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다 깊은 2-2

나를 보는 나의 시선

by 권창현

나는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그 질문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어서가 아니라,

내가 먼저 사랑받았기 때문에

생겨난 물음이었다.


어릴 적부터,

거울 앞에 서는 일은 내게 익숙했다.

수술이 끝난 뒤,

실밥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일.

늘 낯설고도 어색했다.


한편으로,

거울은 나의 ‘진짜 얼굴’을 확인하는

유일한 창이기도 했다.


거울 앞에 서면,

나는 나를 묵상했다.

왜 나는 이런 얼굴을 가지고 태어났을까.

하나님은 왜 나에게 이런 삶을 주셨을까.

무슨 뜻이 있어서, 어떤 이유로 나를 이렇게 만드셨을까.


어릴 적,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말해주셨다.


“하나님은 너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단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그럼… 하나님도 구순구개열이 있으신 걸까?’


지금 돌아보면 엉뚱하지만,

그만큼 나는 하나님과 나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물음은,

곧 더 깊은 고민으로 이어졌다.

나는 왜 이렇게 만들어졌을까?

하나님은 이 얼굴을 통해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시려는 걸까?

이 질문은 단순히 외모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존재의 이유에 대한 질문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오랫동안 나를 싫어했다.

나는 사진 찍히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단체든, 개인이든, 가족이든 상관없었다.

입술을 드러내기 싫어

아랫입술로 윗입술을 빨아 감추기도 했고,

사진이 꼭 필요할 때면

최대한 뒤로 숨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들게 되었다.


결국,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은 어느새

16년째 사진을 취미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

그 모든 시작에는,

내 얼굴을 감추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보다 더 무서웠던 건,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는가였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오래 나를 미워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조용히 해준 한마디가 생각난다.


“넌 소중한 아들이야.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존재야.”


그 말을 듣던 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마음 깊은 곳에

들려주시는 말씀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내 마음에 가장 깊이 박힌 성경 구절이 있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시느니라.”

— 사무엘상 16:7


그 말씀은,

내 눈을 처음으로 열어주는 빛 같았다.

하나님은 내 흉터를 보시지 않고,

내 마음을 보신다는 것.

그 사실이 나를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믿음이 자라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더 알아가면서,

나는 점점 더 자주 질문하게 되었다.


“내가 받은 이 삶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 질문은 어느 순간,

두려움이 아닌 방향이 되었다.

나의 약함과 상처는

나를 고립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다가가기 위한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3)


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았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랑받을 자격 없다’ 여겨지던 이들과 함께하셨다.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고 (마태복음 9:9–13)

창녀, 문둥병자, 이방인들과도 식탁을 함께하시며 (누가복음 5:30–32)

그들을 판단하지 않고, 위로하고, 고치셨다.


예수님은

먼저 손 내밀어주셨고,

조건 없이 끌어안으셨다.

나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단순한 감정적 친절이 아니라,

예수님이 보여주신

거룩하고 깊은 사랑.

그 사랑이 결국,

나의 마음을 바꾼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도,

내가 다른 사람을 깊이 사랑할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그 사랑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게 된다.

나는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그 물음은 지금도,

나를 앞으로 걷게 만드는

방향이 되고 있다.


혹시 지금,

나처럼 상처를 안고 있는 당신이 있다면—

그 회복의 시작도,

사랑일지 모릅니다.




다음 이야기:

흉터는 사라지지 않아도, 시선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내 안의 시선이 바뀌면서, 세상과 사람들을 향한 내 마음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건네기 시작합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