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저모
신기했던 몇 가지 – 이모저모
누구나 꿈을 꾼다. 꿈을 이루기 위해 한 계단 올라가서 세상을 보면, 다른 느낌이 든다. 그러나 꿈을 달성하기 위해 달려가다 보면, 좌절할 때도 있다.
MZ세대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호기심과 재미를 가져 보기 바란다. 복잡한 상황을 낯설게 보면, 길을 발견할 수 있다.
호기심은 마스터리(Mastery)의 출발점이다. 어린아이 경이와 건이는 호기심이 많았고, 세상을 늘 해맑게 바라봤다.
사네 기네스 대회
일반적으로 사내 행사하면 등산, 체육 대회 등이 연상된다. 물산에는 ‘사내 기네스 대회’라는 것이 있었다. 이 대회는 굉장히 특이했다. 메인 대회는 일 년에 한 번, 한강 체육공원에서 열렸다. 종목에 따라, 경기가 따로 열리기도 했다.
신입사원이 부서를 대표해 참여해야 한다는 선배들의 권유(압력)에, 나는 2개 종목에 도전장을 냈다. ‘계단 빨리 오르기’와 ‘맥주 빨리 마시기’였다. 계단 빨리 오르기는 삼성본관 1층에서 27층까지, 가장 빨리 오르는 사람이 우승하는 경기였다. 한 명씩 시차를 두고 1층에서 출발했다. 나는 운동화를 신고, 저층부터 잽싸게 뛰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발이 무거워지더니, 나중에는 계단 손잡이에 몸을 의지한 채 기어서 올라갔다.
각층 계단마다 직원들이 나와서, 선수들을 응원했다. 우리 부서 선배들도 나를 응원해 주었지만,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이를 악물고 27층에 도착하고 나서, 그냥 나뒹굴었다. 경기가 모두 종료되고, 내가 2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빨리 올라가면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영리한 준비와 아울러 전략도 필요했던 종목이었다.
한강 체육공원에서 전 직원이 모이는 날, 특색 있는 경기들이 많이 열렸다. 전표에 도장 빨리 찍기 종목에서, 회계과 직원들은 신기에 가까운 실력을 뽐냈다. 계산 빨리 하기에는 주판, 암산, 전자계산기까지 등장해 열기를 뿜었다. 내 기억에 암산으로 도전하셨던 분이 우승했다.
맥주 빨리 마시기 종목은, 500CC 맥주 두 잔을 마시는 시간으로 승부를 가렸다. 예선기록이 좋았던 사람들을 추려서 마지막 승부를 펼쳤다. 나는 2위를 차지했고, 총무 과장님이 우승했다. 젊은 혈기에 빨리 마신다고 했지만, 그분은 맥주를 그냥 목에 부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았다.
최선을 다했지만, 나는 두 개 종목에서 각각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한강에서 열렸던 이 대회는 참신했다. 그때 우리는 모두 웃었고, 즐거웠다. 회사가 참 재미있는 곳이었다. 매일 야근하고, 일 못한다고 선배들에게 혼났는데 말이다.
필경사(筆耕士)
우리 부서는 회사 경영실적을 집계하고, 영업부서의 업적평가도 담당했다. 반기 및 년간 영업실적에 따라 사업부, 팀, 개인에 대한 업적우수 시상을 했다. 당시는 도트 프린터였고, 프린터를 이용해서 상장을 인쇄할 수 없었다. 나는 전체 상장 문안들을 출력해, 회사 인근의 한 가게를 찾아갔다. 붓글씨로 상장을 대필해 주는 곳이었다. 그 사람의 직업은 필경사였다.
상장의 개수도 많고, 한자를 많이 사용하던 시절이라 만드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늦게까지 필경사와 몇 번을 검증했고, 나는 상장의 먹이 잘 마르도록 부채질까지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당시 수상자들은 몰랐을 것이다. 필경사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서울 시청 앞에서 가게를 유지할 만큼, 필경사도 경쟁력 있던 직업이었다. 레이저 프린터로 상장을 출력할 수 있는 지금에 비하면, 원단 아날로그였다.
밥 장부
회사 근처 단골가게에 부서별로 장부를 두고 이용했다. 한 달에 한 번씩 가게 주인들은 사무실에 와서 장부를 정리하고, 회계과에서 돈을 받아갔다. 주인들은 직원들과 눈 인사하며 돌아갔다.
간혹, 묘령의 아주머니가 과장님 자리에 왔다. 포스가 남 달랐던 분이었는데, 선배가 ‘강남~’이라고 친절하게 해석해 주었다. 회사 근처 맥주집은 야근 후 퇴근하면서, 선배들과 저녁에 맥주를 마시던 곳이었다. 기분 좋게 먹고, 선배가 장부에 사인만 하면 끝!
