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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만사 -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인 04

by 구포국수

스티븐 스필버그 (1946 ~ )

편한 야구모자를 쓰고, 대단한 영화배우들과 어깨동무를 하면 사진을 찍는 영화감독이다. 스필버그는 영화감독의 대명사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정년 없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의 능력이 부럽기만 하다.




스필버그 감독은 현존하는 영화감독 중, 가장 많은 명작과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감독이다. 죠스, ET, 인디아나 존스, 쉰들러 리스트, 주라기 공원, 라이언 일병 구하기, A.I. 등 수많은 작품들을 연출하고, 제작한 할리우드 영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의 명성을 전 세계에 알린 작품은, 1975년작 식인상어 영화 죠스였다.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아바타 시리즈물에 묻지 마 제작비를 투입하는데 비해서, 그는 예산 범위 내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그가 죠스를 찍을 때 상어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엄청난 제작비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때 그는 스릴러물의 대가인 알베르토 히치콕 감독은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다. 그는 음악과 간단한 상어 장식만으로 극적인 흥미는 유지한 채, 저렴하게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만든 영화 죠스가 할리우드의 첫 블록버스터 작품이 되었다.


내가 한 명의 영화감독 작품을 가장 많이 본 것은, 단연 스필버그이다. 최근 할리우드에는 제임스 카메론, 크리스토퍼 놀런 등 빼어난 감독들이 있다. 이들의 작품 수, 경력은 스필버그와 비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무려 50년 동안 영화감독,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주로 판타지, 공상과학, 모험의 장르를 많이 다루었다. 상업적인 성공은 물론 비평가적 성공도 모두 거둔, 몇 안 되는 감독이다. 그는 1993년 쉰들러 리스트와 1998년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단순히 흥행영화감독이 아님을 입증했다.


타임지는 스필버그를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인물 100인에 올렸다. 1980년대 대학생활을 했던 나는, 스필버그의 작품을 영화관에서 자주 보았다. 당시 서울 곳곳에는 2본동시 상영관이 있어, 저렴하게 그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2000년대까지만 해도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그의 작품을 고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 또래에게, 스필버그는 인기 있었던 영화감독이었다.


아들이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닐 때, 아내가 가끔 스필버그처럼 아들을 키우고 싶다고 했다. 그때 내가 귀 담아 들었다면, 아들이 나처럼 회사원의 길을 걷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옛날 우리나라에서 국내영화가 자리잡지 못할 때, 홍콩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가 판을 쳤다. 스크린 쿼터제 이슈도 나왔다.


지금은 K-무비, 천만 돌파 국산영화, 박찬욱과 봉준호 감독 등 한국 영화계는 옛날과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그 옛날의 홍콩 영화는 이제 우리 곁에서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박세리 이후 LPGA 꿈나무들이 많이 자랐고, 김연아 이후 피겨 스케이팅 유망주들이 대거 출현했다. 지난 50년간 스필버그의 작품들이, 우리나라 영화감독과 배우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본다. 스필버그도 50년 전에 히치콕을 떠올렸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면, 관점과 상상력이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영화인들도 스필버그의 어깨 위에서, 작품성과 흥행성을 한껏 올리면 좋겠다. Thank you, 스필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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