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거울
그리고… 나는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어릴 적부터,
내 얼굴은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은 거울 앞에서,
병원 침대에서,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조용히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 질문이 내 안을 진짜 울린 날은
놀랍게도 누군가를 돕는 자리에서였다.
나는 부모님을 따라
고아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단순한 봉사활동이라고 하기에는,
내게 너무 많은 생각을 안겨준 하루였다.
그곳엔 평범한 친구들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친구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나와 같은 얼굴을 가진 친구도 있었다.
그 아이는 여자아이였다.
나보다 키가 조금 더 컸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그 어떤 외형도 아니었다.
그 아이의 입술.
구순구개열.
내가 지닌 것과 똑같은 흉터.
하지만 우리의 차이는 분명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아이였고,
그 친구는,
아직도 열린 입술 그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사실 그 순간,
‘나는 치료받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얘도… 많이 힘들었겠구나.’
그 고아원엔
40명에서 5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살고 있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 아이는 얼마나 자주 조롱당하고,
얼마나 자주 무시당하고,
얼마나 자주 상처받았을까?
내가 겪었던 작은 고통들이,
그 친구에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부모님께 들은 이야기가
내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원래는,
그 아이에게 수술을 시켜주려고 했다고 했다.
입술이 그대로 열린 채였고,
일상생활에도 큰 불편이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공산주의 정권 아래
이슬람 문화가 강하게 뿌리내린 지역이었다.
아이를 돌보던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인샬라. 저건 신의 뜻이니 건드리지 마십시오.”
‘인샬라’는 아랍어로
‘신이 원하신다면’이라는 뜻이다.
종종 긍정적 기대나 소망을 담는 말이지만,
이 상황에서는 달랐다.
신의 뜻이라는 명분 아래,
그 아이의 고통은 외면당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무기력했고,
아팠고,
어딘가 분노 같은 감정도 느껴졌다.
그 일은 지금도
내 안에 메아리처럼 남아 있다.
그날, 그 친구를 보며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가 거울을 보듯,
누군가를 통해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순간.
그 아이의 얼굴은,
내 안의 거울이었다.
거울 속 나는 아직 다 회복되지 않았지만,
그 아이는 더 깊은 어둠 속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의 마음을, 고통을, 침묵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내 마음 한구석은 달라졌다.
나는 나 자신만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얼굴들,
나와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을
더 주의 깊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질문이 생겼다.
나는 정말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일까?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을, 더는 외롭게 두지 않을 수 있을까?
그날의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질문은,
내 존재의 깊이를 알아가는
또 다른 여정의 시작이었다.
다음 이야기:
거울 속 내가 아닌, 내 안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하여.
사랑은 내가 만든 조건을 넘어, 하나님이 보여주신 방식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랑으로,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