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나쓰

그늘 속에 숨겨진 온기

<요나단의 목소리>를 보고 나서 쓰다

by 재원


멋진 작품을 만나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런 걸 내가 발견했다고, 정말 좋은 게 있는데 한번 보라고 권해주고 싶어집니다. 요즘 그런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요나단의 목소리>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근 몇 년 사이에 접한 이야기들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책장을 넘기는 무게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는 좋은 작품을 만나면 남은 분량을 가늠하며 아껴 읽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게 세 권을 마치게 됩니다.


본능적인 긴장감을 유발하는 자극적인 요소가 이 책에는 전혀 없습니다. ‘요나단의 목소리’라는 제목에서처럼 교회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의 우정과 사랑을 다룹니다. 아이들이 믿는 사랑이 어른들의 거짓말로 좌절되는 이야기이고, 신을 믿지 않는 친구의 눈으로 신의 사랑을 빙자하는 부모의 폭력을 바라보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20210618190059_redvaygv.jpg


누구나 이야기를 쓸 수 있지만, 삶의 본질을 포착하는 깊이 있는 문장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습니다. 작가 본인의 치열한 삶과 주변 세상에 대한 애정 어린 관찰을 통해서만 써지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그런 문장들은 비수처럼 꽂히고 망치처럼 내리칩니다. 관객으로 하여금 놓쳤던 삶의 순간들을 불현듯 발견하게 합니다.


최근에 <폭싹 속았수다>를 보는데 임상춘 작가가 쓴 시적인 독백이 여러 번 가슴에 남았습니다. 영상 매체의 글은 눈으로 담지 못하기에 그저 흘러가기 쉬운데도 선명한 인상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런 글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요나단의 목소리>의 정해나 작가의 글에서도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maxresdefault.jpg


그 애를 사랑하는 동안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마음을 평생 그리워한다.


이 책은 만화책입니다. 정해나 작가가 독립 플랫폼 딜리헙에 연재하며 많은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은 후, 2022년 책으로 나왔습니다.


저는 올해 초 작가님을 사석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저의 친한 친구가 잠시 한국에 머물며 지인들을 소소하게 모아 홈파티를 했습니다. 그곳에 작가님이 오셨지요. 수줍음이 많아 보이는 외형과 달리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 깊이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간단히 ‘만화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데, 옆의 친구가 그런 간단한 설명이 아쉽다는 듯 부연 설명을 했습니다. 이분이 <요나단의 목소리>로 부천만화대상 신인상을 수상했고, 그 작품은 연재 때부터 명작이라고 얘기를 들어왔다고요. 찾아보니 이 작품으로 만화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오늘의 우리 만화상’까지 수상한 창작자였습니다.


제가 이 작품을 알게 된 계기입니다.


sh.jpg


목회자 가정에서 자란 정해나 작가는 신의 사랑이 닿지 않는 어두운 그늘을 바라보며 <요나단의 목소리>를 구상했다고 합니다. 아마 작가 본인도 ‘교회 아이’로 살아낸 유년기가 쉽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경험으로부터 이런 따뜻한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신이 인간에게 내린 축복처럼 느껴집니다.


인생을 두 번 살 수 없기에 인간이 영화를 발명했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좀 더 생각해보면, 우리는 다른 사람으로 살 수 없기에 영화를 비롯한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를 통해, 모두가 반대하는 사랑을 속으로 삼키는 사람의 입장에 서고,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진 선한 친구들의 우정을 느껴보게 됩니다. 이 작품이 남긴 온기가 아직도 마음속에 머무는 듯합니다. ☀




보나쓰 : 주말쯤 좋은 것들을 보고 나서 씁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마지막 사랑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