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인 12
엄정행 (1943 ~ )
이탈리아에만 오페라와 성악가들이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 토종 가곡과 클래식 가수들도 있다. 엄정행은 클래식 음악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편안하게 대중에게 소개해준 사람이다. 최근 훌쩍 나이가 든 사진을 보고 많이 놀랐다.
1970년대는 나훈아, 남진 열풍으로 우리나라 대중가요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이때 가곡의 대중화를 이끈 사람이, 바로 테너 엄정행이다. 그는 1970~80년대 전성기를 구가하며 박인수, 신영조와 함께 3대 원조 테너로 각광받았다.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경희대 음대에서 석사까지 마쳤다. 1968년 명동 국립예술극장 독창회를 시작으로, 성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4년 그를 대중에게 알리는 기회를 가졌다. 가곡 목련화를 경희대 25주년 행사에서, 경희대 음대 강사였던 그가 불렀다.
목련화는 경희대 설립자인 조영식 박사가 작시하고, 경희대 음대학장인 김동진이 작곡했다. 무대에 오르기까지 무려 60번이나 고쳐 부르게 했던, 작곡가 김동진의 당시 하드 트레이닝도 유명했던 일화다.
목련화는 우리나라 가곡이 국민 속에 파고들었던 노래였다. 이 노래는 엄정행이 처음 불렀고, 가장 잘 부르는 성악가였다. 목련화가 들어간 레코드는, 당시 20만장 이상 팔려 공전의 히트를 쳤다.
그는 고수머리에 다부진 몸을 가졌고, 나는 이 성악가의 노래하는 장면을 TV에서 자주 봤다. 우리 집에는 그의 LP판과 카세트테이프도 있었다. 막힘이 없는 고음처리와 음색은, 나에게 가곡의 신세계를 열어 주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알리는 꽃나무가 목련이다. 이 노래는 청년에게 희망과 꿈, 패기를 심어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엄정행은 이 노래를 멋지게 불러 경희대 정식교수가 되었고, 34년간 같은 대학에서 후배를 양성했다. 그는 해외에서 음악을 배운 적이 없는 토종 우리나라 성악가다.
2022년 그의 고향 양산에 음악인으로서 평생 모은 음반과 소장품을 기부해, 엄정행 뮤지엄이 만들어졌다. 정기 음악회도 이곳에서 개최된다고 한다. 1970~80년대 국민 성악가이며, 1979~88년에는 MBC FM의 DJ로 클래식을 알린 가곡의 전도사였다.
그는 지금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악가들을 키우고 있다. 전성기 때와는 전혀 다른 그의 사진모습을 신문에서 보고, 나는 세월의 무상함을 살짝 느꼈다. 다음에 양산에 갈 기회가 있으면, 꼭 엄정행 뮤지엄에 들러 보고 싶다. 힘차고 아름다웠던 그의 목소리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