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02
자하 하디드 (1950 ~ 2016)
DDP 건축물이 우리나라에 들어섰다. 그녀의 기념비적인 이 건축물을, 우리나라 건축 유망주가 지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기념비적인 건축물은 100년 이상을 간다. 하디드가 남긴 DDP도 서울의 랜드마크 역할을 할 것이다.
“당신의 건축에 왜 직선이 없나요?”라는 질문에 자하 하디드는 “삶은 격자무늬 안에서 만들어지지 않아요. 자연을 사랑해 보시면, 이해가 될 겁니다. 어느 곳 하나 평평하거나 균일한가요?” 여성 최초로 프리츠커상(건축계의 노벨상)을 수상한 그녀의 말이다.
그녀는 이라크 바그다드 출생이다 보니, 여자의 재능이나 교육에 대해 모두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 적극 지원했다. 어릴 때부터 모래언덕을 보며 자란 그녀는, 바람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생명력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의 건축물은 곡선 위주로 되었던 것 같다.
내가 그녀를 알게 된 것은 바로 DDP(동대문 디자인플라자) 건설공사 때문이다. 2010년 서울시 DDP 국제공모전에서 그녀의 작품이 당선되어, 2014년까지 건축되었다. 콘크리트와 알루미늄 철판 4만여 장을 붙여 만든, 우주선같이 생긴 건축물이 서울에 만들어졌다.
나는 그룹에서 당시 건축공사를 진행하던 삼성물산을 운영 담당하고 있었다. 건축가의 독창적인 설계가 반영된 PJT여서, 손익과 준공일정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는 몇 번 이 PJT의 진행상황을 체크했다. 4만장의 각기 다른 모양의 패널을 공급할 수 있는 업체를 찾기 위해 전 세계를 뒤졌는데, 겨우 한 곳을 찾았다고 했다. 이 건축가의 요구사항을 실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디드는 영국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당대 최고의 건축가 짐 콜린스를 만나 미국으로 옮겨 같이 일했다. 1980년 그녀는 홀로서기 위해, 런던에 작은 건축사무소를 열었다. 아랍계 여성이라는 딱지는, 남성 위주의 건축계에서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는 족쇄가 되었다.
조약돌, 구름, 물결, 우주선의 건축물을 그린 설계도에 대해 그녀의 예술성은 인정받았다. 그러나, 실제 건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며, ‘Paper Architecture’라는 별명을 얻었다.
독립 건축사무소를 열고 10년이 넘도록 자신 이름의 건물을 갖지 못하다가, 1994년 비스트 소방서라는 건축물을 시작으로 그녀는 두각을 나타냈다. 서울의 DDP도 처음에는 주위에서 흉물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이제는 매년 10백만명이 방문하는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그녀가 세상에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많은 고난을 받았듯이, DDP도 불시착 우주선이 아니라 이제 거장의 숨결이 느껴지는 건축물이다.
가족과 이곳에 몇 번 전시회 관람 때문에 방문했다. 내가 건설공사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 모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지구상에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몇 명 밖에 모르는 일급비밀이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