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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버섯 Jul 04. 2023

운수 좋은 날

  오랜만에 보강이 잡힌 토요일이었다.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는데 편의점 옆 길가가 정차하는 차량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마침 차 한 대가 빠져나오길래 얼른 그곳에 차를 쏙 대었다.


  이곳은 2등은 셀 수 없이 배출하고 1등도 30회 이상 배출한 로또 명당이다. 몇 번 가서 로또를 사보았지만 5000원도 걸리지 않고 무엇보다 주차하기가 너무 힘들어 더 이상 가지 않는 곳이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는 길이었고 내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린 듯이 빠져나간 차량 덕분에 주차에 성공을 하였다.



  

  무엇보다 이번 주는 일진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비가 며칠 내내 내렸고, 아이들도 별 탈 없이 학교와 유치원에 즐겁게 잘 다녀왔다. 매일매일 화장실에 가서 쾌변에도 성공했고 시어머니와 나이스하게 안부 전화도 나누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아던 이번주!

  로또로 화룡점정을 만들어보리라!     




  처음에는 재미로 샀는데, 과외 가는 길 차가 밀려 차 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안 걸렸으면 이제 한번 걸릴 때도 된 것 같은데... 더군다나 오늘 주차 공간이 생긴 것이 예사롭지 않단 말이야.

1등에 걸리면 과외를 계속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아.... 그래도 지금 하는 아이들과는 의리가 있으니 그만둘 때까지 계속하자.

요즘 운전을 많이 하니까 차는 바꾸는 게 좋겠어. 마세라티 파란색으로!’     


  

  학생집에 도착해 열심히 수업을 하는데 아이가 문제를 푸는 중간중간에 가방 속에 있는 지갑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혹시 1등 일지 모르니까 집에 갈 때 잘 챙겨 가야지. 집에 가면 벌써 당첨번호가 나와있겠네? 가다가 혹시 작은 접촉사고가 나더라도 지갑은 챙길 것... 기억하자.’     


  어느새 가방 속의 로또는 1등 당첨번호가 되어있었고, 가방에서 아련히 당첨의 푸른빛이 새어 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이쯤 되니 힐끗힐끗 가방을 볼 때마다 설레서 입가에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아... 학생이 문제풀 때 웃으면 안 되는데...     


  쉬는 시간 성적 때문에 고민 중인 아이의 하소연을 듣는데 날카로운 대답이 아닌 엄마미소가 먼저 나온다.

 “그래 그런 것이 고민이구나... 하지만 너는 소중하니 공부 이전에 너를 사랑하는 것을 잊지 말렴!”     


  아이와 약속한 2시간 수업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기분이 매우 좋다.

난 로또 예비당첨자니까! 늘 2시간이 땡! 하면 칼같이 벌떡 일어나 나오는 나였지만, 오늘만은 보강에, 추가 수업까지 이어졌다. 아... 20분을 더 떠들었더니 목이 아프다. 하지만 기분만은 좋고 몸이 날아갈 것 같다.      


  밤 10시 15분 주차장에서 내 차를 향해 그랑주떼로 뛰어갔다. 차에 앉아 당첨번호를 확인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밝은 조명에서 환희를 맞이하고 싶어 집으로 얼른 돌아왔다. 오늘따라 라디오의 사연은 어찌나 웃기는지 혼자 깔깔대며 웃다가 눈물을 찔끔 흘렸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와선 초조하게 앉아있는 나를 보며 남편이 물었다.


“왜? 오늘 과외가 힘들었어? 집에도 늦게 들어왔네.. 시험기간이라 할게 많지?”     


“있잖아... 나 오늘 진짜 오랜만에 로또를 샀거든... 근데 뭔가 기운이 너무 좋단 말이야. 당첨되면 과외는.... 계속하는 게 좋겠지? 그래도 애들과 의리가 있는데 로또 되었다고 그만두면 그렇잖아. ”     


“당첨됐어???!!!!!!”     


“아니... 아직은. 당첨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냐 일단 느낌은 좋아.  혹시나... 근데 너무 몰입해서 당첨이 아니면 몰아치는 감정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지금 확인을 못하고 있어. 당첨일 수도 있으니까 일주일만 더 있다가 확인해야겠어. 그때까지 이 기쁨을 간직할 거야.”     


“제정신이냐.... 빨리 번호 확인해 봐~ 난 눈물의 맥주파티를 준비해 놓지.... 큭큭...”     


  로또 스토리를 들은 10살, 나를 꼭 닮은 큰아이는 이미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응원을 시작하였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로또번호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QR코드 같은 기계의 확인으로 우리의 기쁨을 작아지게 할 수 없다. 형광펜을 가지고 와 번호 하나하나를 마킹하기로 하였다. 잠시 후 나는 일렬로 줄 선 번호의 열을 확인할 수 있겠지!!!


  거친 응원 속에 형광펜을 든 나는 핸드폰 속 숫자를 확인하기 시작했고..

  5000원짜리 로또 두장에 가득 적힌 번호 중, 3개도 채 색칠하지 못한 채 형광펜을 내려놓아야 했으며,

  잠시 후 분노 속에 야수가 되어 작은 로또종이를 산산조각 내고 앉아있었다.


  남편의 예상대로 나의 로또는 이번에도 꽝이었고 나는 다음 주엔 더 열심히 수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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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살자.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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