‘그 사람’으로 남기 위해, 빠른 죽음을 선택합니다. 불치의 병을 앓는 환자들을 위해 자살을 조력하는 스위스의 비영리 단체 디그니타스를 찾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브라이언은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기를 원하며 내가 그 과정을 도와줬으면 한다는 소망을 말한다. 우리는 울었고, 내가 동의했고, 그가 내게 말한다. 당신이 알아봐줘. 당신 그런 거 잘하잖아.”
이 책은 에이미 블룸이 남편 브라이언을 떠나보낸 과정을 눈에 보이듯 펼쳐서 그려줍니다. 작가가 남편의 ‘자살’을 돕고 낯선 스위스에서 혼자가 되어 그가 없는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 그 간에 겪는 감정의 격랑에 같이 휩쓸리다보면 어느새 이야기의 끝에 이르게 됩니다.
조력존엄사는 저의 오랜 관심사입니다. 저는 이것이 외로운 사람은 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자신의 생을 끝내는 것입니다. 또한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이제 떠나겠다는 사람의 자살을 도와야 하는 아이러니입니다. 이유도 설명도 없는 인간사의 수많은 고통 가운데서도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일면이 이 과정에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작년 몇 달간 읽었습니다. 일 때문에 매일 모든 활력을 소진하고 돌아온 늦은 밤, 자기 전에 다섯 장씩, 열 장씩 아껴 읽었습니다. 비극적 상황에서도 위트를 잃지 않는 작가를 보고 쓰게 웃고, 어떤 날은 쓰다 울었을 것 같은 문장들을 읽다가 눈가를 훔치고 잠들었습니다.
이런 이별을 해야 했던 사람들은 죽어서도 그 한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고통이 조금은 덜어질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기를 바라봅니다. ☀
보나쓰 : 주말쯤 좋은 것들을 보고 나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