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인 08
최동원 (1958 ~ 2011)
부산 사나이 최동원은 무쇠팔, 철완의 투수였다. 철완은 만화의 주인공 아톰이나, 마징거 제트에만 붙여졌던 닉네임이었다. 그는 이제 없지만, 부산 사직구장의 동상이 철완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했는데, 최동원은 그해 세계 야구선수권대회에 선발되어 1983년 프로야구에 첫 등판했다. 아마 시절에 몸을 혹사했기 때문인지, 데뷔 첫해 9승 16패의 흡족하지 못한 성적을 거뒀다.
그는 매일 4백개 이상의 투구를 하며, 다음 시즌을 맞이했다. 1984년 한국 시리즈에서, 롯데는 삼성을 상대로 피를 말리는 7연전을 하게 되었다. 롯데의 4승은 최동원이 모두 거둔 것이다.
마지막 7차전에 투수선발이 되었을 때, 그는 아버지에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렇게 힘든 몸 컨디션에서 7차전에 나섰고, 롯데의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무쇠 팔, 철완 최동원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굵고 짧게, 부산 사나이다운 모습이었다.
그의 용트림 투구는 모두가 즐거워했다. 로진 백, 양말, 금테 안경, 모자를 차례대로 만지며 공을 뿌리는 투구 루틴도 사람들이 좋아했다. 그보다 조금 뒤에 프로야구에 들어왔던 선동열은 이런 말을 남겼다. “최동원 같은 선배 선수가 있었기에, 나는 더 노력했고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
그는 롯데 구단과의 석연치 않은 갈등, 프로야구 선수협 구성을 위해 뛰어다닌 활동으로 각 구단으로부터 멀어졌다. 결국,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마운드를 떠나야 했다. 은퇴 이후 방송, 프로야구 해설가, 한화 이글스 코치 등을 했지만 롯데는 끝내 그를 불러주지 않았다.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야구복을 입은 사진은, 2011년 경남고와 선린상고 레전드 게임에서 경남고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었다. 이날 그는 공을 던지지 못했고, 얼마 뒤 대장암으로 죽었다.
롯데는 그의 등번호 11번을 최초로 영구결번 처리했다. 2013년 무쇠 팔 최동원 동상이 부산 사직야구장에 들어섰다. 꿈에도 그리던 롯데 감독으로 금의환향한 것이다. 그는 프로야구 통산 103승, 방어율 2.46의 기록을 남겼다. 전성기 155km 강속구와 커브볼이 주 무기였다.
2014년부터 최동원상이 KBO 최고투수를 대상으로 BNK부산은행에서 매년 11월 11일(등번호 숫자)에 시상된다. ‘최동원 = 롯데’ 공식은 아직 살아있다. 길지 않았던 야구 인생이었지만, 그는 짧고 굵게 살다 간 야구인으로 기억된다.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역투하는 모습의 황금빛 동상을 만나고 싶다. 나도 부산 사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