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사 - 오드리 헵번

영화인 01

by 구포국수

오드리 헵번 (1929 ~ 1993)

로마의 휴일은 오직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영화인줄 알았다. 정작 그녀는 첫 캐스팅에 실패하고, 대안으로 발탁된 신인 배우였다. 유니세프 자선사업에 적극적이었다. 지방시의 도움으로, 스위스에서 아름다웠던 생을 마감했다.




오드리 헵번은 벨기에 출생이며, 영국 국적으로 미국에서 배우활동을 했던 할리우드 배우이다. 1950~60년대 세계문화 클래식 시대의 아이콘으로 기억되는 여배우다.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 뮤지컬에서도 뛰어났던 실력 파 연기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어릴 적 배웠던 발레로 다져진 몸매, 매력적인 눈으로 세기의 연인으로 불렸다.


대학생 때 KBS 명화극장 덕분에,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그녀를 알게 되었다. 이 작품은 그레고리 펙과 같이 주연을 했던 그녀의 데뷔작이다. 첫 작품에서 그녀는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거머쥐고,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때 그녀의 나이 24살.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당시 여주인공의 캐스팅에 실패하고, 연극 무대에 한번 출연했던 그녀를 오디션을 거쳐 과감히 발탁했다. 그녀가 그레고리 펙과 로마의 유명 관광지를 유쾌하게 다니던 영화 속 장면들이, 아직도 내 눈에 선하다.


영화배우로 그녀는 안주하지 않고 연극, 뮤지컬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그녀는 에미상(TV), 그래미상(음반), 아카데미상(영화), 토니상(연극)을 모두 수상한 미국 대중문화의 그랜드 슬램 수상자가 되었다. 평생 20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1989년 스필버그의 ‘영혼은 그대 곁에’를 끝으로 은퇴했다.


두 번의 결혼과 두 아들을 얻었는데, 그녀가 이루었던 명성에 비해서는 불운했던 사생활을 가졌다. 아이들을 양육할 때 그녀는 검소했고, 밤새 동화책을 읽어주었다고 한다. 그녀의 유언이라고 시중에 알려진 시는, 샘 레벤슨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그녀가 숨을 거두기 전 크리스마스이브에, 자식들에게 직접 들려주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혹적인 입술을 가지고 싶을 때 사람들의 선한 점을 보아라.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싶다면, 그대의 음식을 배고픈 자와 나누어라.

예쁜 머리 결을 가지고 싶다면 하루에 한 번, 어린이가 그 손가락으로 그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가지고 싶다면, 결코 혼자 걸어가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 그대의 손을 이용하라.

나이가 더 들어가면, 그대는 손이 두 개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하나는 자신을 돕기 위해, 다른 한 손은 다른 이를 돕는 손임을 알게 되리라.”


영화계 은퇴 이후 그녀는 유니세프 대사로서 인권운동, 자선사업 활동 그리고 제3세계 오지마을에서 아이들을 도왔다. 1992년 암 투병 중에 소말리아에 봉사활동을 가기도 했다.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전쟁 난민으로서 네덜란드에서 쓰레기까지 뒤져가며 먹었다. 연합군과 유니세프가 지원해 준 연유를 허겁지겁 먹다가, 탈이 났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전쟁난민 경험이, 자선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술회했다. 뉴욕 유니세프 본사 앞에는 오드리 헵번의 봉사, 희생정신을 기리는 ‘The spirit of Audrey’라는 동상이 있다고 한다.


햅번 스타일을 만들고, 시대의 아이콘이 된 여배우는 이제 세상에 없다. 그녀가 남긴 영화와 그녀의 인생 이야기는, 아직 팬들을 위로해 준다. 1970년대부터 미국 대중문화계는 현대로 넘어갔다. 그녀는 1960년대 비틀스와 함께, 클래식 시대의 마지막 아이콘이었다. 영화 로마의 휴일을 보고 난 그날 이후, 나의 이상형은 단연 오드리 헵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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