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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포국수 Jun 26. 2024

1990년대 추사풍 들어가며

왜? 그리고 나는 누구?

1990년대 추사풍 들어가며 – 왜? 그리고 나는 누구?


1990년대 추억의 사무실 풍경(= 추사풍)을 기획한 목적, 등장인물인 ‘나'에 대한 소개를 간단히 적었다. 인생은 스토리 있는 한 권의 책이다.


햇빛은 달콤하고, 비는 상쾌하고, 바람은 시원하며, 눈은 기분을 들뜨게 만든다.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만 있을 뿐이다. 1990년대 나는 회사원으로 지내며 햇빛, 비, 바람, 눈 등 좋은 날들을 마주했다.




왜?

나는 금년 6월 초부터 ‘내만사’(내가 만난 사람들)와 ‘경영을 바라보다’를, 브런치북 형태로 만들어가고 있다. 두 개의 브런치북은 대부분 탈고한 상태여서, 매일 한 편의 글을 다듬어 올리고 있다. 최근 경영과 관련된 새로운 토픽을 찾기 위해 공부하던 중, 연재 브런치북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어떤 주제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두 개의 브런치북과 겹치지 않는 톤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연재 브런치북 소개에도 밝혔듯이, 1990년대 사무실에서 내가 경험했던 것을 이야기하겠다. 나는 당시 신세대였던 X세대였다. 지금의 MZ세대는 X세대를 브리지로 두지 않았다면, 현재 사무실에서 더 큰 문화적 혼란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MZ세대가 X세대를 꼰대라고 표현하더라도, 1990년대 X세대는 그런 표현을 가슴에 묻어 두었다.


해야 할 일들이 많았기 때문인데, 1997년 말 IMF를 경험하면서 더욱 그랬다. IMF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大馬不死(대마불사)의 신화는 깨졌다. 대기업도 추풍낙엽인데, X세대 개개인은 실력으로 무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을 온몸으로 느꼈다. 물론, 낭만과 자유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각 세대의 정체성은 리트머스 시험지의 색깔처럼, 단계를 밟으며 발현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MZ세대는 X세대가 없었다면, 지금의 존재감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내 또래 사람들 대부분(전문직 제외)은 직업 현장에서 은퇴했거나, 은퇴단계에 있다. 그들이 MZ세대처럼 첫 직장생활을 할 무렵, 사무실의 풍경을 그려보겠다.


이 글은 X세대의 넋두리도 아니며, 자만심 역시 아니다. 단지, 1990년대 20대를 거치면서 겪었던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 글이 베이비 붐 세대와 X세대에게는 노스탤지어로, MZ세대에게는 시대 트렌드 관점에서 조망되면 좋겠다. 회사 생활을 준비하는 분들에게는, 아버지 세대가 청춘시절에 어떻게 일했는지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나는 누구?

회사 소개 첫 페이지에는 연혁과 대표이사의 인사말이 항상 나온다. 회사 브로셔는 물론, 인터넷 홈페이지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수용할 정도로 표준화된 형태다. 본격적인 글에 앞서, 개략적으로 ‘나’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이 글의 주인공인 1990년대 회사원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한, 밑밥 정도로 생각해 주면 고맙겠다.


나는 1964년 12월생 용띠다. 음력이기 때문에 양력으로 하면, 1965년 1월쯤에 해당된다. 용띠 어머니께서 자신과 동일한 띠의 아들을 갖고 싶어, 음력 생일로 출생 신고를 하셨다. 우리나라 베이비 붐 세대는 1955~63년 출생을 말한다. 인구통계학적으로, 나는 X세대의 맨 앞에 위치한다.


부산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왔다. 1983년 S대학교 경영학과 진학 후, 석사까지 마쳤다. 1990년 2월 석사장교 과정(6개월 복무)을 마치고, 임관과 동시에 전역했다. 집에 돌아오니, 삼성에서 ‘석사장교 및 공군장교 특별채용’이라는 안내책자가 와있었다. 물론, 당시 다른 대기업들의 입사 안내책자도 받았다. 삼성에 입사 지원하는 데, 별 고민 없이 정했다.


1990년 삼성물산 본사 관리팀에 입사했다. 사무실은 시청과 숭례문 사이에 있는 흰색 삼성본관 건물에 있었다. 선대 회장님의 집무실이 있던 곳이었다. 나는 그 건물 25층에서 근무했다. 총 28년간 삼성 재직의 첫걸음이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삼성물산은 종합무역상사로서 존재감이 조금씩 바래 갔다. 1980년대 후반부터 국내 제조업체의 글로벌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일본 종합상사가 1980년대 ‘상사의 겨울시대’를 맞이했던 것처럼, 우리나라도 유사한 상황을 맞이했다. 그래도 삼성그룹의 모태기업(삼성상회)이라는 DNA 때문에, 삼성물산인의 자부심은 그룹에서 단연 최고였다.


1990년대는 내가 사회에 진출해, 일을 하기 시작했던 첫 Decade다. 결혼 전에는 그룹 기숙사(신월동)에서 생활했다. 1995년에는 일본 지역전문가 과정을 1년 동안 수행했다. 일본 연수 기간에 아버님이 하늘나라로 가셨다. 1990년대는 결혼과 함께 아들, 딸이 태어나며 가족이 완성되었던 나에게 소중한 기간이다.


그럼 나와 함께, 1990년대 서울 태평로 추억의 사무실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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