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인 12
나디아 코마네치 (1961 ~ )
체조요정이 험난한 시기를 거쳐, 역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체조경기 역사상 첫 만점 연기의 그녀가, 앞으로 인생 역시 만점으로 살아가기 바란다. 눈물이 날 정도로 고생했고, 그녀에게 상처가 너무 많았다.
코마네치는 루마니아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운동이라도 하면 일찍 잘 것을 생각해, 부모는 5살의 아이를 체조 교실에 보냈다. 1969년 8살에 루마니아 첫 대회에서, 13위의 성적을 받았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 인간의 몸을 빌려 입고, 요정 1명이 내려왔다. 그 요정은 루마니아의 14세 소녀 나디아 코마네치. 2단 평행봉과 평균대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총 일곱 번의 10점 만점 연기를 선보였다. 그녀는 2개 종목과 개인종합 우승으로 3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52cm, 39kg의 자그마한 요정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첫 번째 10점 만점 경기에서 점수판에는 1.0로 표시되었다. 루마니아 코치가 항의하려던 순간, 심판진이 일어나 10점이라고 말했다. 점수 표시판에는 9.99 까지만 표시 가능했는데, 그녀는 점수판이 표현할 수 없는 퍼펙트 연기를 했던 것이다. 나도 이때 경기를 TV에서 보면서 다른 선수와 차원이 달랐던 선수로 기억하고 있다.
14살 소녀는 올림픽 후 목표를 상실하고, 폭식과 루마니아의 정치선전 도구로 활용되면서 체조에서 멀어졌다. 힘겹게 재기에 성공해,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2개의 금메달을 땄다. 자신의 체조 스승이 미국으로 망명했고, 그녀 역시 당국의 엄중한 감시를 받았다.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실각 직전에, 그녀는 죽음을 무릅쓰고 미국에 망명했다. 이때 도움을 준 사람은 그녀를 돈벌이에 이용했고, 스캔들 소문으로 미국인들은 그녀를 싸늘하게 대했다. 그녀가 서커스 같은 체조와 속옷 모델을 하며 미국인들에게 냉대받을 때, 비트 코너라는 미국 체조선수가 자신의 사업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1996년 차우셰스쿠가 버티고 있던 루마니아 왕궁에서, 두 사람은 결혼했다. 루마니아는 그녀를 위해, 그날을 국경일로 지정했다. 자신의 열정과 재능을 이용당하기만 했던 고단했던 삶이, 이 결혼으로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그녀는 자신이 주도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다.
완벽한 착지 기술은 TV나 다른 영상으로 가끔 봤지만, 그녀가 이처럼 굴곡된 삶을 살았던 것은 잘 몰랐다. 그녀는 현재 자선 사업가, 체조 관련 각종 자문활동을 하고 있다. 남편과 함께 체조 아카데미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