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인 08
루이 다니엘 암스트롱 (1901 ~ 1971)
아폴로 우주 비행사 닐 올든 암스트롱과 자주 헷갈렸던 재즈 가수다. 내가 태어나기 1년 전, 그는 워커힐 개관식 공연차 내한했다. 내가 미국 출장 중 뉴올리언스에서 그가 연주했던 곳에서 맥주를 한잔했다. 큰 영광이었다.
“사라지는 것은 없어요. 당신이 여전히 재미있고, 멋진 일을 하고 있다면 말이죠. 숨을 쉬고 있는 한 계속 일을 하는 거죠, 그럼요.” 루이 다니엘 암스트롱은 미국 재즈 가수 겸 트럼펫 연주자다.
재즈의 본고장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나 연주를 하다가 시카고, 뉴욕, LA를 걸치며 자신의 명성을 쌓아갔다. 원래는 트럼펫의 연주자로 활동했는데, 자신이 개발한 Scat 창법이 인기를 얻자 노래로 전향했다. 마치, 마티스가 채색화에서 색종이 오리기(컷 아웃)로 바꾼 것처럼 말이다.
그가 트럼펫 연주 중에 트럼펫을 우연히 떨어뜨렸다. 이것을 집는 동안 의미 없이 입으로 중얼중얼 음을 냈는데, 이 스캣 창법이 대박을 쳤던 것이다.
큰 입을 가지고 태어난 암스트롱은 신문배달부터 안 해본 것이 없다. 11살 때 학교를 그만두고, 친구들과 길거리에서 4중창도 했다. 13살 때 친척 집에서 몰래 권총을 훔쳐 들고 나와, 한 해가 가는 것을 자축해 허공에 총을 쏜 것 때문에 소년원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음악 지도교사의 가르침으로 밴드 리더가 되었다. 그는 트럼펫에 재능이 있음을 알고, 뉴올리언스에서 연주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2008년 미국 뉴올리언스 출장 중, 주재원들과 저녁 후 한 재즈클럽에 갔다. 주재원들은 그 클럽이 암스트롱이 직접 연주했던 곳이라고 했다.
재즈는 대공황, 금주령 등으로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했지만, 그는 뛰어난 연주 실력과 네트워킹으로 최고 수준의 제즈 활동을 지속했다. 월드 투어를 통해 재즈를 전 세계에 알린 인물도 암스트롱이다. 그는 1963년 워커힐 호텔 개관 음악회 때 우리나라에도 왔다.
죽기 몇 년 전 불렀던 “What a wonderful world.”는 어떤 가수가 불러도, 그의 노래 맛을 내지 못하는 불후의 명곡이다. 오케스트라는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연주하는 것에 비해, 재즈는 서로 눈빛을 맞추며 즉흥연주가 가능한 음악 장르다.
1987년 미국 의회에서는 재즈를 미국의 국보로 선언했다. 흑인의 비애가 담긴 이 음악이 미국의 정체성을 대표하고, 세계의 소울이 된 것이다. 이 과정에 암스트롱의 기여도 컸다고 본다.
나는 뉴올리언스 이외에 IR출장 때 시카고의 재즈 공연장도 가봤다.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고, 장르도 다르다. 미국의 재즈는 그렇게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