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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만사 - 마이크 타이슨

스포츠인 03

by 구포국수

마이크 타이슨 (1966 ~ )

핵 주먹을 넘어 핵 이빨의 공포스러운 일화도 있다. 타이슨과 식사나 술을 같이 하는 사람들은 어떤 심정일까? 아직도 현역 선수 못지않은 몸을 만들어 가며, 권투 경기장에 등장한다. 그에게 나이는 중요하지 않는 듯하다. 멘털 잡으시고!




핵 주먹 마이크 타이슨은 1980~90년대 세계 복싱계의 아이콘이었다. 그는 2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홀어머니 밑에서 양육되었다. 열 살이 되기 전에는 소심하고, 여자 아이들에게 맞을 정도였다고 한다. 동네 불량배가 자신의 비둘기 목을 부러뜨리고 나자, 그는 핵 주먹을 가동했다. 이후 자신이 불량배가 되어 경찰에 수십 차례 체포되다가, 13살에는 결국 소년원에 갔다.


그때 소년원에서 복싱을 가르치던 코치가, 유명한 복싱 트레이너 커스 다마토에게 이 아이를 한번 봐 달라고 했다. 피투성이가 되어도 링을 내려오지 않는 타이슨을 보고, 커스 다마토는 챔피언이 될 아이라고 단번에 알아봤다. 소년원 출소 후 타이슨의 어머니와 상의해, 자신의 집에서 타이슨과 살면서 권투와 훈육하기 시작했다. 당시 야생마 타이슨을 가르치고 나무랄 수 있던 사람은, 커스 다마토뿐이었다.


1985년 타이슨은 19살에 프로 선수로 데뷔했다. 1986년 WBC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고 WBA, IBF 통합 챔피언까지 올랐다. 프로 데뷔시절에 자신의 스승이 죽고, 그는 자신의 멘토가 사라져 방황했다. 사기꾼과 한탕주의자들이 주위에서, 그를 나쁜 길로 빠져들게 했다. 복싱 팬들은 다마토가 몇 년만 더 살았어도, 복싱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1990년 그는 KO패를 당하고, 타이틀을 잃었다. 1991년 강간 사건으로 투옥되어, 6년형 중 3년을 감옥에서 지냈다. 이후 이혼, 재산 탕진 생활을 이어 나갔다. 1996년에 링에 다시 나왔지만, 성과 없이 1999년에 은퇴했다. 그 이후로 논 타이틀전을 간혹 했지만, 그저 먹고살기 위한 게임일 뿐이었다.


그의 프로 공식전적은 50승(44KO) 6패. 나는 그의 전성기 시절의 핵 주먹을 익히 알고 있다. 그의 패배와 불우한 소식을 들었을 때마다, 그를 제대로 훈육해 줄 멘토가 없다는 것이 늘 안타까웠다.


그는 나보다 2살 어리다. 그는 탁월한 기량과 압도적인 펀치를 가졌던, 레전드 권투 선수로 기억된다. 그의 야성은 언제쯤 제 자리를 찾을까? 금년 7월, 자신보다 31살이나 젊은 복서와 경기를 하게 된다고 한다. Are you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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