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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포국수 Sep 13. 2024

내만사 - 펠레

스포츠인 13

펠레 (1940 ~ 2022)

비교불가의 선수였다. 브라질은 그를 국보로 지정해, 국외반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월드컵 축구의 흥행은 그의 활약에 큰 영향을 받았다. 펠레 자신도 왜 펠레로 불리는 몰랐지만, 지금도 축구하면 역시 펠레!




“베토벤이 음악을 위해 태어났고, 미켈란젤로가 미술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나는 축구를 위해 태어났다.” 축구 황제인 펠레는, 자신이 왜 펠레로 불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무튼 별명이 본명보다 유명한 그의 정식 브랜드가 되었다.


브라질 준프로 선수였던 아버지에 의해, 그는 어린 시절부터 축구선수로 만들어졌다. 173cm의 작은 키였지만, 빠르게 성장했다. 브라질은 월드컵 결승리그에서 우루과이와 비기기만 해도 우승하는데, 역전패 당해 우승컵을 놓쳤다.


당시 10살의 어린 펠레는 라디오 중계를 듣다가,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고 아버지에게 맹세했다. 아버지가 뛰던 구단의 유소년팀에서 뛰기 시작하며, 17살의 나이로 월드컵에 첫 출전해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그는 FIFA 월드컵 3회 우승을 차지한 유일한 선수이며,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와 함께 FIFA 세계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브라질 정부는 유럽구단에서의 영입을 막기 위해, 그를 국외반출 불가의 국보로 지정했다. 브라질 정부의 조치로, 그는 브라질 산투스 FC에서만 선수생활을 평생 했다.


미국 국무부장관 키신저가 펠레와 브라질 정부를 끈질기게 설득해, 그는 미국 축구선수로 3년간 뛰었다. 브라질을 벗어나 뛰었던 유일한 경력이다. 참고로, 키신저는 독일계 이민자 출신이어서 축구광이었다. FIFA 공식기록상 그는 1,366경기에서 1,281골, 국가대표로 92경기에 출전해 77골을 넣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그가 마지막 지켜본 월드컵이었다. 이때 브라질은 8강전에서, 복병 크로아티아에게 승부차기 패배를 당했다. 그해 연말 수년간의 암 투병 끝에 영면했다. 2022년 월드컵 우승 아르헨티나의 메시는 ‘평안히 쉬십시오.’라고 애도의 글을 올렸다. 그는 은퇴 후 축구 지도자와 체육부 장관까지 역임했다. 그가 남긴 기록 중에는,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들이 아직 많다.


올해 아시안컵 경기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이 감독의 전술문제, 선수단의 하극상 등 내부 이슈로 인해 한국 축구가 엉망이다. 펠레의 마지막 메시지를 한국 축구선수들이 가슴에 깊이 새겼으면 한다. “사랑하고 사랑하라, 영원히.” 펠레는 내가 어린 시절에 축구 = 펠레 공식을 심어줬던 위대한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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