재부재등(在/不在/燈)
옛날 사무실에는 재부재등이란 것이 있었다. 이것은 임원좌석 정면 벽 상단에 설치되었다. 약속된 순서대로 해당 임원이 사무실에 있는지, 회의 중인지, 외출 중인지를 표시였다. 해당 임원이 근무 중이면 녹색 불, 회의 중이면 빨간 불, 외출 상태이면 불이 꺼지는 방식이었다. 임직원들은 주요 임원들의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재부재등을 꼭 확인했다.
재부재등 관련, 내가 대리시절에 겼었던 에피소드 한 가지를 소개하겠다. 임원은 CEO가 퇴근한 뒤, 일반적으로 퇴근했다. 하루는 경리담당 임원이, 늦은 시간까지 자리에 계신 것이 멀리서 보였다. 내 담당 임원도 아니고, 너무 늦은 시간에 불쑥 인사를 드리기도 뭐해서 그냥 퇴근했다.
며칠쯤 지나서, 직원들 사이에 들리는 이야기는 이랬다. 그날 CEO 비서가 퇴근할 때, 재부재등을 꺼지 않고 퇴근했다. 그래서 경리담당 임원 및 몇몇 임원들이 CEO가 사무실에 계신 줄 알고,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CEO 비서가 큰 실수를 한 것이다.
재부재등은 한참 뒤에 실물이 없어졌고, 사내 방송을 하는 LCD TV 화면에서 전 임원의 재부재를 표시했다. 1990년대 재부재등은, 이제 역사 속 유물로 사라졌다.
귀향 버스
명절 때는 귀향 버스가 운영되었다. 지방에 부모님이 계시는 직원들은, 이 버스를 이용했다. 당시는 비행기도 일반적이지 않았고, KTX도 없던 시절이다. 고속도로 사정도 좋지 않아, 자동차로 서울~부산은 24시간이 족히 걸렸다.
인사팀에서 명절 전에 수요조사 및 티켓예매를 받았다. 당시 사당역 사거리에 큰 공터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귀향 버스들이 출발하기 위해 대기했다. 귀향길에 선물과 어린아이들, 한복을 입은 직원과 배우자도 더러 보였다. 서로 아는 가족들은 버스 출발 전까지, 덕담도 나누었다.
노선별로 출발할 때, 인사팀의 담당직원과 팀장님이 귀향하는 직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우리도 그분들에게, 명절 잘 보내시라고 손을 흔들었다. 명절 때 귀향 버스 외에는, 나에게 솔직히 대안이 없었다. 비용도 저렴하고, 열차표 예매에 골머리 앓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좌석은 조금 불편했지만, 고향 길 정취만은 푸근했다.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겠다. 2000년대 고속도로가 많이 생겼지만, 자동차로 가는 것은 여전히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한때는 고향 빨리 가는 매뉴얼(루트) 같은 것이, 직원들 사이에서 떠돌았다. 나도 그 루트대로 자동차를 운전해 갔던 적이 있다. 대안들과 직접적인 시간비교는 할 수 없었지만, 조금은 빨랐던 것으로 기억된다. 명절 귀향은 고생길이었지만, 양가 어른들을 뵐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74제(칠사제)
1993년 어느 날, 내일부터 오전 7시까지 출근하고 오후 4시에 퇴근한다는 아침 사내방송이 나왔다. 잠시 후, 그룹 통근버스 관련 안내도 나왔다. 사실이었다!
나는 신월동 그룹 기숙사에 있었기 때문에, 조정된 출근시간에 맞추어 출근버스를 타기만 하면 되었다. 출근 교통이 확실히 수월했고, 사무실 도착시간도 크게 단축되었다. 점심 먹고 오후 업무를 하는데, 인사팀 직원들이 각 층을 돌며 퇴근을 안내했다. 이렇게 일찍 나가도 되나 싶은 마음에, 등 떠밀려 나오듯이 사무실을 종종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74제의 취지는 이랬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고, 퇴근해서 자기 계발을 확실히 하자는 것이었다. 출퇴근 길, 무심코 낭비하는 시간도 줄이자는 것이었다. 그 뒤로 한동안, 일찍 일어나는 것이 인체 리듬상… 등 많은 가십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내 기억에 일찍 퇴근해서 근처 호프집에 방황했던 사람도 있지만, 어학 등 자기 계발을 확실히 한 사람도 많았다. 1993년 당시는 삼성 신경영이 시작된 때라, 조직문화도 확 바꾸는 차원에서 실시되었다.
74제 초기에 모두가 충격적으로 받아들였지만, 삼성 맨들은 잘 적응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람과 조직문화는, 바로 그 기업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사업의 성과도 사람과 문화에 의해 결정된다.
출근 시간은 호불호, 가부의 이슈가 아니라 회사의 방향성이다. 피터 드러커는 “전략은 조직문화의 아침 식사거리밖에 안 된다.”라고 했다. 1993년 실시된 74제는, 2002년이 되어서야 85제로 바뀌었다. 무엇이 맞고, 틀리다의 이슈가 아니다. 74제는 당시 삼성의 선택이었고, 조직문화였다고 생각하면 심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