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사 - 백남준

미술가 12

by 구포국수

백남준 (1932 ~ 2006)

평생을 이국을 떠다니며 작품을 남기다가, 토끼가 절구질하는 달나라로 갔다. 그의 정신세계와 작품세계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까? 맨해튼에서 쓸쓸히 바이올린을 끌고 다니던 그는, 일찌감치 유튜브의 시대를 내다봤다.




백남준을 어떤 예술가라고 말해야 할지를 생각하면서, 여러 자료를 찾다가 발견한 문장을 소개한다. “그는 음악과 비디오 나아가 퍼포먼스를 결합한 행위 예술가이자, 비디오 아트 예술의 선구자.” 의미가 제대로 잘 전달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표현이 마음에 든다. 그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쉽지 않은 예술가다.


백남준은 우리나라 재벌의 최상류 집안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그는 가업을 이어받을 생각은 전혀 없었고,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음악세계에 빠져 있었다.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세계관과 감성, 상상력을 가졌다. 오히려, 그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고 한다. 그가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6.25 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에 홍콩으로 이주했다. 1950년에는 일본, 1957년에는 독일, 1964년에는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젊은 시절 조국을 떠나,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다가 미국에서 죽었다.


그는 독일에서 음악과 전위예술에 빠져 살았다. 당시 독일에서는 플럭시스 운동이라고 해서, 전통예술에 대한 파괴 활동이 유행했다. 그는 아시아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터로 소개되며, 전위예술의 선봉에 섰다. 미국으로 건너가 비디오 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를 개척했다.


텔레비전을 예술의 매체로 생각하며, 다양한 창작활동을 했다. 초기 작품 ‘TV 부처’는 부처상이 CCTV로 촬영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텔레비전 화면으로 본다는 콘셉트로 대히트를 쳤다. 텔레비전이 미국에 당시 90% 정도 보급된 시절이었는데, 그의 텔레비전 활용은 앞을 내다본 것이었다.


그는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때려 부수거나, 넥타이를 자르는 행위예술, 누드인 첼리스트 샬롯 무어와 같이 전위예술 공연도 했다.


당시 미국 미술계에서는 제대로 된 예술도 못하고, 기행을 일삼는 B급 예술가로 치부했다. 당시 미국에서 예술가의 행위 자체와 관람객이 느끼는 경험 위주의 공연은 비주류였고, 태동기였기 때문에 당연했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TV와 과학기술을 작품세계에 도입했다. 내가 그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과천 국립 현대미술관 1층에 위치해 있는 CRT 1,000여 개로 구성된 ‘다다익선’이다. 이 작품은 워낙 외관과 규모가 압도적이고, 그 자체만으로도 작품이다.


수많은 모니터 안에는 다양한 영상 콘텐츠들이 무한 반복되고 있다. 이 작품은 국립 현대미술관 개관 및 88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설치된 작품이다. 수년간 모니터 고장 때문에 가동이 중단되다가, 대대적인 보수를 거쳐 2022년부터 재가동되고 있다.


리움 미술관이 개관되면서, 그곳에 설치된 그의 작품들을 보며 좀 더 친숙한 예술가로 느끼게 되었다. 그가 고국을 떠난 지 34년 만인, 1984년 한국에 들어왔을 때 한 기자가 물었다. “왜 한국을 놔두고, 외국무대에서만 활동하는가?”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문화도 경제처럼 수입보다는 수출이 필요해요. 나는 한국문화를 수출하기 위해서, 세상을 떠도는 문화 상인입니다.”


이어령은 백남준이 한국에서 예술을 했다면, 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장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일찍 한국을 떠난 덕분에, 한국인의 원형적 심성과 내면을 가장 잘 보존한 사람이 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하여 그가 만든 작품 앞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기억과, 한국의 문화적 유전자를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1974년 그는 ‘전자 초고속도로’라는 작품 인터뷰에서 인터넷, 유튜브, SNS 그리고 OTT의 출현가지 예측했다고 한다. 음악적 감성, 행위예술 태동기에 플럭시스 운동참여, 비디오 아트 개척, 미래 예견 등은 그가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시대의 큰 변화시점에 주저하지 않고 도전했고, 예술혼을 불살랐기에 남다른 업적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주요 작품은 국내는 물론,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2022년 탄생 90주년을 기념해, 국내 미술계가 특별전을 열었다고 한다. 2023년에는 이 거장을 조망한 다큐 영화 ‘백남준 - 달은 가장 오래된 TV’가 한국계 어맨다 킴에 의해 발표되었다.


그녀는 한국을 떠나 세계 예술계에서 큰 족적을 남긴 아티스트를 기념하는, 영화작품이 한 편도 없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녀는 5년의 준비과정을 거쳐, 이 작품을 만들었다. 넷플릭스에서 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데, 백남준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 최고 부잣집 아들이 세계를 이방인처럼 떠돌며, 새로운 예술사조를 두루 접했다. 그의 작품들이 전 세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지금 보더라도 배불뚝이 CRT가 평면 TV보다 훨씬 앤틱 하고, 예술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배불뚝이 TV가, 그의 정신세계를 가장 잘 표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건이 된다면 그의 작품들이 있는 국내외 미술관 투어를 하면서, 깊이 있게 그의 작품을 감상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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